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산’의 화가, 자연으로 돌아가다… 김영재 화백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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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푸른색 산(山) 그림을 그린 김영재(金榮栽) 영남대 미술학부 명예교수가 자연으로 돌아갔다.
이후 지리산 등 국내 산과 히말라야와 킬리만자로, 하롱베이, 안나푸르나, 황산 등 명산을 직접 답사한 뒤 그림으로 표현했다.
고인은 "늘 산의 감동을 가슴에 안고 그림을 그린다. 내 눈으로 보지 않는 산은 그릴 수 없다. 그 감동을 간직하기 위해 되도록 큰산 명산을 찾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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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푸른색 산(山) 그림을 그린 김영재(金榮栽) 영남대 미술학부 명예교수가 자연으로 돌아갔다.
1959년 ‘봉덕사의 종’, 1960년 ‘석굴암’, 1961년 ‘신종(봉덕사의 종)’으로 3년 연속 국전에 입선했다.
1965년 서울 시내 미술 교사들의 모임으로 출발한 신기회(新期會)에 가입했다가 1977년부터 신미술회에서 활동했다. 1986년 제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1986∼1987년 한국기독교 미술인협회 회장, 1994∼1997년 신미술회 회장, 1995년 한국미술협회 고문, 1996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심사위원을 지냈다.
국민훈장 목련장(1994), 한국미술협회 올해의 미술상(2009), 이동훈 미술상(2015)을 받았다.
고인은 1960년대까지 주로 검은색의 선을 써 무겁고 어두운 작품을 그렸다. 6·25 전쟁 때 군인으로 복무한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
1970년대에는 ‘강(강변)의 화가’로 불렸다. 1969년 영남대 조교수가 된 뒤 1994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서울과 지방을 오가면서 본 양화대교 부근의 한강 풍경, 대구근교 낙동강변의 흰 모래사장과 비취색 강물, 수직으로 뻗은 이태리포플러 나무숲에 매료됐다고 한다.
산 그림에 몰두한 건 1979년 스위스 알프스 등정 후 ‘몽블랑’ 등의 장엄한 설산 스케치를 대작 유화로 제작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지리산 등 국내 산과 히말라야와 킬리만자로, 하롱베이, 안나푸르나, 황산 등 명산을 직접 답사한 뒤 그림으로 표현했다. 2010년 11월 인사동 선화랑에서 노르웨이의 산 풍경을 모아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산을 초록색이 아니라 푸른색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계기는 아침 일찍 지리산 백무동에서 장터목 산정으로 가는 길에 파란색 물감을 그대로 발라놓은 것 같은 풍경에 심취하면서부터다.
고인은 “늘 산의 감동을 가슴에 안고 그림을 그린다. 내 눈으로 보지 않는 산은 그릴 수 없다. 그 감동을 간직하기 위해 되도록 큰산 명산을 찾는다”고 했다.
유족은 윤영섭씨와 사이에 2녀(김혜원, 김수연)와 사위 강창석·한재진씨 등이 있다. 14일 발인을 거쳐 고인의 뜻대로 전우들이 묻힌 괴산호국원에 안장됐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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