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화가에서 '푸른 산'의 화가로…김영재 화백 별세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약 40년간 푸른색 산(山) 그림을 그린 김영재(金榮栽) 영남대 미술학부 명예교수가 10일 오후 7시45분께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8일 전했다. 향년 93세.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고인은 건국대 정외과를 졸업한 뒤 1956년 배문고 미술 교사로 일하다 뒤늦게 홍익대 대학원(회화과)을 다녔다. 1965년 경희대 여자초급대 요업공예과를 거쳐 1969년 영남대 여자초급대학 미술과 조교수로 부임했고, 1974년 영남대 회화과 교수로 옮겼다.

1959년 '봉덕사의 종', 1960년 '석굴암', 1961년 '신종(봉덕사의 종)'으로 3년 연속 국전에서 입선했다. 1965년 서울 시내 미술 교사들의 모임으로 출발한 신기회(新期會)에 가입했다가 1977년부터 신미술회에서 활동했다. 1986년 제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1986∼1987년 한국기독교 미술인협회 회장, 1994∼1997년 신미술회 회장, 1995년 한국미술협회 고문, 1996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심사위원을 지냈다. 국민훈장 목련장(1994), 한국미술협회 올해의 미술상(2009), 이동훈 미술상(2015)을 받았다.

고인이 처음부터 산을 그린 건 아니었다. 1960년대까지는 검은색을 주로 썼다. 2017년 한국기독공보와 인터뷰에서 "6·25 전쟁 때 군인으로 복무(예비역 대위)했다. 전쟁 직후에는 무겁고 어두운 작품을 그렸다"고 말했다. 고인은 최근 자신이 참여한 펀치볼 전투 등이 벌어진 강원도 양구와 인제 등을 둘러봤다고 유족이 전했다.

1970년대에는 '강(강변)의 화가'로 불렸다. 1969년 영남대 조교수가 된 뒤 1994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서울과 지방을 오가면서 본 양화대교 부근의 한강 풍경, 대구 근교 낙동강변의 흰 모래사장과 비취색 강물, 수직으로 뻗은 이태리포플러 나무숲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산 그림에 몰두한 건 1979년 스위스 알프스 등정 후 '몽블랑' 등의 장엄한 설산 스케치를 대작 유화로 제작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지리산 등 국내 산은 물론이고, 히말라야와 킬리만자로, 하롱베이, 안나푸르나, 황산 등을 직접 답사한 뒤 산을 그렸다. 2010년 11월 인사동 선화랑에서 노르웨이의 산 풍경을 모아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산을 초록색이 아니라 푸른색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계기는 아침 일찍 지리산 백무동에서 장터목 산정으로 가는 길에 파란색 물감을 그대로 발라놓은 것 같은 풍경에 심취하면서부터라고 했다. 산을 그려도 형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핵심을 잡아내고 색의 느낌에 집중해 산을 표현했다. "늘 산의 감동을 가슴에 안고 그림을 그린다. 내 눈으로 보지 않는 산은 그릴 수 없다. 그 감동을 간직하기 위해 되도록 큰 산 명산을 찾는다"고 했다.

미술평론가인 김복기 경기대 교수는 "산의 감동 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4천m 가까운 높은 곳까지 오르는가 하면, 접근이 불가한 지점에서 내려다보려고 경비행기와 헬기 단독 대절을 여러 번 시도했다. 슬라이드 필름의 고속 촬영을 이용한 공중스케치까지 감행했다"고 말했다. 또 "김영재의 산은 푸르다. 청색은 대상(산)의 색이 아니라 마음의 색이요, 공기의 색채다"라고 덧붙였다.

유족은 윤영섭씨와 사이에 2녀(김혜원, 김수연)와 사위 강창석·한재진씨 등이 있다. 14일 발인을 거쳐 고인의 뜻대로 전우들이 묻힌 괴산호국원에 안장됐다.

'아름다운 섬-하롱베이'(2005) [네이버 블로그 '김복기의 Art 25시' 캡처]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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