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지속 가능하게
더 건강하고 안정된 생태계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시대다
다년생 작물의 개발 및 육종이
하나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쟁기를 매단 소가 힘차게 나아가자 겨우내 굳어있던 흙이 부스러지며 그 속으로 푸슬푸슬 공기가 들어간다. 충분히 물을 댄 논에 어린 모가 열맞춰 심어진다. 여름내 햇빛을 듬뿍 머금고 무성하게 자라난 벼는 가을 햇빛이 여물자 누런 이삭을 달고 고개를 숙인다. 황금색을 넘실거리는 그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조차 너그럽게 한다.
그 풍성한 기억 때문일까, 벼를 베어내고 남은 황량한 들판조차도 그리 쓸쓸해보이지 않는다. 해가 지나고 봄이 오면 멈춰있는 것만 같던 그 땅에 다시 공기와 물이 들어가고 모가 자라 벼가 되고 풍성한 낟알이 영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년 반복되는 이 과정에서 모종의 불안감을 느낀 이들이 있다. 이들이 느끼는 불안감의 기원은 이 완벽해보이는 과정이 매년 한 번의 완결된 사이클로 마무리된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그다지 가리지 않고 섭취할 수 있는 잡식동물이지만, 그래도 선호하는 먹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최대 먹거리는 식물들의 낟알이다.
농촌경제연구원(KREI)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3대 작물은 옥수수(11억6547만t)와 밀(7억8974만t), 쌀(5억297만t)로, 이를 전 세계 인구 80억명으로 나누면 연간 1인당 옥수수는 146㎏, 밀 99㎏, 쌀 63㎏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세계 3대 작물인 옥수수, 밀, 벼가 모두 일년생 작물이다. 일년생 식물과 다년생 식물은 그들이 자라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있어 서로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미국 경지연구소(The Land Institute)의 제리 글로버 박사는 일년생 밀밭과 다년생 초지작물이 자라는 경지를 비교 연구한 결과, 다년생 식물들이 살아가는 땅이 더 건강하고 안정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여러 해 동안 같은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다년생 식물은 아무래도 일년생 식물에 비해 더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깊고 복잡하게 뻗어 내려간 뿌리는 주변의 흙을 더 단단하게 붙잡아 시간이 지나도 토양이 유실되는 정도가 적었고, 가뭄으로 인한 피해도 적었다.
또한 다년생 식물의 경우, 뿌리 주변에 존재하는 토양 미생물의 종류가 더 많고, 주변 토양 내 산소 및 영양분의 함유량도 더 높았다. 게다가 다년생 작물은 수확을 위해 매번 파종과 밭 갈아엎기를 하지 않아도 되기에, 이에 들어가는 노동력과 제반 비용도 적게 필요했다. 다년생 작물은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데 훨씬 더 유리했던 것이다. 그들의 우려는 이것이었다. 일년생 작물의 의존도가 높은 인류의 식량 구조가 과연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속 가능할까.
이에 과학자들은 다년생 작물의 개발에 눈을 돌렸고, 그 결과 다년생 벼의 개발에 성공했다. 중국의 연구진은 20여년의 연구 끝에 아시아계 벼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 자라는 야생 벼를 교배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냈다. ‘다년생 벼 23(Perennial Rice 23)’이라는 뜻의 PR23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벼는 2018년부터 실제 농민들에게 보급되었는데, 지금까지 4년 동안 연간 1㏊당 약 6.8t의 쌀을 생산해낸 바 있다.
이는 우리나라 통계청이 2020년 발표한 국내 경작 면적당 쌀 생산량과 맞먹는 수치로, 다년생 벼인 PR23의 생산량이 기존 벼에 비해 결코 부족하지 않음이 증명된 셈이다. 또한 첫해를 제외하고 다음 해부터는 경운과 파종의 과정이 필요없기에 2년째부터는 경작지를 운영하는 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들며, 노동 시간 역시 연간 수십일이 감소되었다.
생산량이 비슷하면서 제반 비용과 노동력이 적게 든다면, 이는 획기적인 변화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세계적 과학잡지 사이언스(Science)가 ‘2022년의 10대 과학 성과’ 중 하나로 이 다년생 벼 PR23을 선정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다년생 벼가 지닌 단점이 없지는 않다. 비록 PR23 다년생이기는 하지만 5년이 지나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수확량이 급감하기에 5년을 주기로 다시 심어야 한다는 것과 밭을 갈아 흙을 뒤섞는 농업 기법은 흙 속에 남은 해충들의 알을 죽이고 잡초들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어 이런 농법을 멈추는 경우, 해충의 피해 및 잡초 제거의 어려움이 증가한다는 단점이 있다. 실제로도 PR23을 경작하는 경우, 제초제 사용량이 기존 농법보다 1.5배까지 늘어난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런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벼를 비롯해 다년생 작물의 개발 및 육종에 대한 관심은 좀 더 확산되고 지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더 오랫동안 더 건강하게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해서는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시대이다. 어쩌면 그 하나의 실마리가 되어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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