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 후 찾은 ‘내 인생’…“밖에서 숨만 쉬어도 좋았다”[시설사회]
‘이전과 다른 삶’ 3인의 이야기
“나올 때 심장이 막 쿵쾅쿵쾅 뛰어서 천천히 갔어요. 천천히 나와서 지하철 타고 여기(장애여성공감 사무실)로 온 거예요.” 지적장애인인 강동철씨(41)는 3년 전 어느 날 밝은 낮에 ‘쓰레빠’(슬리퍼)만 신고 30년 동안 살았던 시설을 걸어 나왔다. 원장의 폭언 후 평소에도 “여기 오래 못 살 것 같다. 싫다”고 했던 곳을 ‘탈시설’한 것이다.
동철씨 같은 이에게 시설은 좋든 싫든 평생의 삶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그러니 탈시설은 평생을 건 선택이었다.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는 용기는 설레었지만 자립은 또 다른 문제였다. ‘장밋빛 인생’은 없었다.
최동운씨(44)는 10년 전 보육시설에서 막 나왔을 때 한 달에 100시간만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하루에 4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은 최중증 지체장애인인 동운씨에게 턱없이 부족했다.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는 동운씨는 ‘밥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동철씨는 ‘제대로 된’ 퇴소 절차를 거치지 않아 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동철씨가 살았던 장애인시설은 동철씨가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행동으로 옮겼음에도 여전히 시설에 소속돼 있다고 주장했다. 지자체도 행정 절차상 전입신고가 선행돼야 시설의 전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자립정착금 신청에 필요한 ‘자립확인서’도 시설장의 승인 없이는 받을 수 없었다. 동철씨는 지자체의 지원주택에 입주할 기회가 있었지만 운영 주체가 자신이 지냈던 시설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소식에 포기했다. 구조와 모양은 달라도 동철씨에겐 “똑같은 시설”이었다.
청소년쉼터에서 지내다 자립지원관의 연계를 받은 윤서희씨(25·가명)에게 ‘첫 집’은 고시원이었다. 그곳에서 1년 넘게 지낸 서희씨는 지금 사는 ‘3평짜리’ 원룸도 “고시원 살 때 생각하면 오히려 감지덕지”라고 했다. 자립 직후 서희씨는 “라면 한 봉지에 물을 가득 넣어 끓이거나 삼각김밥 작은 거 하나에 수돗물을 마시며 버텼다”. 한 끼 식사에 1000원만 쓰려고 했다고 한다.
30년 살던 곳, 혼자 걸어 나와
하고 싶은 것 배우고 도전하며
나와 이웃에 ‘스며드는’ 중
활동지원서비스 등 부족하고
경제적 상황 넉넉하지 않지만
소소한 행복 느끼고 꿈 생겨
그래도 분명 이전과는 다른 일상이었다. “웃기는 말이긴 한데요. 그냥 내가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고 웃고 싶을 때 웃을 수 있고, 그냥 바깥에 나가서 숨만 쉬는 것도 좋았어요.”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은 어느 ‘특별한’ 날엔 “부풀어 오르는 계란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고 혼자 좋아서 깔깔 웃었다”. 서희씨는 그때가 “정신 나간 것처럼” 별거 아닌 거에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던 때라고 했다. 요즘 서희씨는 심리학을 전공한 뒤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자립한 지 각각 10년, 3년이 흐른 동운, 동철씨 역시 여전히 모든 게 완벽하진 않아도, 시설 밖의 이웃과 공간에 ‘스며드는’ 중이다. 동운씨는 현재 노들장애인야학 학생이자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다. 센터로 출근하는 날엔 장애인의 권리를 알리는 지하철 선전전을, 야학에 가는 날엔 ‘기후변화’에 대해 토론도 한다. 일자리가 생기면서 실질적인 활동지원 시간도 늘어났다. 현재는 하루 24시간 가까이 활동지원을 받는다. 시간이 남을 땐 활동지원사와 영화도 보러 간다.
서울 임대주택에 혼자 사는 동철씨는 “혼자 살아보니까 좋다”고 했다. 활동지원사와 장을 보고 자기가 직접 요리도 해 먹는다. 시설 밖의 삶은 즐거울 때가 많지만 동철씨는 시설에 두고 온 강아지가 가끔 생각난다. ‘제일 예쁜 코커스패니얼’을 다시 키우기 위해 동철씨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다. 지금 사는 집에선 강아지를 키울 수 없다.
동철씨는 요즘 연극에 도전했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의 정기공연 <빛나는>에서 탈시설 후 햄버거집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역을 맡았다. 첫 연기 도전에 사람이 많이 오면 땀이 좀 난다는 동철씨는 “(연기) 좀 잘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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