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말테우리 첫사랑
가을엔 하얀 메밀꽃, 들엔 억새꽃, 겨울엔 눈꽃. 제주 섬은 봄날 유채꽃으로 노랗기 전까진 오래도록 새하얀 흰 섬. 여러 군상이 살아간다. 귤 낭밭(과수원)에 허리가 굽은 귤농사 부부, 유채밭에 꽃 필 날만 애태우는 유채장수, 말과 소를 들에 풀어놓고 돌보는 제주도식 카우보이 테우리, 물질(바닷일)로 먹고사는 좀녀(해녀) 할망은 겨우내 숨고르기를 하는데, 중산간에 사는 테우리는 잦은 폭설과 냉골 추위에 맞서 사투를 벌여야 했다.
말몰이꾼 말목동은 ‘말테우리’라 불렀어. 보리밥으로 만드는 음료 ‘쉰다리’를 한 그릇 푸지게 마신 뒤 말떼를 앞세우고 오름을 넘어 산길을 훑곤 했는데, 샘물이 드문 제주에선 물배를 채워둬야 목마르지 않고 하루 일이 수월했지. 괴괴한 날씨에도 짐승들은 들판을 뛰어다녔다. 자유란 목숨보다 값진 것. 눈보라를 사랑한 하얀 말이 죽은 자리엔 흰 민들레가 피기도 했다.
말테우리의 집을 가보면 모물가루(메밀가루)로 빙떡이나 국수를 해 먹고, 보리밥으로 끼니를 이었는데 잔치 때는 여럿이 도새기(돼지)를 잡았다. 괸당(친척)들 모이는 명절엔 바다에서 건진 어물도 빼놓을 수 없었지. “너른 바당 앞을 재어 한질(길) 두질 들어가난 저승질이 오락가락. 타 다니는 칠성판아 이어사는 명정포야 못할 일이 요 일이라네. 모진 광풍아 부지마라.”(제주 해녀 노래) 사돈네 팔촌 어디라도 해녀 없는 집이 드물었지. 말테우리는 오름 봉우리에서 먼바다를 내다보며 ‘사람 생각’을 했다. 가수 김지애가 부른 노래 ‘말테우리’는 헤이 헤이 말을 모는 소리로 시작해. “바다 건너 떠나버린 첫사랑이 그리워 말테우리는 깊은 계곡을 추억 찾아 헤맨다. 예전의 갈대꽃은 그대로 피어있는데 정만 주고 떠나버린 말테우리 첫사랑. 바다 건너 떠나버린 첫사랑이 그리워. 예전의 갈대꽃은 그대로 피어있는데 말테우리 첫사랑은 바다 건너 떠났네.” 하루는 섬에서 미역국을 후후 불어 먹으며 말테우리의 노래를 부르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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