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영끌족’을 위한 변명
‘아파트 매매가, 6년 만의 최고 상승률’ ‘주택 투기지역 확대 및 분양가상한제 도입’ ‘신도시급 아파트 공급’ ‘주택 미분양 급증’ ‘전매 제한 완화’···.
얼핏 보면 집값이 치솟던 2019년 이후 현재까지 부동산 시장에 대한 것 같다. 하지만 이 내용은 2006~2008년 본지가 다룬 부동산 관련 뉴스들이다.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똑같은 일이 반복된 셈이다. 부동산 급등과 규제 강화, 공급 대책, 집값 폭락과 미분양 증가의 패턴이 판박이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은 부동산 시장에도 사이클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이 실거래가 지수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6년부터 16년간의 그래프를 보면, 5년 안팎을 주기로 이 같은 ‘등락(騰落)의 사이클’이 관찰된다. 하지만 2019년 중반부터 이어진 사이클에선 이전과 다른 점이 눈에 띈다. 곡선의 가파르기다.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6년부터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4월까지 상승률은 38.6%(아파트 기준)였다. 하지만 이후부터 피크를 찍은 2021년 10월까지 무려 46.2% 올랐다. 이전 11년간보다 4년간의 상승률이 훨씬 높았던 것이다. 2021년 말부터 작년 말까지 하락폭(-15.6%)도 이전 사이클에선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엔 누구나 알다시피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부작용이 그만큼 깊고 컸다. 그 밖에 전문가들이 꼽는 또 다른 요인 중 하나가 ‘2030 영끌족’의 등장이다. 집값 상승기였던 2020년과 2021년 생애 처음으로 수도권에서 아파트·빌라를 매수한 2030세대는 각각 17만4000명, 17만6000명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잇따라 경신했다. 반면 집값이 떨어진 지난해엔 이 숫자가 8만7000명으로 역대 최소치였다. 겁 없이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나가떨어진 형국이다. 부동산 시장 주력인 40대도 비슷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그 수치의 등락폭은 2030세대에 비해선 훨씬 작았다.
2030세대가 이렇게 무모했던 이유는 미래 자산 형성에 대한 절박감이다. 이들은 ‘부모보다 못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첫 세대다. 이번 집값 상승기를 놓치면 영원히 집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집이 없다는 이유로 갑자기 ‘벼락 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렇게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장만했건만, 집값은 속절없이 폭락하고 ‘영끌거지’ ‘영털족(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상황)’이 됐다.
그들은 마땅히 ‘리스크 있는 투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집을 사지 않고 버틴 동년배와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만 묻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잘못된 부동산 정책의 ‘피해자’라는 측면을 외면할 수 없다. 더구나 지금 버티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면, 재기는 훨씬 어렵다. 이는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앞으로 중산층이 더 엷어지고, 계층 간 자산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다. 출산율 등 다른 것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정부도 안심전환대출이나 특례보금자리론 같은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이 떨어져 외면받고 있다. 이들을 구제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의식해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2030 영끌족에 대한 좀 더 세심하고 적극적인 정책적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일부에서 제안하는 ‘지분 공유제’ 같은 것도 생각해 봄 직하다. 정부가 대출 원금 일부를 갚아주는 대신 집의 일정 지분을 갖고, 나중에 매각 때 시세차익이 발생하면 나누는 식이다. 그렇게 ‘주택 소유층’을 두껍게 하는 것이 사회적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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