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물에 몸 지지고 불꽃같은 의열 체험, 마음까지 ‘뜨끈뜨끈’
- 4성급 ‘호텔 아리나’ 온천수 콸콸
- 정문 나서면 강변공원 쫙 펼쳐져
- 곳곳에 재현된 암각화 눈 즐거워
-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체험관서
- 김원봉처럼 의열 단원 돼보기도
- 부산역서 밀양역까지 40분 안팎
- 가깝고도 뜨거웠던 1박2일 여정
문득 겨울 밀양 여행을 떠올렸다. 가깝고도 뜨거운 곳! 그런 곳이 필요했다. 부산역에서 열차를 타면, 밀양역까지 40분 안팎 걸린다. 가깝다. 밀양역에 내려 잠시 망설이다, 걷기로 한다. 첫 목적지가 ‘호텔 아리나’이기 때문이다. 경남 밀양시 삼문강변로에 2020년 문을 연 4성급 호텔인 이곳에는 밀양 온천이 있다. 호텔은 온천수 대욕장을 갖췄고 객실에도 온천수가 나온다. 온천은 뜨겁다. 뜨끈뜨끈하다. 밀양역에서 강변을 따라 스마트폰 지도를 참조하며 호텔까지 걸었는데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다.
▮ 뜨거운 온천 시원한 강변
호텔 아리나 정문을 나서면 코앞에 밀양강이 천천히 휘돌아 흐르는 강변공원이 자연의 숨결처럼 펼쳐진다. ‘밀양시 한국의 암각화조각공원’을 강변공원에 조성해놓았다. 세계 곳곳 암각화를 큼지막하게 재현해두었다. 여긴 체육시설도 많고 동네 주민과 자전거여행객도 많이 찾는다. 어제 저녁 호텔 아리나에 묵으며 대도시를 벗어난 한갓진 마음에 ‘좀 달렸다면’, 아니 그저 느긋이 강변 공기를 누렸다 해도 아침엔 호텔 2층 밀양 온천에 몸을 담갔다가 자석에 끌리듯 강변공원에 나오게 된다. 이번 취재 또한 이 경로를 따랐다.
지난 6일과 7일 1박 2일 일정으로 겨울 밀양 여행을 떠난 나그네를 즐거운 곤혹스러움에 빠뜨리는 선택지가 두 가지 주어졌다. 호텔 아리나의 객실 패키지 상품 가운데 ‘호텔 아리나 X 밀양아리랑 우주천문대’가 있다(1월 27일까지 운영). 매주 금요일 투숙하는 고객에게 밀양아리랑 우주천문대 입장권 2매를 준다. 오후 6시30분부터 7시30분까지 천체망원경과 별자리 체험을 할 수 있다. 애초, 이 패키지를 예약했다.
해가 지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물론, 담요에 폭 싸인 듯 짙은 어둠 속에서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는 드문 체험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1박 2일 일정으로 막상 취재 여행을 와 보니 밀양 시내로 나가 맛집을 탐방하며 음식을 취재해야 할 시간대와 겹쳤다. 더구나 밀양에 온 김에 지인과 저녁약속을 잡자니 선택 폭은 더 줄었다.
우주천문대냐 삼문동 번화가냐. 하늘은 어찌 주유와 제갈량을 동시에…. 천문대를 포기하고 삼문동으로 나갔다.
▮ 살살 걸어보다
호텔 아리나에서 20분 정도 걷자 삼문동 번화가였다. 밀양은 인구 10만3000명 남짓한 고장인데, 삼문동은 음식점·카페·숙박업소 등이 몰린 중심가였다. 여기서 일행은 훌륭한 맛집을 발견한다(박스 기사 참조). 끝내 못 가본 한밤의 밀양아리랑 우주천문대가 궁금했지만, 이튿날 아침의 온천욕과 강변 산책만으로도 기분은 훨씬 좋아졌다.
호텔에서 체크아웃한 뒤에도 굳이 택시를 부르거나 대중교통을 타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 또한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강변산책로를 따라 500~600m 걷다 용두교로 올라서 중앙로를 따라 밀양 시가지를 ‘살살 걸어가자’ 이내 밀양교가 나왔다. 밀양교 건너편 언덕에 선 저 멋진 누각이 그 유명한 밀양 영남루(보물 제147호)다. 영남루 아래 아랑각이 있다. 밀양 영남루는 보고 또 봐도 그윽하고 아름답고 소중하다. 한국의 미가 거기 있다.
영남루까지 왔다면, 선택 폭은 더 넓어진다. 밀양관아, 밀양아리랑시장,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는 지척에 있고 밀양시립박물관·밀양아리랑아트센터·국립밀양기상과학관·밀양아리랑대공원도 멀지 않다. 이번 취재에서는 해천항일테마거리에 주목했다. 가는 길에 밀양아리랑시장에 들러 유명한 ‘보리밥골목’에서 부산 방식과 꽤 다르게 내는 인심 좋고 반찬 많은 보리밥을 뚝딱 비웠다. 밀양아리랑시장의 보리밥골목은 훌륭했다.
▮ 맵고 뜨거워라, 밀양의 의열
시장 바로 곁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입구에는 ‘밀양에서는 8번의 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고 쓴 큰 안내판이 있다. 이 거리에 조성한 벽화와 동상, 사진과 조형물은 일제강점기 밀양의 항일 운동을 되새기고 기념한다. 이 거리를 걷다 보면 “대체 밀양은 어떤 곳이기에 이토록 강인한 정신으로 ‘강도 일제’에 저항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의 핵심은 바로 ‘의열단(義烈團)’이다. 그렇다.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영화 ‘밀정’의 대사)의 그 의열단이다.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한쪽에 나란히 선 의열기념관과 의열체험관은 이 거리의 심장부다. 의열 투쟁은 독립운동·항일투쟁 가운데 가장 뜨거웠던 방식·철학·실천이다. 한민족을 억압·착취·폭행하는 일본 군국주의 세력과 그 하수인을 정확히 가려내고 노려 직접 공격하는 과감하고도, 자기를 결연히 희생하는 방식이었다.
김원봉을 비롯한 숱한 의열단원이 밀양에서 나왔고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항일투쟁을 펼친 밀양 사람은 더욱 많았다.
▮ 당신은 의열단 비밀 단원!
의열기념관은 규모는 크지 않은데, 밀양 사람들의 의열 투쟁에 관해 매우 짜임새 있게 콘텐츠를 구성해 두었다. 의열체험관은 말 그대로 ‘체험관’이다. 미디어 아트나 게임 기술을 활용해 ‘의열단이 되어 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의열체험관에 들어서면, 가상의 기차를 타야 한다. 그 기차는 당신을 일제강점기로 데려다 놓는다. 거기서 비밀리에 걸려 오는 전화를 받아야 한다. 옛날식 수화기 저쪽에서 ‘의열 동지’가 당신의 임무를 말해준다. 자! 이제부터 의열단원 체험 시작이다.
의열단에 관한 역사 퀴즈를 풀거나 의열단의 전투에 참여하고, 게임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과하는 동안 의열의 마음이 깃드는 걸 느꼈다. 지역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문화유산을 남이 잘 하지 않는 독특한 방식으로 기리고 가꾸는 모습이 인상 깊다. 밀양 온천과는 또 다르게 뜨거운 여행을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에서는 체험할 수 있었다. 1박 2일 일정을 끝내고 밀양역에서 부산역으로 돌아오자, 여전히 한낮이었다. 일행 한 명은 “1박 2일 여행 갔다가 이렇게 부산에 빨리 돌아온 것도 처음”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밀양은 가깝고 뜨거웠다.
# 인근 맛집들
- 곱돌 위 막창과 삼겹살 조화, 정 넘치는 보리밥 골목
1박 2일 일정에서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소중한 ‘저녁’이 왔다. 호텔을 나와 밀양시 삼문동을 거닐다 ‘막창꾼’이라는 음식점을 발견했다. “그곳 음식에 관한 정보가 적을 땐 ‘굽는 종목’을 택하면 실패할 확률은 확실히 줄어들죠”라는 일행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막창꾼은 기대 이상이었다. 프랜차이즈가 아니고 하나뿐인 단독 점포라고 했다. 곱돌로 만든 불판 위에 네 가지 메뉴를 한꺼번에 올려 지글지글 굽는다. 양념막창·초벌막창·듀록삼겹살·우삼겹살이다. 직원이 각각의 특징과 먹는 법을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오호! 이 다채롭고 진한 고기 맛의 향연 좀 보소. 이 메뉴를 개발하고 조합하기까지 공력을 꽤 많이 들였을 듯하다. 다채로운 양념장도 고기 풍미를 도왔다. 밑반찬은 깔끔했다. 막창꾼의 화장실에 가니 고객용 칫솔을 비치해두었다. 손님 기분 깔끔하라고 칫솔까지 비치해둔 고깃집은 처음이다. 식당 한쪽에는 이런 글귀를 써두었다. “꾼: 어떤 일을 즐겨 하는 사람.”
밀양시 내일동은 참으로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준다. ‘내일’(tomorrow)이 떠오르기 때문이다(물론 한자는 다르다). 둘쨋 날 점심시간에 딱 맞춰 밀양시 내일동 밀양아리랑시장에 도착했다. 장날이라 그런지 활기가 돌았다. 시장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보리밥골목’이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들어서고 보니 부산의 보리밥집과는 음식 내는 방법은 조금 다르다. 큰 그릇 여러 개에 보리밥을 비빌 반찬과 장아찌가 그득그득 담겼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함께 나눠 먹듯 쓱쓱 보리밥을 비벼 먹는다. 맛은 강했고 정은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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