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좋은 개살구 된 채굴, 코인 올라도 캘수록 손해
미국 대형 가상 화폐 채굴업체인 ‘셀시우스 마이닝’은 지난 11일 회사가 보유한 채굴기 2687대를 134만 달러(약 16억6100만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원가 대비 73%나 할인된 액수다. 대폭 할인이 아니면 채굴 장비가 팔리지 않을 만큼 시장이 얼어붙은 것이다.
최근 인플레이션 둔화 기대감에 가상 화폐 가격이 반짝 상승했지만, 가상 화폐 생태계의 큰 축을 차지하는 채굴 산업은 계속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채굴은 자신의 컴퓨팅 장비로 고난도 연산(演算)을 수행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가상 화폐를 얻는 것을 가리킨다. 그동안 채굴업자들은 비싼 그래픽카드 여러 대를 합쳐 만든 채굴기로 24시간 연산을 돌려가며 코인을 생성(채굴)해 돈을 벌었다.
하지만 채굴의 어려움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채굴 난도’가 높아지고, 코인 가격은 요동치면서 안정적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탄소 중립을 이유로 전력 소비가 심한 채굴을 금지하는 규제까지 늘고있다.
◇채굴 점점 어려워지고, 가격 변동은 커
가상 화폐 채굴 시장은 ‘캐면 캘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가상 자산 데이터 분석업체 매크로마이크로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7일 비트코인 하나를 채굴하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은 2만4924달러였다. 이때만 해도 비트코인 거래 가격은 4만2251달러로, 비트코인 하나를 채굴하면 쏠쏠하게 2만달러(약 2480만원) 정도를 버는 장사였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첫 가격 역전이 일어났고, 세계 3대 거래소였던 FTX의 유동성 위기가 발발한 10월부터는 코인 가격이 대부분 채굴 비용을 밑돌게 됐다.
비록 최근 비트코인의 반짝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났다. ‘채굴 난도’가 역대 최고로 치솟은 것이다. 17일 가상 화폐 정보 사이트 비트코인닷컴에 따르면, 15일(현지 시각) 비트코인 채굴 난도는 역대 최고인 37조7300억해시(가상 화폐 채굴을 위해 네트워크에 동원된 연산 능력의 총합을 뜻하는 단위)로 전주 대비 10% 이상 급등했다. 이 숫자가 클수록 비트코인 하나를 생성하는 데 채굴업체는 더 많은 시간과 전력을 써야 해 비용이 상승한다.
통상적으로 채굴 난도와 비트코인 가격은 비슷하게 움직였다. 채굴이 쉬워지면 가격이 내려가고, 어려우면 그에 비례해 상승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채굴 난도 상승을 비트코인 가격 오름세가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수익이 나지 않거나, 있더라도 미미한 상태에 갇히게 된 것이다. 금융권에선 최근 가상 화폐 가격 상승을 신규 투자자가 아닌 장기 투자자들간의 ‘자전 거래’로 보고, 일시적인 반등 후 다시 채굴 비용을 밑도는 1만6000달러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대규모 채굴 공장을 돌리는 업체들은 자금 고갈 상태에 빠지고 있다. 지난해 말 세계 최대 가상 화폐 채굴업체인 미국 코어 사이언티픽은 1조6400억원 규모의 부채를 이기지 못해 파산 보호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영국 런던 기반의 채굴 기업 아르고 블록체인, 스트롱홀드 디지털 마이닝 등도 채굴기를 헐값에 팔아 빚 청산에 급급한 상태다.
◇치솟는 전기료에 탄소 중립 규제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비용 상승도 막대한 전기료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채굴업체들엔 악재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미국의 전기료 상승률은 2021년 1월 대비 2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값싼 전기료로 채굴장이 몰려있는 노르웨이 북부의 경우에도 지난해 말 전기료는 지난 3년 평균치의 4배로 치솟았다.
탄소 중립을 지키기 위한 각국 정부의 채굴업 규제도 날로 강화되고 있다. 세계 최대 채굴지인 미국에서도 채굴업체의 전기 사용량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라는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졌다. 최근 뉴욕주에선 탄소 중립을 위해 코인 채굴 사업을 금지하는 시행령이 통과되기도 했다. 값싼 전기료 때문에 채굴장이 많이 모여있는 카자흐스탄에선 비트코인 채굴자 대상 법인세 도입 움직임도 보인다. 가상 화폐업계 내에선 “수익성 악화에 규제까지 겹쳐 채굴 기업들의 줄도산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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