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안전하고 자유롭게 다니기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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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가을 면허를 딴 지 13년 만에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자신만만하게 시작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운전할 수 있게 됐지만, 매주 닷새는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만을 위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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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가을 면허를 딴 지 13년 만에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자신만만하게 시작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신호 보랴, 차선 변경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가족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주말마다 운전대를 잡았지만, 그때마다 생각이 많아졌다. '그냥 오늘은 하지 말까? 긴장되는데', '아니야 계속해야 늘지!' 그즈음 내게 가장 부러운 사람은 혼자 운전하는 도로 위의 운전자들이었다. 나는 언제쯤 긴장하지 않고 혼자 운전할 수 있을까? 그때마다 친구들은 "하다 보면 느니까, 계속해야 해"라고 말했다.
초보 운전 3개월 차. '혼자 운전해볼까?' 마음먹게 된 건, 이제 필요한 건 운전실력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꾸 경험해야 실력도 늘 테니 말이다. 평소에는 운전석 옆자리에서, 때로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길을 혼자 운전해서 가다니! 한껏 들뜬 마음으로 친구를 만났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캄캄한 밤에 하는 운전도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복병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주차. 걱정과 달리 비어 있는 자리에 어렵지 않게 주차까지 완료했다. '나도 이제 혼자 운전을 할 수 있다니' 반듯하게 주차된 차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기쁨과 혼자 운전이라는 하나의 벽을 깼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데, 재난 문자가 울린다. 무슨 일이지?
'[서울교통공사] 4호선 삼각지역 상선 당고개 방면 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불법시위로 무정차 통과하고 있습니다. 열차 이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속이 시끄러워졌다. '지하철 타는 일이 불법시위라고?', '한국 사회에서 이동권은 비장애인만 누릴 수 있는 권리인가?' 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에 대해 20년 동안 말하고 있는데 들리지 않는 걸까? 서울시 19곳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일이 정부에서 감당하지 못할 돈일까?
비장애인인 나는 운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동 수단 옵션에 자동차가 추가됐다. 운전을 제외하고는 걷는 일, 버스를 타는 일, 지하철 타는 일 모두 내게 어렵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위를 통해서 얻어낸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 고작 지하철 타는 일이 장애인에게 왜 이리 호락호락하지 않을까? 이들의 이야기가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으면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닌가? 바뀌는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장애인들은 언제쯤 혼자 지하철을 타고 자유로이 삶의 반경을 넓힐 수 있을까?
운전할 수 있게 됐지만, 매주 닷새는 지하철을 탄다. 운전이라는 옵션이 있는 사람에게도, 없는 사람에게도 지하철은 중요한 이동 수단이다.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만을 위한 게 아니다. 지하철은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친구에게도, 발목을 자주 삐끗하는 내게도, 오래 걷다 보면 숨이 차는 할머니에게도 필요하다. 갓난아이로 태어나 노인으로 삶을 마감한다면, 우리 모두 사회적 약자로 삶을 시작해서 마감하는 셈이다. 세상에 남의 일이란 없다.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을까?' 겁먹었지만, 계속 운전대를 잡았기에 이제는 혼자서 가고 싶은 곳을 간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그러니 계속 말해야 한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 자유롭게, 그리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을 때까지.
김경희 오키로북스 전문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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