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친숙한 기이한 ‘불안’의 이중성
[KBS 부산] 전시장 입구에서 마주하는 태국 작가 카위타의 힘겨운 몸짓이 화려한 색감과 뒤섞여 기이함을 연출합니다.
아름다운 태국 실크를 만드는 저임금 방직 여성 노동자의 고통을 직조와 롤링, 염색이라는 반복되고 지속하는 몸짓으로 그려냅니다.
지붕과 벽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직선이지만 주시하고 걷다 보면 현기증을 일으키는 것이 현대인이 선호하는 고층 아파트 같습니다.
친숙한 젓가락 행진곡 리듬을 타고 흐르는 비디오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안락한 공간인 집과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할 법한 진실이 은폐되고 존재가 유린당하는 음침한 집의 양면성이 펼쳐집니다.
'집'이라는 주제로 친숙하지만 섬뜩한 불안의 이중성을 두 작가가 협업으로 탄생시킨 작품입니다.
[강승완/부산현대미술관장 : "재난과 질병 등 예측할 수 없는 그런 일상을 영유하고 있는데요. 이 전시는 일상에 잠재한 불안이라는 요소가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그리고 고민을 촉구하는 전시입니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반려동물 납골당 사진.
하지만 미소를 머금고 마주한 바로 옆 박제한 반려동물 사진은 인간 사랑의 잔인함에 이내 미소를 앗아갑니다.
비닐 수지로 쓴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
나치 수용소에서 직면했던 죽음의 공포와 삶의 비참함 속에서도 시인이 끊임없이 물어야 했던 존재 이유가 철조망에 슬프게 걸려있습니다.
거세 당한 남근과 모호한 형태의 덩어리, 그리고 성당 꼭대기에서 무언가를 감시하는 듯한 이무깃돌의 형상은 검은 비닐에 쌓여 뚜렷하지는 않지만 낯설지도 않습니다.
무의식에 모두가 품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욕구의 덩어리들입니다.
[박한나/부산현대미술관 학예사 : "이 작품들은 하나같이 친숙한 이면의 어둠을 보여주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둠을 굉장히 끔찍하거나 아니면 보기 불편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환상이라는 요소를, 그런 장치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거북하지 않게…."]
해파리 유전자를 심은 관상어, 도롱뇽 유전자로 자라나는 손가락, 유전자 조작 식물.
실험실 내부와 전문가 인터뷰로 만든 이 작품은 생명공학 기술이 만들어 낸 유토피아를 그리면서도 신의 영역을 침범한 듯한 생명체 조작의 섬뜩함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7개 인공지능 두상의 첫 인상이 친근해 보이지만 내가 움직이는 대로 7개 로봇 눈동자가 동시에 나를 주시할 때면 섬뜩함이 느껴집니다.
AI와 대화를 시도하면 7개 로봇이 시간 차로 같은 답을 해 소리가 울려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인간보다 훨씬 큰 두뇌를 가진 AI의 단순한 장난이 소외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집, 존재, 기술 세 가지 주제로 4개국 11명의 작가가 담아낸 불안의 이중성.
친숙하지만 기이한, 우리가 깊숙이 숨겨 놓았던 이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면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문화톡톡 최재훈입니다.
최재훈 기자 (jhh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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