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현장은 이미 다가온 미래…"외국인 없으면 문 닫는다"

박상휘 기자 박혜연 기자 이정후 기자 2023. 1.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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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한국과 이민] ③반월·시화산단…"외국인 노동자 쿼터 확 늘려야"
인력난에 선제적인 종합 이민 정책 불가피…"국민 설득 과정 필요해"

[편집자주] 대한민국의 저출생·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릅니다. 지금 이 속도라면 50년 뒤 대한민국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들고 이로 인해 생산연령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 노동력은 부족하고 경제 성장도 감소할 전망입니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이민 정책을 꺼내들었습니다. 뉴스1은 우리나라는 어떤 이민 정책을 써야 하는지, 또 이민에 따른 예상되는 문제점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등을 관련 전문가와 현장에서 듣고 4편의 기획물에 담았습니다.

16일 경기도 시흥시 유공압실린더 전문기업 신명유압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용접작업을 하고 있다. 2023.1.19/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시흥=뉴스1) 박상휘 박혜연 이정후 기자 = "젊은 사람들은 공장 안 와. 누가 요새 궂은일을 하려고 해. 다른 데는 사람이 없어서 공장 문도 닫는다는데 외국인까지 없으면 (공장이) 안 돌아가지."

경기도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에서 산업 부품을 생산하는 신명유압 채성완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를 '필수 인력'이라고 강조했다. 상대적으로 힘든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을 선호하는 취업 시장 분위기에 따라 내국인의 입사 지원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는 최근 '1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할 정도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원자가 없어 신규 직원 채용은 쉽지 않다. 채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 일자리를 뺏는다는데 중소기업에는 지원도 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일손이 필요한 빈자리는 외국인들로 채웠고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직원의 25%에 달한다. 부족한 인력난에 정부가 고용허가제로 할당해주는 외국인 노동자 외에도 해외 동포들까지 고용한 상태다.

그나마 이곳은 오래 근무한 한국인 직원들이 많아 사정이 좋은 편이다. 환경이 열악한 주변 공장들은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고 했다. 젊은 층이 외면하는 산업단지는 이민자들의 노동력에 기대고 있었다.

16일 경기도 시흥시 유공압실린더 전문기업 신명유압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용접작업을 하고 있다. 2023.1.19/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4년 10개월도 짧다"…외국인 장기 고용 원하는 산업 현장

채 대표의 회사가 위치한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는 크고 작은 기업들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이다. 그만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가 다수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기준 반월·시화공단이 위치한 시흥시와 안산시 단원구·상록구의 등록외국인은 8만1688명으로 집계됐다. 전국 어느 기초자치단체보다 많은 외국인 규모다. 40만명에 달하는 미등록 외국인까지 더하면 훨씬 많은 이민자가 산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산업단지에는 베트남, 네팔,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부터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이 많다. 대부분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고 들어와 최장 4년10개월간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현장에서는 이들이 일할 수 있는 4년10개월이 짧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이 업무에 적응하고 능률이 올라왔을 때면 비자 만료 시기가 다가온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고용주들은 '재입국 특례 외국인노동자 취업 제도'를 선호한다. 본국으로 귀국해 1개월 뒤 다시 돌아와 4년 10개월을 추가로 근무할 수 있는 제도다. 고용노동부는 동일 사업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재입국 없이 최대 10년간 머무를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은 이 같은 정책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채 대표는 해당 정책에 대해 "고마운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 청년 일자리를 뺏기 때문에 (고용허가제) 쿼터제를 한다는데 뺏는 게 아니라 안 오는 거다. 쿼터제로 들어오는 외국인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18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기업들은 평균 5.4명의 외국인 추가 고용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숙련공들은 한국 직원들에게도 훌륭한 동료다. 이곳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는 한국인 직원 A씨는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안 돼서 (외국인 노동자) 받기를 꺼렸는데 막상 일을 가르쳐주면 한국인과 큰 차이가 없다"며 미얀마에서 온 동료를 치켜세웠다.

14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태국에서 국내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1.12.14/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코로나19로 체감한 외국인 의존도…인력난은 예견된 미래

산업 현장에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나날이 높아지는 외국인 노동자의 중요도를 체감하기도 했다. 강화된 방역 조치로 입국이 제한되면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의 빈 자리가 채워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56만1000명에 달했던 외국인 노동자(E-9, H-2) 수는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39만1000명으로 급감했다. 이듬해에는 34만3000명까지 축소되면서 중소기업들은 인력난을 겪었다. 채 대표도 급한 대로 높은 임금을 주고 인력사무소를 통해 사람을 구해야 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21년 당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 중이었던 제조업체 792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2.1%에 달하는 업체들이 '인력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사실상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사업 유지가 어려웠던 것이다. 중소기업 10곳 중 9곳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이유로 '내국인 구인 애로'를 꼽기도 했다.

이와 같은 노동력 부족 문제는 추세는 앞으로 더욱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코앞에 둔 우리나라는 앞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급속도로 감소할 전망이다. 통계청은 생산가능인구가 2020년 3583만명에서 2040년 2676만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전 국민의 55.7%에 불과한 수치다.

고령사회 대책으로 이민 정책이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면 성장 잠재력이 둔화하고 국가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법체류자 양산을 최소화하면서 이민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이민청 설립을 촉구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강동관 전 이민정책연구원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언제, 어느 산업에, 얼마만큼, 왜 데려와야 하는지 국민들에게 먼저 인식시켜야 한다"며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상을 잘 선발해야 하고, 영주권의 문을 좀 더 열어서 숙련 외국인에 대해서는 영주권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6일 경기도 시흥시 유공압실린더 전문기업 신명유압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업무를 보고 있다. 2023.1.19/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코리안 드림' 품고 온 외국인…"대한민국 알리는 외교관"

줄어드는 인구 속에 이민자들은 산업 현장의 필수 인력으로서 중요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필요해서 외국인들을 들여오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한국은 꿈을 이루기 위한 기회의 땅이다.

공장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출신 바티(24·남)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음악을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잔업 수당까지 꼼꼼히 챙겨 월 280만원을 받는 바티는 자신이 점찍어둔 음향 믹서를 검색해서 보여줬다. 취미로 시작한 음악이지만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까지 만들었다. "한국말이 늘면 한국에서 활동할 수도 있고요." 바티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낯선 한국 땅에 들어오고 어려움은 없었을까. 2년 전 한국에 들어온 바티는 한국 생활이 만족스럽다면서도 "의사소통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그나마 바티의 한국어 실력은 나은 편이다. 발음이 어려운 단어는 자신의 장갑 위에 한글을 유성매직으로 또박또박 적을 수 있는 실력이었다. 정부에서 실시하는 교육만으로는 한국 생활이 어려워 안산역 근처의 한국어 학원에서 1년 동안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우리는 외국인들에게 잘해줘야 해. 그 사람들이 다 외교관이야." 채 대표는 자신이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외교관'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돈을 벌고 고국으로 돌아가면 '대한민국'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알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채 대표는 "외국인 직원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갔을 때 대한민국 사람을 보면 얼마나 반갑겠나"라며 "우리도 그들을 외국인이라고 구분할 게 아니라 다 같은 노동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혜연·이정후 기자)

leej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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