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0명 투표 ‘그레이’ 목소리… 오디오 시장이 점점 커진다
“한국의 그레이를 찾습니다.”
작년 말 오디오북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남자 주인공 크리스천 그레이 역할을 뽑는 투표가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선택 기준은 오직 목소리.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지원받아, 제작사가 그레이 역할 후보 10명을 추렸다. 이들은 자신이 성적(性的)으로 얼마나 왕성한지를 속삭이듯 말하는 대사를 녹음했다. 동명의 책과 영화 속 그레이를 떠올리며 4600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1위를 차지한 박노식(39) 성우가 ‘한국의 그레이’로 선정됐다.
오디오 플랫폼 ‘플링’은 최근 박 성우의 목소리로 탄생한 오디오북 1권을 공개했다. 총 6권 분량의 책을 75화(약 62시간)에 걸쳐 선보일 예정이다. 플링 관계자는 “한국의 대중 정서에 어울리는 ‘그레이’를 선정하기 위해 공개 투표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오디오 시장에서 귀를 사로잡는 색다른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 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시장 규모가 커진 데 이어, 이제는 콘텐츠의 차별화에 나선 것. 주부 등 특정 소비자를 겨냥한 오디오북은 물론, 드라마·영화 등 콘텐츠들도 오디오 형태로 제작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오디오 콘텐츠가 이른바 ‘가벼운 콘텐츠’라는 공식도 깨졌다. 오디오북 업체 ‘윌라’는 작년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를 출시해, 지금까지 ‘1984′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작품 95편을 오디오북으로 공개했다. 분량상 책으로 완독하기 어려운 작품도, 오디오북을 통해서는 끝까지 듣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콘텐츠들도 돋보인다. 제작 시간과 비용을 단축할 뿐 아니라, 제작 과정 자체를 하나의 이벤트로 만드는 시도다. 전자책 서비스 업체 ‘밀리의 서재’는 작년 말부터 AI 기반의 음성을 활용해 오디오북을 선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100권 이상을 제작해, 약 30권을 공개했다. 실제로 들어보면 사람과 동일하진 않더라도, 기계적이라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작년 10월 밀리의서재가 지니뮤직과 함께 내놓은 오디오 드라마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배역 19개 중 8개를 AI가 맡았다. 노래 ‘같은 베개’를 AI가 편곡한 주제곡까지 사용해 화제가 됐었다.
영상적 요소가 강한 영화 역시 오디오 콘텐츠로 제작된다. 네이버의 음악 플랫폼 바이브는 곽경택 감독의 ‘극동’을 비롯해 오디오무비 3편을 작년에 선보였다. 전문적인 배우들의 연기가 소리의 영역에서도 빛을 발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얻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활자와 영상의 중간에서, 인간의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오디오 매체의 장점이 재조명된 결과”라며 “상상을 통해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려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럼프, 이번엔 개인 변호사 법무차관 발탁
- 대기업 3분기 영업이익 34% 증가…반도체 살아나고 석유화학 침체 여전
- 기록으로 본 손흥민 50골... 가장 많은 골을 터뜨린 나라는?
- 홍명보호, 요르단·이라크 무승부로 승점 5 앞서며 독주 체제
- 한국, 1년 만 美 ‘환율 관찰 대상국’ 복귀...수출 늘어나며 흑자 커진 영향
- “김정은도 그를 못 이겨”... 이 응원가 주인공 황인범, 4연승 주역으로
- 트럼프, 월가 저승사자에 ‘親 가상화폐’ 제이 클레이튼 지명
- 앙투아네트 단두대 보낸 다이아 목걸이…67억에 팔렸다
- 트럼프 최측근 머스크, 주초 주유엔 이란 대사 만나
- [Minute to Read] S. Korean markets slide deeper as ‘Trump panic’ gro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