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안전하게 ‘그날’을 보낼 사회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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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었다. 연초라면 사람들 사이에서 ‘신년 계획’이나 ‘올해의 다짐’ 같은 것들이 으레 넘실거리기 마련인데, 어쩐지 올해의 화두는 그게 아닌 것 같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 때문이다. 각종 SNS에서는 가격 인상 품목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걱정스러운 한탄이 오갔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어디까지 늘어날까. 특히 여성용품인 ‘생리대’ 가격은 얼마나 올랐을까. 작년 7월 통계를 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3%인데 생리대 가격 인상률은 40%였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생리대가 가장 비싸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나, 해마다 놀라운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적이다. 경제적으로 생리용품 구입하기 어려운 상태를 뜻하는 ‘생리 빈곤’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여성은 한 달에 보통 5일간 생리를 한다. 열세 살에 초경을 시작해 쉰 살에 완경한다고 가정한다면 산술적으로 37년 동안 2220일, 인생의 6년 이상을 생리한다. 하루 최소 8개의 생리대를 사용한다면 평생 1만7760개를 쓰며, 이를 평균 600원으로 계산한다면 약 1000만원이 산출된다. 심지어 밤에 착용해야 하는 생리대는 더 비싸기 때문에 생리량이 많다면 가격은 더 올라간다. 생리량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이 값비싼 대형 생리대를 매달 구입할 수밖에 없다.
아직 끝이 아니다. 각종 PMS(월경 전 증후군)와 생리통이 남았다. 통증 해결을 위해 진통제가 매달 필요하다. 심하면 치료 목적을 위해 피임약을 복용하거나 시술을 받기도 한다. 이 경우 생리 기간 투여되는 돈은 곱절로 치솟는다. 심지어 모두가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몸에 따라 시술과 약이 소용없는 경우도 있어 결국 매달 병원을 찾아가 진통제를 맞는 여성도 있다. 인생의 6년이란 긴 세월 동안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 고통까지 겪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수한 사례를 굳이 찾아서 과장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얘기다. 이런 사례를 만약 처음 들었다면 단지 주변 여성들이 구태여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묵묵히 감내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생리용품은 삶에 꼭 필요한 물건이기에 그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도 어쩔 수 없이, 묵묵히 구입해야만 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작년부터 모든 여성에게 무료로 생리대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 여성 20%가 ‘생리 빈곤’에 놓여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5명 중 1명이 생리대를 살 여력이 없어 낡은 옷이나 신문 등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 법안 제정의 바탕이었다. 국내에서도 2016년 생리대 살 돈이 없어 고통을 겪던 취약 계층 여성 청소년의 사연이 전해지며 생리대 바우처가 만들어지는 등 지원책이 도입되고 있지만 그 범위가 너무나 제한적이고 물가 상승률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대부분 여성은 학창 시절 갑자기 친구들에게 생리대를 빌리기 위해 쩔쩔매던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들키면 큰일날 것처럼 손바닥에 가려 작은 생리대를 빌리던 경험. 그러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휴지를 돌돌 말아 급한 불을 끄던 상황이 내게도 있었다. 그때 만약 학교 화장실에 무료로 비치된 생리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그로부터 얼마나 발전했나. 부디 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의 안전한 월경권이 보장받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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