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사람됨을 잃은 통치

이용욱 기자 2023. 1. 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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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슬픔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렵고,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하물며 남은 삶이 많은 자식이 사고로 생을 마감한다면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것이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새겨진다. 이태원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심정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백분의 일쯤은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 어머니를 잃은 사람으로서 희생자들과 비슷한 나이의 딸을 둔 아버지로서 하는 말이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유족들에 대한 배려가 인간의 도리라고 믿는다.

이용욱 논설위원

떠나는 것보다 무서운 건 남는 것이다. 유족들은 상실의 허기를 감당해야 한다. 어머니를 여읜 직후 회사 후배가 “읽다가 마음이 힘들면 덮으세요”라며 조심스럽게 건네준 책 <슬픔의 위안>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슬픔은 슬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슬프다는 이유 자체로 큰 좌절을 겪었으며 그로 인해 삶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이 너무나 당황했기 때문에 당황했다. 이상한 반응 같지만 지극히 일반적인 반응이다.” 돌아보니 사별 후 감정은 당황함과 막막함이었다. 희생자들의 가족들은 춥고 쓸쓸할 것이다.

일본 영화 <굿바이>는 죽은 이들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첼리스트 다이고는 오케스트라의 해산으로 실업자가 돼 낙향한다. 그가 ‘여행의 도우미’라는 신문 구인란을 보고 찾은 곳은 여행사가 아니라, 시신을 수습해 관에 넣는 일을 하는 납관회사였다. 그는 시신을 닦아 수의를 입히고, 얼굴을 화장하는 등 고인을 단정하게 꾸미는 납관사 일에 빠져든다. 첼로를 연주하던 손은 시신을 만지게 됐지만, 죽은 이를 정성스럽게 배웅하는 일이 예술 못지않게 섬세하며 보람된 작업이라고 느끼게 된다.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다이고 일행의 지각에 화를 냈던 한 남성은 이들이 떠날 때 고개를 숙인다. “오늘 아내는 지금껏 본 모습 중에서 제일 예뻤습니다.” 10여년 전 관람한 이 영화의 DVD를 최근 다시 꺼내 봤다. 예를 갖춘 추모,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은 참사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시종일관 무례했다. 진심으로 애도하지 않았고, 남은 이들의 슬픔을 헤아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윗선에 면죄부를 준 채 현장에 책임을 물었고, 국회 국정조사특위는 정부·여당의 비협조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고, 49재 추모제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파면됐어야 마땅한 대통령의 고교·대학 후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자리를 지켰다. 몇몇 여권 인사들은 유족들에게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막말을 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사람됨을 잃은 정치”라고 했고, 진중권씨는 “책임지겠다는 놈이 한 놈도 없냐. 너희들도 인간이냐”고 했다. 공감한다. 지금 우리는 사람됨을 잃은 통치를 목도하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 12일 국조특위 공청회에서 버려진 심정을 토로했다. 고(故) 배우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는 “독립투사처럼 이렇게 해야 하는 겁니까. 나라가 해주면 되는데…”라고 했고, 고 박가영씨 어머니 최선미씨는 “놀러가서 죽었다고? 우리 청년들은 놀면 안 되나. 놀러오라면서, 축제라면서 홍보하지 않았나”라고 했다. 고 유채화씨의 동생은 “저희 유가족은 사회에 시끄러운 존재들이 아니다. 한 국민으로서 억울한 목소리를 내는 것뿐”이라고 했다. 생존자 김초롱씨는 “참사 후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첫 브리핑을 보며 처음으로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사람들은 장례를 치르면서 인간관계를 돌아보고, 주변의 장례 때 자신이 보였던 무심함과 잘못을 반성하게 됐다고 말한다. 유족들, 이들의 슬픔을 공감하는 국민들에게 윤 대통령 등 정권 핵심 인사들은 어떻게 비칠까. 차가운 셈법은 잠시 작은 이익을 가져다줄 뿐이지만, 공감은 허다한 허물을 덮을 수 있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이런 이치를 외면한 채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데 급급했다.

다시 <슬픔의 위안>을 인용한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소중했듯 당신도 그 사람에게 소중했다. 부디, 때가 되면 이런 의미를 마음에 새겨 슬픔을 이겨내길 바란다. (…) 세상을 떠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과거에도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도 의미가 있다는 깨달음, 어쩌면 이것이 당신의 출발점일지 모른다.” 매정하고, 못난 정권을 대신해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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