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의 깊은 호흡] 새해의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기자 2023. 1.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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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나의 삶은 대개 평온하다. 하루 일과는 단순하고 루틴이 잡혀 있다. 가정생활을 제외하고는 글을 쓰거나, 글을 쓰기 위한 운동과 독서로 채워진다. 최대한 많은 것들을 단순화시키고 변수를 억제해서 내 컨디션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지 못하면 꾸준히 글을 써서 책을 내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임경선 소설가

하지만 그렇게 사는 나도 때로는 컨디션이 총체적으로 훅 무너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우선 다음의 체크리스트를 살피며 자가진단을 해본다.

1. 호르몬이 장난치는 시기인지 살핀다. 2. 혹시 그날 커피를 아직 못 마신 건 아닌가? 3. 체한 건 아닌지. 위장은 뇌와 연결되어서 속이 좋지 않으면 짜증부터 난다. 근래 바깥음식 위주로 먹었다면 의심할 만. 4. 최근 수면의 질이 나빴는지. 5. 평소 꾸준히 하던 운동을 빼먹었는지. 6. SNS를 너무 많이 했을지도. 마지막으로 7. 과로하고 충분히 쉬어주지 못해서.

몸의 체크리스트에 해당사항이 있으면 그를 보완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하나둘 해결하면 며칠 내 원래 컨디션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심신이 개운하지 않다면 다른 문제들의 가능성을 찾아본다.

일단은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요소. 1. 가까운 사람과 갈등이나 긴장 상태에 놓여 있는 건 아닌지. 2.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 이상의 사교생활을 근래 해왔는지. 내심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무리해서 만나 부하가 걸린 걸지도.

그다음으로는 일과 관련된 스트레스 요소. 1. 내 일상과 루틴을 해칠 만한 외부 일이 늘어나서 부대끼는지. 2.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낯설고 새로운 일을 하게 되어 불안이 심신을 좀먹고 있는지. 3. 어떤 일을 하면서 남이 내게 바라는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 그게 본능적으로 거슬릴 때. ‘타인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나를 억압하고 있는 것. 혹은 4. 너무 다른 성격의 여러 일을 동시처리해야만 하는 상황일 때. 부모님의 건강과 자식교육과 커리어와 가정생활과 거기에 개인의 문제까지 한데 덮친다고 상상해 보자.

이렇게 우리 인생을 힘들게 하는 것들은 사소한 몸 컨디션의 문제부터 인간관계나 일, 삶의 태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넓게 퍼져 있지만 이들은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무리해서 과로했더니 몸이 지쳐 운동을 못하고, 운동을 못하니 소화력이 떨어져 기분이 나쁘고, 기분이 나쁘니 가까운 사람에게 괜히 짜증내 말다툼을 자초한다. 모종의 의무감으로 내심 하기 싫은 일이나 만나기 싫은 사람을 꾸역꾸역 소화해 보려다가 안에서 곪아 숙면을 못 취한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견디는 힘이 약해져서 필요 이상의 거부반응을 일으켜 좋은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그러니 신경은 날서 있고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온 세상이 나를 괴롭히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일 때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자가 점검 체크리스트를 꺼낸다. 스스로의 상태를 섬세하게 바라보며 낮은 수준의 고통의 원인부터 차례차례 맥을 짚어본다. 문제를 인식해야 받아들일 수 있고, 받아들여야 그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실천으로 이어지니까.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보면 때로는 그간 정신없이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며 바쁘게 살았던 이유가 실은 자신의 진짜 중요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였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진짜 중요한 문제’들은 주로 무척 괴로운 것들이라 생각할 틈을 일부러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신의 적신호가 ‘가장 중요한 것부터 직면하라’는 직관적 메시지를 건네준 셈이다.

새해에도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 부단히 나의 몸과 마음을 ‘좋은 상태’로 유지해야 할 것이다. 고로 열심히 달리다가 뜻하지 않게 컨디션이 무너지면 내던지듯 주저앉아버리거나 억지로 내달리는 대신 원인을 차분히 살펴가며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고 싶다. 그렇게 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군더더기들을 떼어내며 다시 가벼워진 몸으로 제 페이스를 찾아 달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임경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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