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지방’을 묻다

한겨레 2023. 1. 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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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상주시는 지난 3일 ‘대구시 군사시설 이전유치 상주시 범시민추진위원회’ 발대식을 열고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상주시 제공

[세상읽기] 조문영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최근 <한겨레>에 실린 한 기사에 눈길이 갔다. 대구시가 군부대 통합 이전을 추진하자 경북의 여러 시·군이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다. 군부대 시설 유치를 희망하는 지역은 경북 상주시·영천시·칠곡군·군위군·의성군 5곳이나 된다.

수도권 주민이 봤을 땐 분명 기이한 일이다. 군부대를 반길 만한 이유가 있나. 집값 떨어뜨리는 기피시설이라며 반발이 쇄도할 테다.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는 데 따른 불만도 상당할 테다. 하지만 경북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른바 ‘밀리터리 타운’을 유치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후보지마다 유치 업무를 책임질 전담반을 꾸렸다. 모두 대구 주변에 이웃한 시·군들이다 보니 정당성의 서사도 엇비슷하다. 군사작전의 요충지임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전쟁은 물론 임진왜란, 병자호란 시절의 기록까지 샅샅이 소환했다. 전국 어디든 두시간이면 갈 수 있는 “사통팔달 교통 요충지”라는 선전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평소라면 나 역시 제목만 훔쳐보고 클릭하지 않았을 기사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기사를 접하기 며칠 전까지 상주에 머물러서다. 그곳에서 만난 상주 출신 농촌사회학자 정숙정 선생이 건넨 말이 뇌리에 남아서다.

“오죽하면 (이곳 사람들이) 군부대라도 바랄까요.”

상주시 면적은 서울의 2배에 이르지만, 인구는 9만5천명 정도에 불과하다. 출생률 저하와 인구 유출을 함께 겪다 보니 정부가 선정하는 ‘소멸위험지역’ 리스트에 곧잘 오르내린다. 경‘상’도란 지명의 어원이기도 한 지역의 유서 깊은 역사는 벌판에 솟은 박물관이나 기념관에는 자세히 등장하나, 상당한 재정이 투입됐을 이 건물에 일부러 걸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협동조합역사문화관을 방문했더니 점심시간이라며 문이 잠겨 있다. 잠시 기다렸다가 입장하니 시청 직원이 인사를 건넨다. 주말이라 문화해설사 대신 본인이 나왔단다. 역사관도, 지척의 명주박물관도 관람하기 더없이 좋을 만큼 한산하다. 부근에 육중하게 자리한 한복진흥원을 보니 외려 걱정이 앞선다. 한복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2년 전 약 200억원을 들여 개관했단다. ‘명주의 고장’ 상주에 들어선 진흥원이 시장 말대로 “미래 한복산업의 거점”이 될까? 오지랖이겠지만, 이곳을 누가 어떻게 보수하고 유지할지가 더 궁금했다. 70대 후반인 고모님은 소싯적에 ‘누에의 왕’으로 뽑혀 상주군수한테 일등상을 받았다지만, 상주에서도 잠사(누에치기)는 일상이라기보다 전시, 체험, 보존의 영역이 된 지 오래다.

‘소멸’ 위협에 처한 지역이 수명을 늘려보겠다고 헛짓거리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비판보다 막막함이 엄습한다. “오죽하면 군부대라도 바랄까요”라는 정숙정 선생의 말에, (반복되는 정원 미달에) “지방의 대학들로서는 해볼 만한 자구책은 이미 다 해”봤다는 지주형 선생의 글(<황해문화> 2021년 가을호)에, 수도권 시민이자 서울 소재 대학에서 일하는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일본 열도를 뒤흔든 ‘지방소멸론’이 반도에 직수입된 이래 지방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허둥대지만, 오랫동안 지방의 자연을 수탈하고 헐값에 전유한 수도권 거주자 다수는 여전히 네가지 시각 중 하나를 가진 듯하다. 첫째, 지방은 몰라도 상관없다. 대한민국엔 ‘조·중·동’과 ‘한·경·오’가 있을 뿐 지역언론은 알 바 아니다. 둘째, 지방 토호들이 더 문제다. 지방이 부패해서 지방을 죽이는데 어쩌란 말인가. 셋째, 지방이 체질 개선을 못 한 대가를 내가 대신 치를까 걱정스럽다.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재정 위기를 땜질하는 데 중앙의 세금이 들어가는 게 아깝다. 넷째, 지역이 유일한 희망이다. 기후재난 시대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할 전환은 마을이 주도할 것이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배 대신 원조로 통치하면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무능과 의존을 질타하고, 동시에 아프리카의 원초성을 숭배했던 풍경과도 꽤 닮았다.

각자 새해 다짐이 있겠지만, 나는 ‘소멸’로 낙인찍힌 지역에서 얼기설기 관계를 만들면서 덤덤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려고 한다. 최근 출간한 책 <빈곤 과정>을 다시 읽으면서 찜찜함이 남은 탓도 있다. 내가 논한 한국의 빈곤도, 청년도 많은 경우 수도권과 도시를 기본값으로 설정한 건 아니었을까. 연구자이자 수도권 식민지배 연루자로서 인제야 갖게 된 부끄러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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