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향의 해피藥] 난생처음 받은 '감기약 판매 제한' 공문
최근 중국이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완화하면서 코로나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중국의 큰 명절인 춘제가 다가오면서 감기약 품귀 현상이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갑작스러운 한파로 독감 환자가 늘어나 감기약 수요가 급증했다.
이에 보건당국은 ‘감기약 사재기 방지’를 위한 공문을 약국에 전달했다. 약국에 근무하면서 감기약의 판매 제한 공문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필자는 평소 감기약을 습관적으로 사 가는 분, 제일 센 감기약을 달라는 분, 한 번만 먹으면 증상이 뚝 떨어지는 감기약을 요청하는 분, 감기에 제일 좋은 약을 달라는 분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제일 세고 잘 듣고 좋은 감기약은 쉬는 겁니다.”
감기는 바이러스 질환이다. 일반 감기, 독감, 코로나 모두 바이러스 질환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약국에서 판매하는 감기약은 감기 치료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감기 바이러스를 죽이는 약은 아니다. 즉 감기로 인해 생기는 불편한 증상을 없애주는 약이라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크기가 훨씬 작아서 보통의 광학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다. 세균의 50~100분의 1 크기로, 이렇게 작다 보니 자체적으로 뭘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기생할 곳을 찾아 숨어들어간다.
"제일 좋은 감기약은 푹 쉬는 것"
사람도 다양한 인종이 있고, 동물도 식물도 종류가 다양하듯 바이러스 종류도 아주 많다. 그러나 사람의 생존 방식이 비슷하듯이 바이러스의 생존 방식도 비슷하다. 사람이든 동식물이든 바이러스든 생명체의 본질은 동일하다. 무조건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남아서 후손을 남기고 진화해가는 것이 생명체의 임무다. 바이러스는 살아남기 위해 기생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바이러스가 살아남는 방식은 먼저 다른 세포에 조용히 달라붙는 것이다. 이후 몰래 세포 안으로 자신의 DNA를 투입하고 그 세포를 이용해 자신의 DNA를 복제한다. 증식이 끝나면 세포를 뚫고 나와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마치 첩보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것같이 치밀하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우리가 아니지 않은가?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을 알아차린 순간 우리 면역체계에 경보가 울리고 면역세포가 출동해 바이러스와 한판승부가 벌어진다. 바이러스와 면역세포의 치열한 전투 흔적이 콧물, 기침, 인후통, 고열, 오한 등인 것이다. 그러니까 몸 안에서 이런 전투가 벌어질 때 우리가 해야 할 현명한 행동은 이 전투에 힘을 실어주는 것, 즉 에너지를 집중해주는 것이다. 무조건 푹 쉬어야 한다.
불편한 증상 있으면 약 복용 바람직
그러면서 불편한 증상을 개선해주는 감기약을 살짝 써주는 것이다. 콧물이 많이 흐르고 코가 막혀서 잠이 안 올 때는 콧물약을 복용하고, 목이 너무 아프고 칼칼해서 힘들면 소염제를 복용하고, 가래가 끓어서 숨쉬기가 곤란하면 가래를 녹이는 거담제를 복용하면 된다. 또 기침이 심해서 잠을 못 이룰 정도면 기침약을 복용하고, 열이 펄펄 끓고 오한이 들면서 근육통이 동반되면 해열진통제를 처방하는 것이다. 간혹 ‘감기는 약을 먹어도 1주일, 안 먹어도 1주일’이라고 얘기하면서 약을 복용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약을 너무 안 먹는 것, 약에 너무 의존하는 것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약은 도구일 뿐이다. 필요하면 적당히 쓰면 된다. 감기는 바이러스 질환인데 치료 시기를 놓쳐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감기가 비염으로, 기침이 기관지염으로, 목 아픔이 편도선염으로 번지면 이때는 바이러스 질환이 아니라 세균성 질환으로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받아야 하고 치료 기간도 늘어난다. 2~3주 심하면 한 달 내내 고생한다. 그러니 뭐든 몸이 신호를 보낼 때 빨리 알아차리고 대응해야 한다. 감기는 한 번 걸렸다고 해서 다시 안 걸리는 게 아니다.
감기에 자주 걸리거나 감기 증상이 오래간다면 감기약에만 의존하며 증상을 없애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 좀 더 근본적으로 몸의 면역체계를 바로잡아 면역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바이러스와 인간의 생존 투쟁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감기약은 약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이지향 충남 아산 큰마음약국 대표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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