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 8억4900만원 집이 7억에 팔렸다

정순우 기자 2023. 1.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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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보다 낮게 거래된 아파트 전국 794건… 세금 불만 쏟아져

지난해 집값이 급락하면서 공시가격보다 낮은 금액에 아파트가 매매된 사례가 전국적으로 800건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사이 아파트 시세가 정부가 정한 과세 기준인 공시가격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납세자 입장에선 시세보다 비싼 가격을 기준으로 부동산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를 낸 셈이다.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주변 시세를 고려할 때, 실제 이 같은 ‘역전 사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픽=양인성

18일 부동산 빅데이터 기업 직방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적으로 아파트 실거래가가 공시가격보다 낮은 거래는 총 794건이었다. 경기 의왕시 휴먼시아청계마을1단지 전용면적 121㎡는 작년 공시가격이 8억4900만원이었는데 지난달 그보다 1억5000만원가량 낮은 7억원에 거래됐다. 지역별로 충북이 170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101건), 대구(88건), 경북(81건), 부산(73건), 경남(49건), 인천(48건), 서울(40건) 등 순으로 뒤를 이었다. 1월부터 10월까지는 40~70건 수준이었지만 11월 95건, 12월 124건 등 연말 들어 급증했다. 집값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다주택자들의 급매물까지 몰렸던 것으로 풀이된다.

세금 부과의 기준인 공시가격은 국토교통부가 전년도 집값 변동에 정책 목표까지 감안해 매년 1월 1일 기준으로 매긴다. 매매 시세와 달리 공시가격은 1년간 고정되기 때문에 너무 높으면 집값 하락기에 시세와 역전되면서 조세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는 공시가격을 시세의 60%대 이하로 유지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공시가격이 너무 낮아 조세 형평에 어긋난다며 이를 시세의 70~8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금리 인상 여파로 집값이 급락하면서 시세와 공시가가 역전되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매매 시세와 과세 기준이 역전됐다는 것은 명백한 정책 실패일뿐더러 헌법상 과잉 금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부동산 공시 제도를 근본부터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순우 기자 A8면에 계속

서울 강동구의 20평대 아파트(공시가격 8억1000만원)를 가진 40대 권모씨는 지난해 재산세로 160만원을 냈다. 그런데 단지 내 같은 평형 매물이 최근 7억원대 중반에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년 초 시세에 비해 4억원 넘게 떨어진 것이다. 권씨는 “집값 빠진 것만 생각해도 속이 쓰린데 작년 보유세까지 억울하게 더 많이 냈다고 생각하니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로 전국 아파트 실거래 가격(1~11월)이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14.3%)으로 떨어지면서 개별 단지에서는 시세가 공시가격을 밑도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보유세는 집값이 떨어지기 전인 연초 공시가격 기준으로 부과되는 구조여서 납세자들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세금 납부 이후로도 집값 하락세는 멈출 기미가 안 보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속이 탄다’는 글이 넘쳐난다. 전문가들도 “불합리한 과세 제도를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집값 급락에 공시가·실거래가 역전

서울 노원구 삼호3차 전용면적 59㎡는 작년 1월 1일 기준 공시가격이 5억6400만원이었는데 지난달 5억1000만원에 거래됐다. 2021년 최고 거래가(9억8000만원)와 비교하면 공시가격이 시세의 60%에 못 미친다. 하지만 지난해 가격이 거의 반 토막 나면서 시세와 공시가격이 역전되기에 이르렀다.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6단지 83㎡도 지난달 실거래가(19억원)가 작년 공시가격(19억4500만원)보다 4500만원 낮다. 2021년(27억5000만원) 대비 실거래가가 8억5000만원(31%)이나 급락하면서 빚어진 역전 현상이다.

높은 시세에 맞춰 매겨진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작년 7·9월 재산세, 11월 종부세까지 낸 사람들은 ‘허탈하다’는 입장이다. 서울 송파구의 30평대 아파트를 가진 40대 장모씨는 “집값이 작년 초 대비 6억원 정도 떨어져 4년 전 매수 가격보다 낮아졌다”며 “대출 금리도 급등해 부담이 큰데, 세금은 유독 거품이 잔뜩 낀 가격으로 냈다”면서 “세금을 돌려주는 것도 아니고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올해 보유세는 대폭 줄어들 듯

아파트 공시가격과 시세의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은 작년 집값이 워낙 많이 떨어진 영향도 있지만 지난 정부에서 공시가격을 너무 가파르게 올린 탓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도입하고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을 69%에서 지난해 71.5%로 높였다. 시세 15억원 넘는 집은 시세 반영률이 81.2%로 높아졌다. 그 결과 2020년 1년간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7.57%였는데, 공시가격 상승률은 두 배가 넘는 19.05%에 달했다.

현 정부는 무리한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올해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기로 했다. 집값이 하락해도 공시가격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완충지대’를 넓히는 것이다. 여기에 작년 아파트 값 하락 효과까지 감안하면 올해 공시가격은 작년 대비 평균 10% 이상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올해 아파트 공시가격은 오는 3월 17일 공개된다.

정부는 공시가격 인하와 별개로 종부세 공제 확대, 세율 인하 등의 세 부담 완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시가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작년에 비해 낮아지는 것은 분명하다”며 “다른 세 부담 경감 조치들까지 더해지면 올해 보유세는 작년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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