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관통한 45년생 ‘장총’ 이야기
총이 주인공인 연극이 온다.
31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막하는 ‘빵야’(김은성 작·김태형 연출)는 제목에서부터 총성이 들린다. ‘빵야’는 ‘탕탕’보다는 덜 날카롭고 덜 위협적인 소리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1945년 2월 인천 부평의 조병창에서 태어난 ‘99식 소총’<사진>.
이 낡은 장총 한 자루가 말을 한다. 그가 겪은 한국 현대사를 들려주는 셈이다. 총 역할을 맡아 무대에 오르는 하성광의 안내로 ‘빵야’의 세계를 미리 들여다보았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기억되는 그는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비밀의 숲2′로도 낯익은 배우다.
“‘빵야’라는 이름의 구식 장총이 주인공이에요. 저는 낭독 공연으로 처음 만났어요. 총 역할을 제안받고 처음에는 좀 놀랐지만 금세 수긍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만든 빵야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지난 70여 년을 여행하는 설정이 재미있었어요. 의인화돼 있어 연기하기에 어려운 점은 없고요. 요즘 우리 근현대사와 군인들이 몸담았던 부대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 걷는 것 같아요.”
이 연극은 드라마 작가 나나가 소품 창고에서 99식 소총 한 자루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라고 장총이 묻는다. 독립군 토벌, 제주 4·3사건, 6·25전쟁, 빨치산 토벌, 사냥, 기업가의 로비 선물 등을 거쳐 이제는 영화나 공연의 소품 신세가 됐다는 빵야. 이 총은 우리 역사를 관통한 셈이다. 나나는 장총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설득하던 어느 날 그의 방아쇠가 다른 금속물을 가져다 붙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엠비제트컴퍼니가 제작하는 연극 ‘빵야‘는 2016년 차범석희곡상을 받은 극작가 김은성의 신작이다. “이 장총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상징하는 비극적 몸체”라고 그는 설명한다. 장총이 놓여 있던 소품창고를 중심으로 그 총의 소유주였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공연예술 우수작의 요람으로 자리 잡은 ‘창작산실’의 올해 선정작이다.
하성광은 “뜻밖에 몸을 많이 쓰는 연극”이라고 귀띔했다. 나나와 빵야가 있는 현실, 나나의 대본 속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표현해야 하는 인물들이 많은데, 짧고 리듬감 있는 대사를 속도감 있게 주고받는 게 매력이에요. 군무나 액션은 시원시원해요.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사연이 따뜻하기 때문에 관객이 교감하기 쉬울 거예요.”
그는 “연극은 이야기라서 사실 전달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각각의 사건이 어떻게 연결돼 역사의 큰 흐름으로 이어지는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치열한 현장에 있었지만 역사에서 지워진 장총 한 자루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하성광은 “이 연극 안에 들어 있는 각각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사연이 감동을 준다. 연기하는 배우들마저 눈물짓게 하는 장면들이 있다”며 “그들이 총을 들기 전까지 지내온 평범한 일상이 너무도 눈부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하성광·문태유가 빵야를, 이진희·정운선이 나나를 나눠 맡는다. 2월 26일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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