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도 청소년들에 좋은 공간 될 수 있어…생활 당사자들의 ‘주거 선택권’ 보장해야”[시설사회]
시설, 폐쇄가 답인가
시설 너머엔 어떤 삶들이 있을까. 경향신문이 만난 사람 중 어떤 이는 수십년 동안 살던 시설을 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어떤 이는 이전보다는 자율성이 보장되는 시설에서 계속 살고 있다. 이들이 마주한 현실엔 ‘시설·탈시설’의 이분법보다 훨씬 복잡한 삶들이 얽혀 있었다. 시설은 궁극적으로 폐쇄해야 하는 곳일까, 취약층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곳일까. 시설 생활 당사자들과 함께해온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엇갈렸다. 접점은 있었다. 모두 당사자의 ‘주거 선택권’을 강조했다.
인천 일시청소년쉼터 ‘한울타리’에서 10년 넘게 일해온 종사자이자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에서도 활동하는 장한성 부장(왼쪽 사진)은 쉼터가 정말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좋은’ 주거 공간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쉼터에서 살지 않을 선택권도 제도가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장 부장은 “가정에서 학대를 받은 아이들에겐 선택지가 청소년쉼터만 제시된다”며 “청소년한테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데, 사회는 선택권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모든 복지 지원이 시설을 통해 이뤄지는 현 체계에서 어떤 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시설을 선택한다. 장 부장은 “LH 임대 등 주택 지원도 쉼터에서 일정 기간 이상 생활해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있다. 쉼터와 맞지 않아 들어올 수 없었거나 쉼터에 들어가지 않는 선택을 한 아이들도 지원이 필요한데 그 친구들을 위한 정책은 없다”고 했다.
장애인은 선택 자체가 무시당하는 일도 많다. 특히 연고가 없는 발달장애인이라면 탈시설 여부를 결정하는 모든 과정에서 시설의 권한이 커진다. 발달장애인 강동철씨(41)의 탈시설을 도왔던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독립생활센터 ‘숨’ 소장(오른쪽 사진)은 “시설 종사자가 당사자의 탈시설 욕구를 평가하는 항목을 보면 사실상 욕구가 없다는 걸 전제로 한다”며 “현재의 조사 방식은 당사자 의사를 수용할 수 있는 체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기 발로 직접 시설을 나온 동철씨도 끊임없이 탈시설 욕구의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진 소장은 “(발달장애인은)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어서 그런(시설을 나가고 싶다는)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보고 믿지 않는다”며 “(동철씨는) 이미 시설 밖으로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설에서 계속 찾아와 ‘이게 정말 당신의 의사인지’를 반복적으로 확인했고 서울시도 마찬가지였다. 탈시설 절차에 있는 모든 기관이 한목소리로 의심했다”고 전했다.
진 소장은 궁극적으로는 시설을 폐쇄하는 걸 전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 소장은 “내가 어딘가 머물 곳이 필요하고 어떤 관계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그 최후의 선택지가 시설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대해선 계속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울타리의 김아름 주임은 시설과 탈시설의 공존을 얘기했다. 김 주임은 “아이들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청소년이어도 저기는 안 가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너무 많다”며 “‘우리도 그런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울타리는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1인 1실’로 방을 쓰도록 하고, 기상 시간과 의무 프로그램도 없앴다. 김 주임은 “쉼터는 청소년에게 열려 있는 공간인데 쉼터 내 규칙들을 강요하면 결국 그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아이들은 밖으로 튕겨 나가는 것”이라며 “그런 부분은 분명히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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