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실거래가보다 2억 비싼 호가" 노원 재건축 투자 주의보

정영희 기자 2023. 1. 19.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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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한파에 정부가 재건축 정밀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하는 정책을 내놓으며 서울 노원구 상계·월계동 노후 아파트 단지들이 들썩이고 있다. 사진은 상계주공5단지 정문과 아파트 외관. /사진=정영희 기자
저금리 시대에 '영끌'(영혼 끌어모은 대출) 투자로 집값이 폭등하며 '노도강'(노원·도봉·강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노원구가 최근 부동산 한파로 거품이 가라앉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정밀안전진단 기준 완화 등 규제 완화 이후 집주인들이 다시 호가를 올리는 등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인다.

노원는 상계동과 월계동을 중심으로 준공 30년이 넘은 노후 아파트가 많은 동네다. 현재 45개 단지, 6만7000여가구가 재건축 시기에 다다랐다. 노원구청 등에 따르면 상계주공1·2·6단지는 안전진단 E등급을 받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3개 단지 모두 1980년대 후반 준공돼 2000가구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상계주공 1·6단지는 2021년, 2단지는 지난해 안전진단 당시 각각 47.5점, 54.13점, 52.58점을 받았다. '조건부 재건축'을 할 수 있는 D등급이다. 그러나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도심 내 주택공급을 위해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개정안을 내놓으며 상황이 달라졌다.

그동안 평가점수가 30~55점 이하이면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았으나, 이를 45~55점 이하로 조정해 45점 이하는 즉시 재건축이 가능토록 했다. 조건부 재건축의 경우 종전에는 반드시 지방자치단체의 적정성 검토를 거쳐야 했지만 앞으로는 지자체가 판단해 필요한 경우에만 진행한다. 본 개정안이 지난 4일부터 시행, 소급 적용되면서 상계주공1·2·6단지는 별도의 적정성 검토 없이 사업을 확정했다.


"규제 완화에 문의 쇄도" 재건축 기대에 들뜬 주민들


지난 17일 방문한 서울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6단지 아파트. 총 28동 2646가구의 대단지다. 1988년 입주해 올해로 35세가 됐다. 단지 곳곳에 안전진단 통과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단지 앞 상가의 공인중개사 A씨는 "6단지는 2~3년 전 상계동 주공 중에 가장 거품이 심했던 단지"라면서 "영끌로 무리해서 집을 산 사람이 많았는데 금리가 오르며 싼 값에 아파트를 내놓곤 했다. 최근 1년 사이 거의 5억원이 빠졌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 B씨는 "재건축 규제 완화책이 발표된 지난달 말부터 급매물을 찾는 전화가 왔다"면서 "'문의 전화가 하루에 몇 통씩 온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재건축 유망 단지가 적다 보니 규제 완화 이후 안전진단 통과 가능성이 높은 6단지로 수요가 몰린 것"이라며 "지금은 매물이 거의 없다. 재건축 확정 이후 집을 내놨던 사람들이 다시 비싸게 팔고자 매물을 거뒀다"고 덧붙였다.
상계주공6단지 내 재건축 정밀안전진단 통과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사진=정영희 기자
공인중개사업계에 따르면 가장 최근 매물 호가는 59㎡(이하 전용면적)로 6억2000만~6억3000만원대에 등록됐다. 같은 면적은 2021년 9월 9억4000만원(8층)에 거래됐다. 1년 후인 2022년 11월 5억1000만원(12층), 한달 후인 12월 4억2000만원(9층)에 각각 손바뀜했다. 불과 14개월 만에 55% 이상이 빠진 셈이다.

10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아파트 가격이 가장 많이 내린 곳은 노원구(-12.02%)다. 그럼에도 실거래가 대비 2억원 이상 높은 가격에 호가가 형성된 것은 재건축 기대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6단지 바로 옆의 5단지는 지난 14일 GS건설을 재건축 시공사로 선정했다. 37㎡ 단일 면적 840가구가 들어선 단지다. 6단지보다 1년 먼저 지어졌다. 노원구가 2017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됨에 따라 최근 거래가 거의 없었으나, 1·3 부동산 연착륙 대책으로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국 투기과열지구 지정이 해제되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현재 급매 호가가 6억~6억2000만원 정도로 더 오를 것"이라면서 "시공사 선정 이후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달에 8억원짜리 매물을 내놓은 집주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단지 입구 게시판에는 '재건축사업 정상화위원회'라는 이름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의결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현재 이 단지 재건축을 둘러싼 주민들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은 '정비사업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는데 위원 해임 발의를 요구하겠다는 내용이다.

5단지는 조합을 설립하는 대신 신탁방식을 택했다. 신탁사가 일정 비율의 보수를 받고 소유자를 대신해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2016년 사업이 중단되거나 사업성이 떨어져 재건축 재개가 어려운 현장을 위한 대책으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5단지 사업시행자로는 2021년 3월 한국자산신탁이 지정됐다. 신탁 보수는 1.9%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현재 5단지 재건축은 절차대로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얼마 전 설계업체 선정을 마쳤고 올해 안에 사업시행인가를 받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비대위의 위원 해임 요구에 대해선 "주민 최소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라 전체 재건축 과정의 잡음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내놓기 무섭게 빠지는 월계동 급매물


월계시영아파트는 아파트 3단지를 모두 합쳐 약 4000가구에 달하는 대단지다. GTX-C 노선과 동북선이 인근 광운대역과 월계역을 각각 통과할 것으로 알려지며 주민들의 재건축 추진에 더욱 불을 붙였다./사진=정영희 기자
노원 재건축 바람은 월계동에도 내려앉았다. 월계동엔 강북 최대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월계시영아파트가 있다. 이른바 '미미삼'(미성·미륭·삼호3차)이라는 별명이 붙은 월계시영은 3930가구 대단지다. 지난해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데 이어 지난 8일 정밀안전진단을 신청했다.
월계시영아파트는 인근 광운대역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C가 지나갈 예정이다. 왕십리에서 상계동을 잇는 동북선 월계역도 개통을 앞두고 있어 투자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엔 급매 계약서를 작성하러 온 이들이 있었다. 중개를 담당한 공인중개사는 "규제 완화 이후 물건이 나왔다 하면 팔리는 편"이라면서 "보지도 않고 사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월계시영아파트는 인근 재건축 예정 단지보다 대지지분이 커 재건축 시 수익성이 높다"고 전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월계시영아파트 59㎡는 지난달 15일 5억1000만원(9층)에 팔렸다. 같은 달 50.14㎡가 5억8500만원(3층)에, 51.48㎡가 5억8400만원(12층)에 각각 거래됐다. 규제 완화책 발표 이후부턴 집값이 상승세를 탄 모습이다. 지난 11일 59㎡는 6억4750만원(1층)에 거래된 데 이어 현재 네이버부동산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59㎡ 호가는 7억~7억2000만원 선이다. 광운대역이 바로 앞인 동의 고층 매물은 8억7000만원에 나오기도 했다.

인근 공인중개소사무소 관계자는 "지금 가격이 2021년 고점 대비 70% 정도"라며 "재건축 이슈가 나온 이후로 집값을 올리는 집주인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실제로 2021년 9월 59㎡가 9억8000만원(10층)에 거래된 기록이 있다.

다만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투자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노원구는 2~3년 전 20·30 '영끌족'의 성지라고 불릴 만큼 아파트 매매가가 올랐다가 급락한 지역"이라며 "지금 같은 고금리 시대에는 재건축 소식으로 반짝 상승이 아닌 거시적인 경제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월계동 삼호4차아파트 상가 내 위치한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사무실 전경./사진=정영희 기자
월계시영 옆 삼호4차아파트도 재건축 열차에 탑승했다. 지난 12일 안전진단을 위한 용역 비용 예치금 1억5752만원을 노원구청에 납부했다. 910가구 규모의 이 단지는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연면적 비율)이 157%로 재건축 시 수익성이 양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호4차아파트는 지난해 거래절벽의 역풍을 정면으로 맞았다. 280가구가 입주한 59㎡ 매물은 한 건도 거래되지 않았다. 이달 1건의 매매가 진행됐으나 가족간 직거래로 드러났다. 18일 기준 시장에 나온 동일 평수 매물은 하나뿐이다. 고층이며 호가는 7억원이다.

상가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매물이 거의 없다"면서 "50㎡는 지난주 급매물 몇 개가 나왔으나 다 나갔다"고 말했다. 상가 한 켠에는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사무실이 있었다. 최근 안전진단 비용의 모금을 독려하다가 막 숨을 돌린 모습이다. 이날 만난 한 위원은 "주민들 모두 재건축에 긍정적인 반응"이라며 "기대감 때문인지 지금은 집을 팔고 싶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상계주공5단지는 노원역 4, 7호선 더블 역세권이라는 입지적 이점이 있어 재건축 시 유리하다"며 "현재 부동산 가격 상승은 일시적 이슈를 원인으로 하기에 흐름이 계속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 속도가 빠르다는 이점도 있으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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