백제 문화의 저력은 무엇인가…통념을 깬 전시 2선
금동대향로나 무령왕릉의 왕과 왕비 머리꽂이, 귀걸이만 백제 예술의 대명사일까. 그렇지 않다. 허탈한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슬픔과 고통을 드러낸 수행자나 보통 사람의 얼굴상도 있고, 망자가 저승에서도 맛있게 식사하라고 소박하게 빚어서 무덤에 넣은 부뚜막 모양 명기도 있으며, 창과 방패를 든 병사의 튼실한 몸체를 빚은 상도 있다. 삼국시대 백제 예술문화의 저력은 깊고 다채롭다. 후대 사람들이 이를 이야기할 때 흔히 우아하고 세련됐다는 표현을 쓴다. 토기와 불상 등 백제 유산이 지닌 특징을 함축한 말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 있는 장인들의 기술력이나 당대 생활사의 맥락 등을 짚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 연말부터 이런 백제 문화의 저변을 탐색한 기획전이 서울과 부여의 두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토기와 기와, 소조불상 등 백제인의 흙 다루는 기술과 장인들을 역대 최초로 조명한 국립부여박물관의 기획전 ‘백제 기술, 흙에 담다’와 초기 백제의 왕도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과거와 현재의 발굴 자료 400여점을 한자리에 망라한 한성백제박물관의 개관 10주년 특별전 ‘왕도 한성’이다. 이달 29일까지 열리는 두 전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백제 문화의 전형적 유물들이 아니라 백제 문화의 기층에 깃든 맥락과 저력을 새 각도로 분석해 보여준다는 점이 주목된다.
‘백제 기술, 흙에 담다’전은 돌과 흙, 금속 분야에서 3개년에 걸쳐 백제 장인의 기술을 다루는 시리즈 전시의 두번째 기획전이다.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 소조불상의 머리를 이미지가 비치는 거울을 배경으로 배치해놓으면서 시작된다. 이 전시의 핵심은 정림사, 능산리 절터, 금강사 터, 제석사 터 등 여러 옛 출토지의 관련 기록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백제 소조상들의 파편 100여점을 손과 얼굴, 몸 등 부위별로 묶어 전시장에 일목요연하게 진열했다는 점이다.
중국 북위 왕조의 불교미술 영향을 받은 소조불상편을 비롯해 제왕과 군신의 것으로 추정되는 세 사람의 하반신 상, 창과 방패를 든 무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조상, 개구리나 코끼리 등의 동물 조각상 등을 특징별로 분류해, 백제인들의 소조 예술이 다기한 영역에서 펼쳐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명한 백제 산수문전의 산수 빗살 장식무늬를 그대로 옮긴 꽃모양의 장식편과 무사, 귀족, 제왕 등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군상의 소조상이 다수 보인다는 점에서, 당시 백제 수도 부여(사비) 일대의 전각과 불교사원 등에 입체적인 종교적 조각물들이 장식됐을 가능성도 추론할 수 있다.
모두 8조각으로 구성되어 총 무게만 600㎏을 넘는 한국 고대 불상의 받침 대좌 중 최대급인 청양 본의리 가마 출토 백제 대좌도 동체를 절반으로 갈라 역대 처음 내부를 공개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내부 용도를 알 수 없는 손잡이 모양의 기물이 부착되어 있고, 나무 덩이를 두들겨 내부를 다졌으며, 실 같은 것으로 점토 덩이를 잘라 조각들을 가른 뒤 연꽃판을 부착해 대좌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자유로운 조형적 표현이 가능한 흙의 예술 소조 장르에서 이룩한 백제 장인들의 기술력을 첨단 보존과학 기술까지 접목해 영상으로 재현하는 등 상당한 내공이 들어간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한성백제박물관의 개관 10주년 특별전 ‘왕도 한성’은 지난 20여년간 이룩한, 백제의 초기 왕도로 확정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오랜 발굴 성과와 인근 성벽 바깥 지역의 최근 성과를 처음 집대성해 보여준다. 무엇보다 당시 수도권 백제인들의 생생한 생활문화와 폭넓은 국제교류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수도 서울의 역사적 뿌리가 유구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형태를 지닌 각종 토기와 대형 항아리들, 돌절구통, 그리고 여러 줄이 난 숫돌 덩어리들의 모습에서 당시 백제인들의 모습이 한눈에 잡히는 듯하다. 하남 감일동 고분에서 나온 부뚜막 모양 명기와 닭 머리, 호랑이 머리를 한 중국제 유약 항아리를 통해 당시 외래문화를 수용하는 양상도 보여준다. 전시의 특제 진열장은 핵심 볼거리 중 하나다.
부여/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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