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은 기다립니다…설에도 ‘기억’을, 골목에 ‘활기’를
상인들 ‘추모 자선 캠페인’ 여는 등 일상 회복 위해 고군분투
“명절엔 희생자 떡국 끓여줄 생각” “봄엔 나아지겠죠” 희망가
‘이태원에 사랑이 자리 잡기를!’
지난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위치한 점포 외벽 곳곳에는 이 같은 문구가 적힌 초록색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QR 코드를 찍어보니 오는 2월4일부터 5일까지 이태원 곳곳에서 음악 공연, 벼룩시장, 미술 치료 등 추모 자선 캠페인을 진행한다는 내용이 나왔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약 3개월. 이태원 상인들은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힘겨운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행사를 준비한 ‘이태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황순재씨(46)는 “문화예술 행사가 이태원을 떠올릴 때 드는 미안함과 불편한 마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13~14일 20여명의 상인들은 이태원을 찾은 방문객 중 ‘아이 러브 이태원’ 포스터 사진을 찍어 오는 이들에게 30% 할인을 제공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상인들의 고군분투도 침체된 분위기를 가리진 못했다. 이날 기자가 만난 상인들은 “어쩔 수 없이 버티는 중”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6월부터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주점을 운영해온 권구민씨(29)는 1억원 근처이던 월 매출이 30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고 했다. 특히 임대료 부담을 호소하는 상인이 많았다. 참사가 있기 전, 코로나19 방역이 대폭 완화되면서 이태원을 찾는 이가 늘자 건물주들은 너도나도 월세를 올렸는데 참사가 발생했다. 편의점 사장 A씨는 “(코로나19에서) 살아날 만하니까 월세가 10%씩 올랐는데 그 상태에서 참사가 났다”며 “이 일대가 다 그렇다”고 토로했다. 다른 편의점 직원 B씨는 “참사 직후보다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사장님은 ‘봄까지는 기다려봐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더라”라고 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역시 힘을 못 쓰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10일부터 10% 할인 가격으로 발행한 ‘이태원상권회복상품권’의 효과를 체감하는 상인은 드물었다. 이태원 상권의 침체는,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인 C씨는 “와서 돈을 쓸 분위기가 나야 하는데…”라며 말을 삼켰다. 상품권 사용처의 범위가 이태원 인근 6개동 2606곳 사업장으로 넓어, 참사 현장 인근 상권을 ‘핀셋’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날 이태원 거리는 종일 한산했다. 오후 3시부터 30분간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지나는 이는 10여명에 불과했다. 세계음식문화거리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주점들이 문을 연 오후 7시에도 거리엔 2~3팀의 사람들이 오갈 뿐이었다.
추모와 위로의 마음을 전하려는 발길은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부산에서 왔다는 김모씨(26)는 “세월호 세대로서 이태원 상인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어 일부러 찾아왔다”며 “정부가 참사 추모 공간을 잘 마련한다면 이태원 상권도 살아날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참사 골목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남인석씨(81)는 “간식을 사오는 사람도 있고, 신발 하나 사 가는 사람도 있다. 손님과 부둥켜안고 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남씨는 “이태원에 오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은 분명 있다. 그러니 나라에서 계기를 만들어주면 좋겠다”며 “추모공간이라도 만들어서 차 한 잔 할 수 있게 하면 어떻겠나”라고 말했다.
남씨는 오는 설 연휴에도 가게 문을 열고, 골목길에 불을 켜 방문객을 기다릴 생각이다. 그는 “아이들(희생자)에겐 떡국 한 그릇이라도 끓여줄 생각”이라고 했다.
김송이·이유진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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