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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알츠하이머 진단 시장서 불붙은 韓日 경쟁

최창원 기자
입력 : 
2023-01-13 13:04:54
수정 : 
2023-01-18 21: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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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 주자 피플바이오…뒤따르는 시스멕스

알츠하이머는 발병 원인이 명확하지 않고 마땅한 치료제도 없다. 치매의 대표적 원인 질환으로 불리면서도 알려진 내용이 적어 ‘미지의 영역’으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 미지의 영역을 향한 연구개발이 부쩍 성과를 내고 있다. 2023년 1월 8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 신약 ‘레카네맙’을 ‘가속승인’했다. 가속승인은 위험 질병 치료를 위해 임상 2·3상 단계 신약 후보 물질을 신속하게 도입하는 제도다.

레카네맙은 뇌에서 아밀로이드를 제거, 초기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지연하는 약물이다. 이 때문에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만 레카네맙을 사용할 수 있다. 치료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질병 조기 진단이 필수인 셈이다. 이에 알츠하이머 혈액 진단 시장이 떠오르고 있다.

피플바이오 알츠하이머 혈액 진단키트 ‘알츠온’. (피플바이오 제공)
피플바이오 알츠하이머 혈액 진단키트 ‘알츠온’. (피플바이오 제공)

2.4조원 규모 알츠하이머 진단 시장

연평균 4.5% 성장…상용화 수준 5곳

글로벌 시장조사 전문기관 잉크우드리서치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혈액 진단 시장은 2020년 15억9800만달러(약 1조9875억원)에서 연평균 4.5%씩 성장해 오는 2025년 19억8900만달러(약 2조4743억원) 규모까지 커질 전망이다. 시장 규모는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현재 알츠하이머 혈액 진단 시장에서 ‘상용화’ 가능 수준까지 기술을 끌어올린 기업은 5곳 정도에 그친다. 일본의 시스멕스, 시마즈제작소와 대만 맥규, 미국 C2N다이어그노스틱스 그리고 국내 기업 피플바이오다.

선두 주자는 한국 업체 피플바이오와 일본 업체 시스멕스다.

피플바이오는 2018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혈액 진단키트 판매를 허가받았다. 2021년에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신의료기술 인증도 취득했다. 2022년부터 국내 5대 수탁 검사기관과 30여개 대학병원 등 전국 병·의원에 해당 키트를 공급하고 있다. 판매 허가를 받고 제품 출시를 앞둔 시스멕스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인 셈이다.

피플바이오가 가장 먼저 상용화를 이뤄낸 배경에는 특허 기술력이 자리한다. 알츠하이머와 치매가 진행될 때 베타 아밀로이드 올리고머(응집화) 물질이 생기는 원리를 이용한 특허다. 피플바이오는 소량의 혈액을 채취해 올리고머된 베타 아밀로이드가 있는지 검출해 진단에 활용한다.

베타 아밀로이드 올리고머는 알츠하이머 전조 증상으로 꼽힌다. 강성민 피플바이오 대표는 “알츠하이머는 베타 아밀로이드의 올리고머를 시작으로 타우 단백질의 과잉 산화, 뇌 기능 퇴화, 이후 치매 증세 등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알려졌다”며 “베타 아밀로이드 올리고머를 확인할 수 있다면, 조기에 알츠하이머를 진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사들은 서브타입(복제) 모델을 측정해 베타 아밀로이드 올리고머 비율을 추정하거나, 여러 단백질을 함께 측정하고 이 중 베타 아밀로이드 올리고머 수준을 역산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측정 과정이 복잡해 가격이 비싸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외생 변수에 노출된다는 문제가 있다.

시스멕스가 피플바이오의 가장 큰 경쟁자로 꼽히는 이유도 시스멕스의 측정법이 상대적으로 간편하기 때문이다. 시스멕스는 베타 아밀로이드 축적 정도를 측정해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베타 아밀로이드를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서 피플바이오 방식과 유사하다. 시스멕스는 일본 제약 업체 에자이와 혈액 진단키트를 공동 개발했는데, 지난해 12월 일본 보건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바이오업계는 제품이 곧 세상에 나올 것으로 내다본다.

강 대표는 유사한 기술을 갖춘 경쟁 기업의 등장이 “반갑다”고 표현했다. 알츠하이머 혈액 진단 시장이 개화기인 만큼 경쟁 업체 등장이 오히려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다.

21년 동안 뇌 질환 한 우물

올해 하반기 美 FDA 허가 신청 계획

피플바이오는 2002년 설립 이후 21년 동안 퇴행성 뇌 질환 한 분야를 연구해왔다. 초기에는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 단백질 검출 기술을 개발했지만, 뇌 질환이 이와 유사하게 진행되는 것을 확인하고 알츠하이머 진단 기술에 몰두했다.

지금까지는 이렇다 할 성과와 매출을 내지 못했다. 그동안의 연구개발비는 초창기 엔젤 투자부터 벤처캐피털 투자 등을 통해 충당했다. 부족한 자금은 기술신용보증기금을 통해 빌렸고, 임상을 위한 비용은 정부연구과제에 지원해 조달했다. 최근 사업 확장은 2020년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을 기반으로 추진하고 있다.

강 대표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피플바이오는 현재 국내 병·의원 200여곳에 제품을 납품하는데, 올해 목표치로 1500곳을 잡고 있다. 바이오업계는 현재 추세라면 올해 매출이 지난해 예상치(35억원)보다 5배 가까이 늘어난 1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피플바이오는 최근 해외 시장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본격적인 해외 진출 시점은 올해 하반기나 내년이 될 것”이라는 게 피플바이오 측 예상이다. 강 대표는 “미국이나 유럽 등 주요 시장 관계자들과 만났을 때 ‘한국에서 얼마나 쓰이고 있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며 “국내 성과를 바탕으로 해외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플바이오는 올해 하반기 미국 FDA에 출시 관련 절차를 신청할 예정이다.

인터뷰 | 강성민 피플바이오 대표
축적된 진단 데이터, ‘치료제’ 시장 공략에 활용
피플바이오 제공
피플바이오 제공

피플바이오 창업자 강성민 대표는 연세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애크론대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밟았다. 석사 학위를 받은 직후인 2002년, 피플바이오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자금 부족으로 연구원 확보도 어려울 만큼 힘든 나날이었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알츠하이머 혈액 진단키트 상용화에 성공했고, 올해는 본격적인 매출 확대까지 기대하고 있다. 다음은 강성민 대표와 일문일답.

Q. 과거와 비교하면 연구원 수는 얼마나 늘었나.

A. 초창기에는 연구원을 모으기가 정말 힘들었다. 자금도 충분하지 않고, 비전에 동참할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소수의 인원을 찾았고 이들과 함께 고민하며 밤낮으로 실험을 계속했다. 현재는 연구원 수가 26명 정도로 회사 직원의 절반 수준이다. 앞으로 더 늘릴 계획이다.

Q. 진단 업체들이 상용화 단계에서 많이 좌절한다고 들었다.

A.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우리도 똑같이 느꼈던 일이다. 이론은 정해진 프로토콜대로 움직인다. 그렇지만 현장을 가면 수많은 외생 변수가 있다. 채혈 방법은 물론이고 주사기 재질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부분을 모두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Q. 레카네맙의 FDA 가속승인이 진단 시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 같다.

A. 레카네맙을 시작으로 더 많은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시장에 나왔으면 좋겠다. 어떤 질환이든 대부분 치료제는 ‘조기 진단’을 전제로 한다. 치료를 하려면 일단 진단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Q. 빠듯한 살림인데 자회사도 운영한다.

A. 치매 진단을 시작으로 치료제 개발까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2021년 자회사 뉴로바이오넷을 설립했다. 뇌 질환 분야만 20년 넘게 들여다보면서 수많은 데이터가 축적됐는데, 이를 통해 치료제 개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알츠하이머 진단부터 치료까지 할 수 있는 사업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최근 레카네맙이 가속승인되면서 치료제 시장 전망도 긍정적이다. 오히려 진단 시장보다 진입이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3·설합본호 (2023.01.18~2023.01.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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