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공공SW `대기업 제한` 다시 뜨거운 감자
열악한 사업 환경에 모두가 불만
대기업 "항생제 10년 장복하는셈"
중견기업 "매출·종업원수↑ 확인"
공공SW(소프트웨어)사업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가 시행 10년을 맞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SI(시스템통합)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이를 두고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열악한 공공정보화 사업 환경 개선의 시급성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냈다.
국회 ICT(정보통신기술)융합포럼 공동대표 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과 조명희 의원(국민의힘)이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공공SW사업 대기업참여제한제도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최근 국무조정실 산하 규제혁신추진단이 이 제도를 올해 ICT분야 규제혁신 과제로 확정해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이 불거지는 가운데 마련된 자리다.
◇10년 묵은 감자, 화로 위로= 2013년 SW산업진흥법 개정 시행 이후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들은 국가안보 관련 분야 외에는 공공SW사업에 참여가 제한됐다. 당시 대기업들의 계열사 일감몰아주기가 사회적 이슈였고,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한 대기업들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중견·중소 재하도급과 '갑질'이 문제가 됐었다. 2016년에는 대기업이 구축한 시스템의 경우 유지보수사업 참여를 허용하는 규정도 삭제됐다.
하지만 2015년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등 신시장 분야에 한해 발주처가 신청할 경우 예외적인 참여가 허용됐다. 이후 대기업 참여 허용 범위가 추후 동반 해외진출 가능한 사업까지 넓어졌다. 대기업이 지분 20% 이내 공동수급인으로 참여하는 부분인정제, 민간에서 50% 이상 투자하는 민간투자형 SW사업도 도입됐다. 2021년 코로나19 백신예약시스템 장애 등 긴급상황 시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고시 개정으로 신속심사제도 도입됐다.
최근 신기술 기반 대규모 공공SW사업이 늘면서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공공SW사업 대기업참여제한 예외사업 심의신청 총 58건 중 절반인 29건(50%)이 예외인정을 받아 대기업 참여가 허용됐다.
그동안 대기업은 근본적인 진입장벽, 중견기업은 줄어드는 사업기회, 중소기업은 열악한 사업대가, 발주처는 복잡해진 사업절차에 각각 불만을 가져왔다. 업계에서는 공공사업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승자 없는 제도라는 자조가 이어져 왔다.
물론 긍정적인 성과도 있다. 이날 조문증 경상국립대 교수(융합전자공학부)는 "발주담당자들 역량이 제도 도입 후 크게 높아졌다. 기존에 대기업에 일임했던 것에서 벗어나, 심사를 위해 스스로 RFP(제안요청서)를 만들며 고민한 결과"라고 평했다. 장두원 과기정통부 SW산업과장은 "하도급 문제 해결에 제도가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분쟁조정 건도 급격히 줄고 있다"고 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평행선= 공공SW사업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입장차는 뚜렷했다. 대기업은 시대와 기술의 변화를, 중견기업은 그동안 거둔 성과를 강조했다.
변재일 의원은 "발주자 편의에 의해 사업을 대기업에 맡기려는 경향이 있다"며 "어떤 보완장치를 만들어 상생발전하고 공공SW 품질을 높일 수 있을지, 디지털플랫폼정부를 통해 국민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SW산업 육성도 꾀할 수 있을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윤재 SK㈜ C&C 부사장은 "제도 도입 당시 문제들은 대기업들도 반성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이 중요해진 지금 와서도 그렇게 할 곳은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강력한 진입규제 외에 행위규제나 시장점유율 규제도 있다. IT강국에 걸맞지 않게 백신예약 장애사태 등을 거치며 항생제를 10년째 장복하는 셈인데, 비슷한 규모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 그 성과를 객관적·합리적으로 분석하고 필요 시 재검토하는 게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제안했다.
은윤오 아이티센그룹 쌍용정보통신 전무는 "대기업과 상출제 기업은 구분돼야 한다. 참여제한이 된 기업은 10년 전에도 10곳이 안 됐고 현재 5곳 정도"라며 "이 제도 덕분에 전문성을 지닌 중견·중소기업들의 사업 역량이 대기업 이상으로 향상될 수 있었고, 매출 규모와 종업원 수 증가로 효과도 충분히 입증했다. 제도가 완화될 경우 대기업으로 핵심 인력이 유출돼 회사 존속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반박했다.
조미리애 VTW 대표는 "제도 시행 초기에는 시행착오가 분명 있었지만 중견·중소기업이 역량을 키우면서 이제 각 전문영역에서는 대기업보다 월등하다"면서 "대기업에 문을 열더라도 대·중·소 형평성에 맞는 동일책임·동일대가 생태계 마련, 대기업 사업관리 역량과 중견·중소기업 전문성 활용, 상생점수 때문에 중소기업은 들어가도 중견기업은 배제되는 대기업 참여 사업구조 개선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짚었다.
노영규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 팀장은 "전자정부 강국은 SW업계 종사자들의 눈물과 땀으로 이뤄졌음을 느낀다. 제도를 최선의 방향으로 고치고 적정 대가를 지급하는 데 대해 사명감을 느낀다. 지혜를 모으면 대·중·소기업의 '제로섬'이 아니라 상생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SW산업 생태계 살리자 한 목소리= 이날 행사에서는 열악한 공공SW사업 환경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수익성 부족, 발주자 역량 미달 등 고질병을 그대로 두고는 기업도, 사람도 떠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협회 부회장은 "10년 동안 시장 성장은 없었고, 대기업이 떠난 자리를 중소·중견이 나눠가지면서 이익은 더 열악해졌다. 과기정통부는 환경을 개선하려 하지만 기재부는 예산을 더 줄인다"면서 "과거 노무현 정부 때는 공공SW사업이 전체 정부 예산의 2~3%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1%가 안 되고, 그마저도 대부분 유지보수라 새로운 사업기회가 없다"고 꼬집었다.조미리애 대표는 "SW사업은 늘 새로운 기능과 혁신을 추구하므로 수십년 전문성을 쌓아도 사업 초기에 그 범위를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현 계약구조는 사업 초기에 각종 문서로 범위를 규정하고는 이후 발생하는 추가 과업은 기업에만 부담을 전가한다"며 "선진국 중 우리나라만 과업범위 확정 절차가 없다. 이게 마련돼야 모든 사업에서 품질이 확보되고 기업의 피해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용수 과기정통부 SW정책국장은 "상출제 대기업과 중견기업, 일반 대기업의 싸움으로 볼 게 아니라 전 산업이 상생하기 위해 어떻게 가야할지 논의돼야 한다"며 "대기업은 이제 CSP(클라우드서비스제공사)나 MSP(관리서비스제공사) 역량을 갖추고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밝혔다.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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