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3만 청년, 집 안에 숨어서 산다
취업난·실직이 가장 큰 원인
40%는 5년 이상 고립 지속돼
시, 3월 지원대책 마련하기로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1년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30대 A씨는 고립의 시작이 대학 입시 실패였다고 했다. 그는 “왕따를 당해 학교가 가기 싫었고, 그래서 성적이 좋지 않아 대학을 가지 못했다”며 “부모님이 재수를 반대하셔서 그 이후 은둔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만 19~39세 청년 약 13만명이 고립과 은둔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생활이 5년 이상 장기화된 경우도 41.5%에 달했다. 서울시는 고립 청년에 대한 정확한 실태 분석을 위해 청년이 함께 거주 중인 5221가구(청년층 6926명)와 별도의 개별 청년 55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정서·물리적 고립된 상태이거나 외출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은둔 상태가 6개월 이상 이어졌고, 최근 한 달 내 직업·구직 활동을 하지 않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고립 당사자와 지원기관 실무자 26명에 대한 심층 조사도 병행됐다. 조사 결과 청년층 가운데 고립·은둔 비율은 4.5%다. 이를 서울 전체 인구 구성에 적용하면 최대 12만9000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전국 청년 대상으로 범위를 넓히면 약 61만명에 이를 수 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고립 청년의 절반 이상(55.6%)은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10명 중 4명(41.5%)은 이런 생활이 5년 이상으로 장기화된 상태였다. 기간으로 보면 1~3년(22.6%) 혹은 10년 이상(21.3%)의 비중이 가장 높다.
청년들은 실직과 취업의 어려움(45.5%)을 겪으며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했다. 심리·정신적 고통(40.9%)과 인간관계의 어려움(40.3%)도 주요한 원인이다.
고립 청년 10명 중 8명은 스스로 가벼운 수준 이상의 우울을 겪고 있다고 느꼈고, 중증 이상의 우울감을 나타낸 비중도 57.6%나 된다. 이에 정신 건강과 관련한 약물을 복용하는 비율이 18.5%로, 청년 평균(8.6%)의 2배 이상이었다.
이들은 절반 이상(55.7%)이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답했다. 10명 중 4명 이상은 취미활동(31.1%), 취업·공부(22%), 병원 진단·치료(15.4%) 등 실제로 여러 시도를 했다.
지금의 상태가 나아지려면 경제적 지원(57.2%)이 가장 필요하다고도 했다. 특히 당사자 심층 조사에서 의식주를 현금보다는 바우처 형태로 지원하는 것이 극복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언급도 나왔다. 은둔 중인 자녀와 함께 사는 가족들은 고립을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22.4%)이나 가족 상담(22.1%)을 원하고 있었다.
2021년 사회적 고립 청년 지원 조례를 제정한 서울시는 이번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오는 3월 중으로 종합지원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은둔·고립 상태를 초기에 진단·분류할 수 있도록 기준을 설정하고, ‘마음건강 비전센터’(가칭)를 조성해 전문병원 등을 통한 과학적인 지원 체계도 갖출 계획이다.
2020년부터 사회 복귀를 위한 상담, 공동생활, 예술치료 등을 지원하는 서울시는 지난해(757명) 전년(298명)보다 2.5배가 넘는 고립 청년을 발굴했다.
김철희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장은 “전국 처음 시행된 고립 청년 실태조사로 유의미한 결과를 확보했다”며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책을 설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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