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 민노총 간부 국보법 위반 알고도... 北 화낼까봐 수사 뭉개”
국가정보원이 민주노총 핵심 간부의 북한 공작원 접촉을 확인한 시점은 2017년이었다. 그러나 압수수색 등 본격적 수사가 이뤄진 것은 6년이 흐른 2023년이다. 이와 관련, 방첩 당국 관계자는 18일 “당시 문재인 국정원의 윗선에서 남북 관계 등을 이유로 사실상 수사를 뭉개고 미뤘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는 남북, 미·북 정상회담 등 대북 이벤트에 몰두하고 있었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싱가포르 미·북 회담, 평양 정상회담 등이 이어졌다. 노조·시민단체 간부 등이 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는 증거를 확보하고도 북한이 화를 낼까 봐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를 본격화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노이 노딜’ 이후인 2019년엔 미·북 관계는 물론 남북 관계까지 냉각됐다. 전직 안보 당국자는 “간첩 혐의 증거가 쌓이고 있는 만큼 수사 폭을 넓혀야 한다고 보고했지만, 당시 윗선에선 ‘증거를 더 모아야 하지 않느냐’ ‘남북 관계를 지켜보고 제대로 하자’는 식으로 말하며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식어가는 남북 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다른 전직 당국자는 “압수수색 등으로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만들면 고위직 간부들이 휴가를 내고 안 나오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명백한 데 수사 결재를 안 하면 직무 유기 혐의가 되고 ‘수사를 하지 말라’고 직접 지시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되기 때문에 이런저런 핑계로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다. 이 전직은 “상명하복이 분명한 조직에서 윗선이 사실상 수사 전개를 막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2018~2019년 방첩 당국은 이날 압수수색을 한 민노총 전·현직 간부들의 국보법 위반 혐의 외에도 최근 창원·제주 등에서 불거진 간첩 혐의 사건들의 증거를 상당수 확보하고 있었다. 수사를 확대해야 정상이었지만 윗선에서 사실상 막았다는 것이다. 그사이 국보법 위반 혐의자들은 캄보디아 프놈펜과 앙코르와트, 베트남 하노이 등지를 오가며 북한 공작원과 접촉하거나 그 지령을 받아 반정부, 반미 시위 등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 부서 관계자는 “민노총 간부들이 접촉한 북한 공작원과 창원·제주 간첩 혐의자들이 만난 북한 공작원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방첩 당국의 수사가 느슨해지자 동남아를 거점으로 활개 치던 북한 공작원들이 더 쉽게 우리 내부에 손을 뻗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국정원 등은 2021년 ‘청주 간첩단 사건’을 수사해 검찰 기소를 통해 공개했다. 방첩 기관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에 원칙을 끝까지 지키려는 간부가 있었다”며 “그런 분들이 원장 등 국정원 윗선에 강하게 수사를 요구해 간첩단 수사가 진행된 것”이라고 했다. 당시 ‘청주 간첩단 사건’이 알려졌을 때 국정원 내부 게시판에는 일부 직원들이 “드디어 국정원이 할 일을 한다”는 응원글을 달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지금 수사 중인 간첩단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며 “원칙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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