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거래 허점 드러난 은행권…금감원 제재 왜 늦어지나
기사내용 요약
검찰, '김치프리미엄' 노린 4.3조 해외 불법송금 조직 기소
금감원, 이상 외환거래 '통로' 된 은행에 강력 제재 불가피
해외송금 시스템 허점 다수 발견…은행 실적위주 관행 때문
은행의 증빙서류 확인 의무가 쟁점…"기재부 유권해석 기다려"
[서울=뉴시스] 김형섭 최홍 기자 = 지난해 금융권에서 발생한 대형 금융사고 중 하나인 10조원대 이상 외환거래와 관련해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가 발표됨에 따라 금융당국의 은행권 제재 결과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금융감독원이 이상 외환거래의 통로로 활용된 은행들에 대한 제재 절차를 진행 중인 가운데 수사당국조차 은행의 외환송금 시스템상 미비점과 실적 위주 관행을 지적한 만큼 고강도 제재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해 10월 말 이상 외환거래 관련 은행권 현장 검사를 모두 마무리하고 검사서 송부와 이에 따른 은행별 의견 청취를 진행하면서 제재 조치안을 작성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상 외환거래 관련 은행들에 대한 제재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국내 시중은행의 해외 송금 시스템상 문제점 등 그동안 지적된 점들에 대해서 검사 결과를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사 의견서를 보내고 그에 대한 은행의 의견을 받고 제재 조치안을 만들고 그에 대한 사전 통지를 해서 은행 의견을 다시 청취하는 등 제재 심사 일정 조정에 앞선 절차들을 진행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6월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으로부터 거액의 이상 외회송금 의심거래 사실을 보고받고 즉시 현장검사에 착수한 바 있다. 이어 같은 해 7~8월 모든 은행을 대상으로 이와 유사한 이상 외환거래에 대한 자체점검을 실시토록 했다.
이는 국내 가상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높은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조직이 시중은행들을 통해 외화를 해외로 불법 송금한 데 따른 것이었다.
금감원은 이상 외환거래로 의심되는 대부분의 거래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이체된 자금이 국내법인 계좌로 모였다가 해외로 송금되는 구조인 것으로 확인했다. 해외 지급결제 업체가 국내에서 송금된 외화자금을 수취해 정상적인 수출입거래로 보기 어려운 사례도 일부 발견했다.
지난해 9월22일 금감원이 검사 상황을 밝힐 당시 포착된 이상 외환거래 규모는 총 72억2000만달러로 그때 환율로는 약 10조1700억원(현재는 약 8조9000억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금감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기초로 세관과 함께 진행한 불법 해외송금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전날 발표했다.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본부세관은 현재까지 기소한 송금 규모 총 4조3000억원과 관련한 범행 조직들에 대해 주범 및 은행브로커 등 11명을 구속기소하고 9명을 불구속기소했으며 해외로 도주한 1명에 대해서는 지명수배를 내렸다.
이들은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8월 사이 허위 무역대금 명목으로 4조3000억원에 달하는 외화를 해외로 불법 송금해 현지 코인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구입한 뒤 국내 거래소로 보내 매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자산이 국내에서 해외보다 비싸게 팔리는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 시세 차익이 높게 발생하는 시점을 골라 반복 송금하며 수익을 극대화했다고 수사당국은 전했다.
검찰은 추가 공범과 나머지 송금업체들에 대한 수사를 계속할 예정인 만큼 금감원이 포착한 72억2000만달러 가운데 남은 의심 거래들과 관련한 추가 기소도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수사당국이 시중은행의 외환송금 절차상 허점을 밝혀낸 만큼 금융감독당국 차원에서도 은행권의 허술한 외환거래 관리에 강력한 메스를 들이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검찰이 이번에 기소한 불법 해외송금의 통로가 된 시중은행은 9곳이다.
지난해 금감원 검사에서 이상 외환거래가 포착된 곳은 신한은행(23.6억 달러), 우리은행(16.2억 달러), 하나은행(10.8억 달러), 국민은행(7.5억 달러), 농협은행(6.4억 달러), SC제일은행(3.2억 달러), 기업은행(3억 달러), 수협은행(0.7억 달러), 부산은행(0.6억 달러), 경남은행(0.1억 달러), 대구은행(0.1억 달러), 광주은행(0.05억 달러) 등 12곳으로 이 가운데 상당수가 불법 해외송금 사건에 연루됐을 것으로 보인다.
또 검찰이 이번에 기소한 불법 해외송금 조직 가운데 현직 은행원은 포함돼 있지 않지만 일부 조직은 거래실적이 없는 신규 무역회사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금융기관 브로커를 통해 은행 지점장들과 접촉해 송금계좌 한도나 환율 적용에 우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난 만큼 연루된 은행들에 대한 고강도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이상 외환송금 범행에 공범으로 가담하고 업무상 알게 된 수사기관에 대한 정보를 누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우리은행 지점장은 면직된 뒤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찰에서도 위법 사항을 확인했으니 법 위반을 한 것은 분명하다. 은행원 개인의 일탈 외에 은행권 전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제재를 할 것"이라며 "내부통제 미비나 임직원 제재 등의 필요성을 참조해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외국환업무 취급 등 관련 준수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은행에 대해서는 엄중 조치할 계획이다. 예컨대 증빙서류 확인 없이 송금을 취급했다거나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고객확인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등이다.
이번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에서도 국내 시중은행들의 해외송금 시스템상 허점이 다수 발견됐다.
페이퍼컴퍼니인 송금업체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씩 회당 수억원에서 수백억원의 해외 송금을 반복하는 데도 가상자산 거래나 자금세탁 연루 여부 등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지속적인 의심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금융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송금신청서가 접수된 은행 지점에서는 형식적인 사전 서류 심사만 진행했으며 사후 점검은 미비했다. 책임자 결재가 이뤄져야 하는 본점에서도 외화송금 심사는 형식적으로만 이뤄졌고 의섬거래 확인이나 사후점검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시중은행의 실적위주 관행도 지적됐다. 일부 영업점이 외환 송금 고객을 유치하는 데만 혈안이 돼 송금사유나 증빙서류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한 시중은행 지점은 5개월 동안 320여 차례에 걸쳐 '반도체 개발비' 명목으로 무려 1조4000억원 규모의 외화 송금이 계속됐는데도 인보이스(무역거래 송장) 외에는 추가 증빙자료를 요청하지 않았다. 심지어 담당 직원은 포상까지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놓고 수사당국조차 "은행 내부 책임자 내지 금융당국이 적시에 개입해 불법 송금을 차단하지 못하는 이상 단기간 '치고 빠지기' 형태의 송금 행위를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향후 은행권과 금융당국이 연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 만큼 금융당국으로서도 체면을 구기지 않기 위해서는 고강도 제재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금감원의 이상 외환거래 관련 남은 제재 절차에서 최대 변수는 은행의 증빙 서류 확인 의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환거래법상 은행은 일정 금액 이상의 외화를 송금할 땐 증빙 서류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놓고 금융당국은 은행이 단순한 서류 대조를 넘어 외화 송금 목적을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는 시각인 반면 은행들은 해외송금 고객에 대한 조사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는 단순한 서류 이상유무만 점검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은행들은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에 외국환거래법에서 규정하는 관련 의무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해 놓은 상태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재부의 유권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유권해석을 받아보고 (제재 수위를) 결정해야 한다"며 "다만 기재부 유권해석은 전체 제재 과정 중에서 일부 해석이 필요한 부분인 것이지 전반적인 제재 여부 자체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phites@newsis.com, hog888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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