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2023년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어떻게 될 것인가?

2023. 1. 1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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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2022년 한국 경제를 강타했던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 충격'은 2023년에도 지속될 것인가?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미국 등 주요국의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으로 통제되면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 기조는 완화되고 한국도 숨을 돌릴 여지가 있겠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고금리 기조는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전망과 관련해선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인플레이션이 크게 보면 일시적이라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만(Paul Krugman) 등의 견해와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 등의 견해다. 전자는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고, 후자는 최근 대두된 구조적 장기인플레이션(Secular Inflation)론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적 장기침체인가, 구조적 장기인플레이션인가

인플레이션이 곧 안정화된다는 견해는, 수요 측면을 볼 때 코로나19 이전의 투자수요 정체 요인이 코로나 이후에도 변함이 없지 않느냐는 인식에 근거한다. 인구구조 정체와 기술혁신 부진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저출산으로 인구구조가 정체된 경제에서는 젊은이들의 투자수요가 은퇴 연령층의 노후대비 저축에 비해 모자라기 때문에 만성적으로 수요 부족 문제가 발생하고, 이것이 저물가와 저금리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또 기술혁신이 정체되면 새로운 투자수요가 충분히 발생하지 않아 수요 부족이 지속된다고 한다.

이 논리는 구조적 장기침체론과 일맥상통한다. 이 이론의 원조라 할 수 있는 20세기 초중반의 경제학자 앨빈 한센(Alvin Hansen)은 1939년에 이미 출산율 저하와 과잉 저축이 총수요를 감소시켜 구조적 장기침체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은 2005년에 동아시아의 과잉 저축이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를 가져온다는 글로벌 저축 과잉(Global Saving Glut) 이론을 내놓은 바 있으며,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2013년에 수요부족으로 인해 자연 이자율이 마이너스 수준이라고 언급하며 구조적 장기침체론의 부활을 주장했다.

2021년 이후 경험한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크루그만은 코로나19에 따른 대규모 지원금 등 재정지출의 효과가 너무 컸고 코로나 기간에 공급망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현상일 뿐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재정지출 효과가 사라지고 이례적인 공급 애로 요인들이 해소되면 다시 저물가-저금리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물론 2022년엔 이 예상이 현실과 괴리되면서 크루그만은 자신이 수급 불균형 문제를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했지만,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본질적으로는 한 번의 큰 '일시적'(transitory) 인플레이션이라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물론 아직 노동시장이 뜨거워 한 번의 큰 임금 인상이 좀 더 진행될 수 있으므로 서둘러서 물가안정을 선언하는 것은 조심스럽다는 유보적 의견도 덧붙이고 있다.

반면 구조적 장기 인플레이션론자들은 한 번의 큰 물결은 지나갔을지라도 향후 인플레이션은 과거에 비해 장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는 인구구조의 변화, 세계화의 양상 변화, 시장구조 변화, 에너지 전환 등이 꼽힌다.

우선 인구 고령화는 노동연령층의 노동공급 감소를 야기하는데, 이에 상응하는 고령층의 수요 감소는 관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1980년대 말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세계시장에 저렴한 노동력을 공급했던 동유럽과 중국이 고령화되면서 지난 수십 년간의 거대한 노동공급 충격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저렴한 노동 공급이 줄어드는 와중에 신흥국 인구 수천만 명이 새로 중산층에 편입되어 글로벌 수요가 증가함으로써 물가상승 압력이 커진다고도 한다. 과거처럼 신흥국이 저비용 생산요소를 탄력적으로 공급하며 저물가를 수출하던 시대가 다시 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동시에 미-중 갈등으로 인해 우호적인 국가들끼리 공급망을 재편하는 '프렌드 쇼어링'이 시작되면서 비용 효율성뿐 아니라 안정성이 중시되게 됐다는 사실도 강조된다. 이런 변화는 생산비용을 높이기 때문이다. 또 산업의 독과점이 심화되면서 비용 상승이 가격상승으로 전가되는 것이 쉬워졌다고 한다. 세계적 화두인 그린 에너지 전환 역시 장기간 막대한 정부부채 증가 요인이 되고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한다.

▶과거로 돌아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

이상의 두 견해 중 어느 것이 현실에 가까울까. 먼저 인구구조를 살펴보자. 장기침체론에서 주목하는 인구구조 불균형은, 자금수요가 많은 청년층의 규모가 작고 노후대비 저축이 많은 은퇴연령층의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특히 베이비부머 중 50대 후반 연령층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연령 구조를 보면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20-30대 연령층이 베이비부머보다 오히려 더 커졌다. 2020년 현재 미국에서 50대 후반은 인구의 6.5%인데, 20대 후반은 7.2%다. 10년 전에 비해 미국은 청년층의 비중이 현저히 커졌을 뿐 아니라 이들이 가장 큰 연령 그룹이 됐다. 과거 베이비부머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던 1970년대에도 공급 측 문제가 고물가와 고금리로 연결된 적이 있다. 단순화해 볼 일은 아니지만 청년층의 부상이라는 미국의 현실을 무시할 일도 아니다.

글로벌한 관점에선, 중국과 동유럽이 저물가를 수출했던 과거의 환경이 재연될 것이라 보기 어렵다. 특히 미-중 갈등과 공급망 재편은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패권 경쟁과 이에 따른 정치 패권 경쟁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일이다. 패권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한, 패권국은 세계화를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기 쉽다.

미국의 여러 인사들이 "중국을 WTO에 가입시켜주고, 투자해주고, 시장을 제공해줬으나 중국의 정치체제는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로 갔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것을 보면, 세계화가 '남 좋은 일'이라는 인식이 사라질 때까지는 과거 수준의 글로벌 공급망이 다시 구축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근본적으로 패권의 안정화는 단기에 해결될 일은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그린 에너지 전환도 신흥국에게는 사실상 무역장벽으로 작용하면서 비용을 높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유럽의 탄소국경세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재생에너지 100%를 요구하는 'RE100'도 비용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구조적 장기 인플레이션론의 근거들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구조적 장기침체론의 근거가 모두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과 달리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인구구조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고, 또 기업 생태계의 역동성이 과거보다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글로벌 차원에서 공급을 제약하는 요인들이 과거에 비해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중장기적 경제 환경이 과거와는 상당히 다를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즉, 세계경제가 과거의 저물가 시대로 쉽게 회귀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2023년 한국 정책당국의 선택

그러면 2023년 한국에선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 지속될 것인가. 중장기적으로는 3고의 리스크가 과거보다 큰 상황이 지속될지라도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의 파고가 위 아래로 출렁일 수 있다. 특히 단기에는 주요국 및 한국의 경제정책, 그리고 경제외적 요인들이 크게 작용하므로 불확실성은 높다. 경제가 연착륙할지, 경착륙할지, 아니면 고물가와 불경기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한국의 경우 인플레이션의 일시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지금까지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속도에 대한 상반된 의견들을 통해 표출돼 왔다. 한은은 2021년 여름부터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왔으나 국책연구기관 KDI 등은 금리인상의 '속도와 강도 조절'을 주장해왔다. 2021년 11월에 발간된 이 기관들의 경제전망 보고서들을 보면, 2022년 물가상승률 예상치가 한은 2.0%, KDI 1.7%로 양자 모두 실제 물가상승률 5.1%에 비해 예상이 크게 빗나가긴 했지만 거시경제 리스크에 대한 접근에는 다소의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이와 관련한 논란이 크게 표면화되지 않았던 것은 한국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문제를 많이 미루며 덮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물가상승률 5.1%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었는데, 이는 상당 부분 에너지 가격, 전기요금이 억제된 데 기인한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상승 요인을 한국전력이 막대한 적자를 일으키며 흡수해왔던 것이다. 그 덕에 한국은행은 한미 간 금리 역전을 용인하면서 실제로 미국에 비해 상당한 수준의 '속도 조절'을 할 수 있었다.

한전의 전기요금 억제는 한국의 물가상승률을 2-3%p 정도 눌러왔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물가상승 요인을 한전이 적자로 떠안게 하는 것은 더 이상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법이다. 따라서 2023년에는 수많은 정책적 선택이 불가피하다.

지금처럼 한전이 적자보전을 위해 대규모로 채권을 발행하면 금융시장이 흔들리며 금리가 불안해진다. 중국에 대한 수출, 반도체 수출도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 에너지 수입이 억제되지 못하면 무역수지가 악화된다. 달러 현금흐름이 좋지 않으면 환율 관리도 쉽지 않다. 한미 간 금리 역전이 일어난 상황에서 금리도 외환시장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수 확충이 어려운 상황에서 재정정책도 움직일 공간이 부족하다. 가계부채 등 누적된 리스크도 크다.

이 상황을 계속 놔두긴 어렵다. 무엇보다 대외적 요인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한 에너지 가격을 상당 폭 올릴 수밖에 없다. 이는 다른 나라들이 2022년에 했던 일을 뒤늦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에선 전기요금과 공공요금 인상이 상당 기간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거시경제정책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주요국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금리를 올려 자국의 통화가치를 방어하고, 에너지 가격을 올려 에너지 사용을 억제하면서도 동시에 재정을 통해 어려워진 경제주체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없애기 위한 전방위적 긴축보다는 고물가의 부작용을 치유하고 공급 측 애로 요인을 정부가 적극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사실 인플레이션은 통제가능하기만 하다면 정부 입장에선 빚을 '녹이는'(melt away) 수단이 되기도 한다.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진 상황에서 정부는 세금을 걷어 빚을 갚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을 용인해 부채의 실질가치를 낮추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이 방식을 활용해 왔고, 주요국 정부들은 상당 기간 이렇게 할 인센티브가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통화정책 측면에선 신뢰가 중요하고, 재정정책 측면에선 공급능력 확충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미국의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적극적 재정정책을 공급능력 확대에도 쓸 것이라고 하면서 바이든 정부의 경제정책 브랜드를 1980년대의 공급 측 경제학과 차별화되는 '현대 공급 측 경제학'(Modern Supply-Side Economics)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기조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도 잘 드러나 있다. 기후 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에 정부가 적극 투자하여 공급 측 애로를 해소하고, 재정확대가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할 우려에 대해서는 부자 증세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취약계층 보듬고 공급능력 확대에 적극 투자해야

고물가 고금리로 인한 고통은 2023년에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취약계층일수록 고통은 더 크게 다가온다. 저물가-저금리 시절, 특히 코로나19 당시에 빚내서 버티자는 정책기조에 따라 빚을 냈던 취약계층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약자들에 대해서는 서민금융, 에너지 보조 등으로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 또 누적됐던 부채가 축소되는 과정에서 멀쩡한 사업장이 흑자 도산하고, 유동성 위기가 확산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고통분담, 사회연대의 토대 위에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여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공급능력 확충이 중요하다. 공급능력은 더 이상 과거처럼 세계화에만 의지할 수 없다. 미국처럼 1980년대식의 공급 측 경제학을 '현대 공급 측 경제학'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신흥국의 대규모 노동 공급이 어려워지는 와중에 여러 차원의 무역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주요국은 공급망 재편과 함께 디지털 전환, 에너지 전환을 위한 산업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이 흐름에 뒤처지지 말고 산업 전환을 새로운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3고가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적응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낙오된 사람도 재기할 수 있게 하는 포용적 변화의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본 기고의 원문 출처는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190호'임을 밝히며, 원문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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