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여야의 퇴행 경쟁

원재연 2023. 1. 18.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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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이재명 방탄’ 올인하고
국힘 대표 경선에는 ‘윤심’만 보여
당내 민주주의 후퇴 방치하다간
내년 총선서 유권자 심판 받을 것

새해 들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지난 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이었다.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 수십명이 병풍처럼 이 대표를 둘러싸고 동행했다. 이 대표가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한 개인 비리 혐의로 검찰에 불려나오는 데 당 인사들이 대거 따라나선 것이다. 피의자의 검찰 출석이 아니라 대선 출정식 같았다는 비아냥이 나왔다.

민주당은 대장동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이 대표 소환 통보에도 “법의 외관을 빙자한 사법 살인”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대검찰청을 찾아 “선거에 패배한 정적을 죽이려고 윤석열 검찰이 혈안이 돼 있다”고 항의했고, 박 원내대표는 “야당 대표 망신주기를 넘어 악마화에 여념이 없다”고 주장했다. ‘야당 탄압’ ‘정치 보복’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이 대표 방패막이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원재연 논설위원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 패배로 5년 만에 야당으로 전락했고, 이어진 지방선거에서도 졌다. 그런데도 반성은커녕 다수 의석을 무기로 윤석열정부 발목을 잡고, 입법 폭주를 계속했다. 이번에는 이 대표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자 당력을 총동원해 방어에 나서고 있다. 당 홍보국이 이 대표 수사 검사 명단을 뿌리며 좌표를 찍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당과 무관한 당 대표 개인 비리 의혹에 왜 당이 나서느냐’는 합리적이고 당연한 비판은 “단일대오”, “내부 총질”이란 주류의 윽박지르기에 사그라든다. ‘방탄 정당’, ‘사당’이란 비판을 받는 게 정통 민주 정당의 70년 맥을 잇는다고 자처하는 민주당의 현주소다.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다. 문재인정부의 무능과 오만 덕에 대선에서 가까스로 이겼으면서도 자기들이 잘해서 정권을 잡은 줄 안다. 집권 이후 몇 개월 동안 30대 당대표와 윤핵관이 볼썽사나운 집안싸움을 벌이더니 이번엔 오는 3월 전당대회 앞두고 ‘윤심 경쟁’에 빠져 있다. 집권여당 대표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전략이나 경제·안보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친윤, 비윤으로 나뉘어 진흙탕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당 주류가 전대를 불과 몇 달 앞두고 국민여론조사를 빼고 ‘100% 당원투표’로 경선룰을 바꾼 것이나, 당원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를 압박하는 것도 떳떳하지 못한 처사다.

윤 대통령은 연초 언론 인터뷰에서 “여의도 정치를 내가 얼마나 했다고 무슨 윤핵관이 있고 윤심이 있겠나”라고 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들을 사람은 없다. 국민 대부분은 누가 윤심을 얻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손사래를 치니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실과 여당 주류는 당 대표로 확실한 친윤 인사를 앉혀야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과연 그럴까. 친박, 비박, 진박으로 갈려 싸우다 압승이 예상됐던 2016년 총선에서 참패한 게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이다.

새해에도 나라 안팎의 상황은 엄중하다. 여당이 윤심 충성 경쟁으로 날을 지새우고, 원내 제1당인 야당이 민생 대신 ‘당 대표 구하기’에 올인해도 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전략경쟁의 영향으로 국제정세는 안갯속이다.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글로벌 시장 블록화 등으로 경제 질서가 바뀌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가능성과 북·중·러의 밀착 등 안보 위협도 상존한다.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비롯한 국내 과제도 산적하다. 대내외 거센 파도를 어떻게 넘어야 할지 걱정이지만 여야 정치권엔 이에 대처할 실력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여야의 행태는 한국 정치가 발전은커녕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억압되고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지 못한다면 건강한 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이 염두에 둔 특정인을 당 대표로 미는 것도 당내 민주주의 훼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권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유권자가 나설 수밖에 없다. 내년 4월 총선이 그럴 기회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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