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다양한 일상 누리며 안전…중증 발달장애 내 아이에겐 최적”[시설사회]
시설, 선택하는 이유
이숙영씨(64)는 2세 지능의 중증 발달장애인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더 나은 삶이 ‘시설’이라고 생각했다. 숙영씨는 “집보다 더 좋은 시설”을 만들어주고자 다른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뜻을 모으던 중 천주교 수원교구의 이기수 신부를 만났다. 이후 숙영씨의 아들 유재근씨(33)는 천주교 수원교구 사회복지회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경기 화성의 ‘둘다섯해누리’에 14년째 머물고 있다. 숙영씨는 이기수 신부를 두고 “은인 같은 분”이라고 했다.
재근씨는 중학생 무렵부터 가는 곳마다 차별과 편견을 마주해야 했다. 숙영씨는 재근씨가 이런 시선을 벗어나 마음껏 돌아다녀도 위험하지 않은 곳이 “최적의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보다 시설이 더 좋은 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재근씨는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원하는 만큼 아침을 먹고, 음악과 목공, 카페 서빙 등 다양한 일을 한다. 시설 안의 넓은 정원과 카페를 거니는 게 재근씨의 취미다. 일주일에 한 번은 공원 산책도 하고 종종 외부로 소풍과 여행도 간다. 숙영씨는 “그것들을 집에선 못 해주는데 (시설에선) 하니까 (부모로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기존의 폐쇄적인 시설과 다르게 재근씨는 주말마다 숙영씨가 있는 집으로 온다. 숙영씨는 주말을 보내고 시설에 도착한 재근씨가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다시 확신했다. 숙영씨는 “아이들이 일반 사람들이 사는 주택에 산다고 해서 그게 지역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뭔가를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는 자립생활주택은 더 고립적”이라고 말했다.
경기 부천의 한부모시설에 살았던 강혜정씨(48·가명)는 얼마 전 시설에서 지낼 수 있는 기간이 다 돼 임대주택으로 이사를 나왔다. 혜정씨는 시설에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지만, 아쉬움도 생겼다. 혜정씨는 “그래도 시설은 안전은 보장돼 있지 않냐”며 “시설에서는 여름에 현관문을 열고 자도 겁나지 않는데 지금 이사 간 임대아파트는 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무섭다”고 했다.
혜정씨와 같은 시설에 있었던 이수아씨(25·가명)는 현재 경기 여주의 한부모시설에서 살고 있다. 수아씨가 지내는 한부모시설은 ‘월세를 안 받는 임대주택’에 가깝다. 수아씨는 두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자유롭게 외출을 하고, 학교도 다닌다. 아직 수입이 없는 수아씨는 시설에 살 수 있을 만큼 살 계획이다. 시설을 통해 받을 수 있는 각종 후원과 지원금도 수아씨의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 수아씨에게도 시설은 ‘애증’이다. 부천의 시설에 있을 땐 사무국장에게 부당한 일도 당했지만, 18세에 임신을 했던 수아씨에게 시설은 ‘꼭 필요했던’ 곳이라고 했다. “저는 뉴스에 나오는 신생아 유기 사건들이 진짜 제 일처럼 느껴졌어요. ‘나도 만약 그 상황에서 한부모시설을 몰랐다면 내 몸 하나도 챙기기 힘드니 아기를 낳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겠구나’ 싶은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서 시설의 중요성을 저는 너무 일찍 깨달았어요.”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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