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대주주 상속세 완화 … 매출 많아 빠진 295곳은 '한숨'
정부, 중견기업 전체 빼주려다
부자감세라며 막는 野에 밀려
매출 5000억미만 기업만 혜택
상속세 실질세율 OECD 최고
주력 중견기업 승계부담 커져
올해부터 매출이 5000억원 미만인 중견기업은 최대주주가 지분을 상속하거나 증여할 때 20% 더 붙던 가산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18일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2년 세제 개편 후속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직전 3개년 매출 5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을 상속·증여세에 20% 세금을 더 매기는 최대주주 주식 할증 평가 제도 대상에서 빼준다는 것이 이날 개정안의 핵심이다. 바뀐 시행령은 올해 1월 1일 이후 상속·증여분부터 적용된다.
종전까지 중소기업을 제외한 중견기업과 대기업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상장·비상장 주식을 상속, 증여할 때 시가로 측정한 주식평가액에 20%를 할증해 세금을 매겼다. 이 때문에 경영계에서는 과도한 세금이 기업 경영권을 위협할 뿐 아니라 세대 간 '부(富)의 이전'까지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50%로 일본(55%)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두 번째로 높다. 하지만 최대주주 할증 제도까지 감안하면 한국의 실질 최고세율은 60%로 OECD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주요 중견기업 승계 과정이 다가오며 경영권 유지에 문제가 생기는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면서 "향후 입법 과정을 통해 지나치게 높은 한국의 상속·증여세율을 조정하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매일경제가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통계를 분석한 결과, 국내 중견기업은 2020년 기준으로 총 5526곳이다. 최근 4년간 1058곳(23.7%) 급증했다. 이 중 최대주주 할증 제외 혜택을 받지 못하는 3개년(2018~2020년) 평균 매출 5000억원 이상 기업이 295곳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 세법 개정을 추진하며 중견기업 전체를 최대주주 할증제에서 빼주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달 국회 논의 과정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부자 감세 반대 등으로 할증제 제외 기업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견기업으로 후퇴한 채 법이 개정됐고, 이날 시행령에서 매출 5000억원 미만 기업만 혜택을 주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매출액 5000억원 이상 규모가 큰 중견기업이 사실상 업계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며 "승계를 앞두고 있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는데, 주력 기업이 여전히 할증을 받게 된 것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OECD 가입국 중 상속·증여 시 최대주주 주식에 기계적으로 가산세를 매기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과 영국은 지배주주의 실질적인 지배력을 측정해 이에 맞춰 세금을 할증하는 방식으로 보다 완화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과 독일은 아예 할증제를 운영하지 않는다. 그 대신 소액주주 등 지분을 할인 평가하는 방식으로 지배주주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한다. 문제는 높은 세금 부담이 기업 경영권까지 위협하며 한국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50%로 미국(40%), 독일(30%)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OECD 평균(15%)에 비해서도 크게 높은 수준이다. 명목상 일본의 최고세율이 55%로 더 높지만 실질 세율은 한국이 OECD 내 최고인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상속 재산을 시가 수준으로 평가해 과세하는 데다 대기업과 일부 중견기업 최대주주에는 할증까지 해 최고세율 60%를 적용한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올해 상속, 증여세 등 시대 변화를 못 따라가는 세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유산취득세(전체 유산이 아닌 상속인 개인의 유산 취득분에만 매기는 세금) 전환과 자녀에 대한 증여세 인적공제 한도를 1명당 5000만원에서 2억원까지 높이는 방안 등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세법 시행령에는 문화재, 미술품 등을 세금 대신 낼 수 있도록 한 물납제 도입 방안도 담겼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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