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보다는 `경기`… "기준금리 인하해야" 목소리 점점 커져 [마이너스 성장 우려커진 韓경제]
KDI "상반기 성장률 0에 가까울것"
시중금리는 이미 기준금리 밑돌아
한은, 美보다 먼저 금리인하 선례
통화당국의 '물가'에서 '경기'로 옮겨가고 있다. 소비자물가가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 경기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마이너스 성장했고, 치솟는 이자 부담으로 소비도 위축되는 양상이다. 연간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면서 통화당국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상반기 마이너스 성장 확실
18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0일까지 수출은 138억62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0.9% 감소했다. 조업 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액은18억5000만달러로 14.1% 급감했다. 특히 전통적인 수출 효자 종목인 반도체(-29.5%), 철강제품(-12.8%), 정밀기기(-11.5%), 가전제품(-50.4%) 등의 수출이 크게 줄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수출과 내수의 동반 악화로 상반기까지 분기별 경제성장률이 제로(0%)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행도 다음달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올해 한국 경제가 1.7%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수정치는 기획재정부의 전망치(1.6%)보다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연 3.50%로 사상 첫 7연속 금리 인상을 발표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그사이의 지표를 볼 때 성장률이 그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클 것 같다"며 하향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는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많이 번졌고, 반도체 경기 하락, 이태원 사태 등의 이유로 음(-)의 성장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4분기 GDP(국내총생산)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다면,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2분기 이후 첫 분기 역성장이다.
◇기준금리 밑도는 시장 금리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지만 시장은 '동결' 수준으로 반응했다. 국고채 금리가 빠르게 떨어져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다.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 3.390%로 나흘 연속 기준금리(연 3.50%)를 하회했다. 또 국고채 10년물 금리(3.337%)가 3년물보다 낮은 역전 현상이 지난 4일 이후 10거래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는 채권시장이 연내 통화정책이 완화 기조로 전환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1분기까지만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2분기엔 동결한 뒤 하반기엔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도 국내 시장 금리의 하향을 이끌고 있다.
국내 경기 경착륙을 막기 위해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본계 노무라 그룹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로버트 슈바라만 박사는 "올해 한국 경제가 0.6% 마이너스 성장해 경착륙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면서 "5월부터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해 연내 1.50%포인트 인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묘하게 바뀐 한은 총재 입장
한은은 지금으로선 올해 안에 금리 인하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이날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한국의 가계부채 구조는 통화정책 결정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단기부채 및 변동금리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통화 긴축과 주택가격 하락에 대한 소비지출 및 경기의 민감도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크다는 얘기다.
한국은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선 적이 있다. 미·중 무역갈등과 일본 수출규제까지 악재가 겹쳤던 지난 2019년 7월 한은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깜짝 인하했다. 이후 연준도 같은 달 한발 늦게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그보다 앞선 2003년 카드 대란,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에도 한은이 먼저 움직였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만약 시장의 예상대로 연준의 2월 1일(현지시간)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 인상 폭이 0.25%포인트로 줄어들고 1분기 내 통화긴축 사이클의 종료와 경기둔화 전망이 공존한다면 국내 통화정책의 운용 폭도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반면 한 증권사 채권운용역은 과거와 같은 선제 대응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9년 당시만 해도 연준이 이미 인하방침은 명확했기 때문에 한은이 먼저 움직일수 있었다"며 "미국보다 앞선 금리 인하가 그만큼 우리 경제 상황이 나쁘다는 시그널을 세계에 주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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