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임 강제 않고 화주 처벌조항 없애···'번호판 장사' 업체는 퇴출
가이드라인 방식으로 '표준운임' 매년 공포하기로
차량·운전자 직접 관리 '직영 화물차'는 증차 허용
민주당 '안전운임제 연장' 의지···국회서 난항 예고
정부가 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의 집단 운송 거부를 계기로 기존 안전운임제 대신 강제성이 없는 ‘표준운임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신규 직영 화물차의 경우 ‘화물차 번호판 총량제’의 예외로 인정해 진입을 넓히고 화물연대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의도다. 동시에 공정거래위원회는 화물연대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올해 ‘노동 개혁’을 화두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화물연대를 코너로 모는 모양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은 18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화물운송시장 정상화 방안’ 공청회를 열고 안전운임제 대신 표준운임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표준운임제는 화물차주의 실질 소득을 보전하면서도 화주와 운수사 간 운임을 가이드라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제도다. 안전 개선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판단에 따라 안전운임제 대신 표준운임제라는 명칭을 쓰기로 했다. 안전운임제와 마찬가지로 시멘트·컨테이너 품목에 한정해 2025년까지 3년 일몰제로 운영된다.
표준운임제의 가장 큰 특징은 안전운임제에 있던 화주 처벌 조항이 빠졌다는 점이다. 운임 계약 시 참고할 수 있도록 ‘표준운임’이 매년 공포되지만 처벌이 전제되는 강제 사항은 아니다. 운임제 적용 대상이 되는 차주의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보완 방안도 마련됐다. 기존에 운임을 결정하던 안전운임위원회는 구성상 운임 인상 의견에 치우친다는 지적에 따라 공익위원을 늘리는 등 의사 결정 구조의 균형도 강화한다. 운임의 원가 항목을 사전 규정하고 세부 원가는 전문위원회에서 논의하도록 해 원가 관련 논란도 줄이기로 했다.
정부는 화물 운송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인 ‘다단계 운송 구조’도 손본다. 현재 화물기사의 92.5%는 화주(수출입 기업)가 아닌 운송사와 영업권(번호판) 계약을 맺고 일감을 받는다. 이러한 차주들은 운송사에 번호판 사용료로 2000만~3000만 원을 내고 월 20만~30만 원의 위·수탁료도 지급한다. 화물차 공급을 통제하는 ‘화물차 번호판 총량제’ 탓에 일감도 없이 위·수탁료에만 의존하는 위·수탁 전문회사가 늘어나자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화물차주의 자유로운 시장 진출입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정부는 화물차 번호판 총량제 완화에 나섰다. 운송사가 차량 및 운전자를 직접 관리하는 ‘직영 운영’에는 차종과 관계 없이 신규 증차를 허용해 직영 화물차 확대를 유도한다. 신규 증차된 직영 차량에는 위·수탁이 금지되고 이를 위반하면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탄력적인 차량 공급을 위해 차종별·톤급별 간 교체 범위를 완화하고 차량 교체 시 톤급 상향 범위 또한 확대하기로 했다.
번호판 총량제 완화는 화물연대의 영향력을 약화시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개혁의 중요 계기가 될 수 있다. 현행 화물차 번호판 총량제는 청년 화물차주의 시장 신규 진입을 막아 기존 화물차주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반복적인 집단 운송 거부와 육상 물류 셧다운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화물연대는 이날 공청회에서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총량제 폐지를 규탄한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실제 운송에 참여하지 않고 화물차 번호판만 빌려준 뒤 수수료를 받는 위·수탁 전문회사는 시장에서 퇴출된다. 그동안 번호판을 빌려 운송하던 차주들은 직접 번호판을 받아서 운송할 수 있다. 국토부는 판스프링 등 불법 개조와 과적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화물차 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이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와 별개로 이런 로드맵이 순탄하게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당장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안전운임제 일몰을 연장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단독 상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또 표준운임제로 개편하려면 국회 논의 과정도 필수다. 이날 공청회에서도 회물연대 소속 차주들이 “총량제 폐지 규탄” 등을 적은 팻말을 내걸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는 이번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국회에서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지만 안전운임제 일몰 연장 처리부터 실타래처럼 꼬여 있어 난항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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