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74)모름직이
모르는 줄 알아 모르는 데가 위다. 그 자리는 나 몰라, 나몰라, 몰라다. 모르고 몰라 모르는 빈탕이니 지금 여기 앎 하나 없이 까마득이다. 가지가지(頭頭物物) 갖가지가 다 숨숨숨 너울거리며 세 가닥으로 꼬여 휘돌아가는 빈탕이다.
숭산 스님은 ‘오직 모를 뿐’이라 했고, 다석 류영모는 ‘모름직이’라 했다. 알아가다가도 스스로 모르는 판에 서 있어야 옳다. 알고도 채 알지 못하는 게 위다. 알고픈 생각을 끊고 저 없이 ‘오직 모를 뿐’으로 나들지 않으면 본디 그대로 온통이 솟는다. 오롯한 하나로 온새미로다. 그 자리는 너나 없고, 난데없고, 짝도 없다. 다석이 “믿음이란 밑바탕에서 밀어 올리는 것”이라 했듯이, ‘모름직이’도 모름을 깨 캐낸 빈탕에서 밀어 올리는 믿음이다.
다석은 “모르는 줄 알아야 한다.”고 했고 또 “신비를 느끼면 자신의 무지(無知)와 부지(不知)를 알아야 한다. 스스로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면서 “절대로 큰 것을 우리는 못 본다. 아주 더할 수 없이 온전히 큰 것을 무(無)라 한다. 나는 무(無)를 믿는다. 모르니까 믿는다. 있는 것은 아니까 안 믿는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도 가르쳤다.
“있을 것이 있을 곳에 있는 것이 참이고 선이고 아름다움이다. 밥알이 밥그릇 속에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얼굴에 붙어 있으면 좋지 않다. 똥에 똥통에 있으면 괜찮지만 옷에 묻으면 더럽다.”
“세상에 나타나려고 하지 말자. 오히려 깊이 숨으려고 하자. 숨는다는 것은 더 깊이 준비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사람은 결국엔 하느님 아버지께 배워야 하는데 하느님 아버지는 은밀한 가운데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곱다시, 그대로 고스란히 곱디고운 마음 속 빈탕에 모름
느닷없이, 아주 뜻밖이고 갑작스러운 싶뜻(慾心)이 일어 알음
늙은이 42월에 깨달이는 “마음공부! ‘높임’으로 키워 솟구친 만큼, 스스로 저절로 아래 터가 열려 ‘높’ 오르기 위해서는 수준에 따른 앎의 공부와 마음챙김을 해야 하지. 조금 알고 조금 열려 위아래가 보인다고 건너뛰기 하면 안 돼. 맨꼭대기는 늘 없꼭대기요, 맨꽁무니도 밑 없다는 걸 알아야 하거든. 늘 ‘모름직이’로 돌아야 새 앎이 커지고 그만큼 깨달음도 깊어져. 커지고 깊어지는 그 사이를 오르내리며 ‘모름직이’로 묻고 불리고 풀면서, 또 밀어 밀면서 믿고 밑을 터야 해.”라고 했다.
바로 앞 70월 끄트머리에 최종규의 말로 “알이란 겉이 아닌 속이 무르익는 숨빛”이요, “겉으로 드러내거나 내세우지 않고 속으로 듬직하게 익기에 ‘알다․앎’”이라 했다. 속으로 무르익지 않으면 반드시 탈난다. 햇과일을 먹고 탈나는 것과 똑같다. 늘 모름직이로 돌아야 새 앎이 커지는데 모르고 알은 채 하니 탈이다. 자, 71월을 보자.
떠돌이가 한 번 더 말을 거둔다.
떠돌이 : 갑툭튀로 말숨을 깨고 캐내는 돌파리(突破理) 임락경은 약이 되는 쓴 소리로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고 따끔하게 말침을 놓지. 한 마디로 세상에 외치는 일침(一針)이야. 얼떨떨해. 모르는 줄 아는 판에는 오직 모를 뿐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알고픔으로 굶주려서 입맛에 맞는 알음알이만 찾아 먹으려 하지. 덜 익은 앎을 먹으니 속이 탈날 수밖에. 먹기 싫은 모름은 도무지 먹으려들지를 않아. 모름을 먹어야 속이 편할 텐데 말이지. 겉으로 알은 체하는 것도 꼴불견의 탈이야. 모름이 결국 탈(病)을 고치지.
떠돌이 : 단맛 나는 알음알이 탈에는 먹기 싫은 모름이 탈이요, 약이지. 알음알이 탈을 모름으로 탈하면 탈 안 나. 그저 오직 알고픔의 탈을 오직 모르고픔으로 탈해야 탈 안 나거든. 그러니 오직 모를 뿐이어야 해.
떠돌이 : 씻어난 이의 탈 안 남이란, 알음 탈을 모름으로 탈해서 그저 있는 그대로의 빈탕이 되는 것이지. 그저 빈탕에 모름직이로 서야 늘 탈 안 나. 71월을 새로 새겨 볼까?
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301120700001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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