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 회계·불법 파업·국보법 위반 혐의… 정부, 민노총 전방위 압박

세종=손덕호 기자 2023. 1. 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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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노조에 회계공시 압박…민노총, 1300명 모여 ‘세 과시’
국정원, 민노총 간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본부 압수수색
양경수 위원장 “회계 공격하려다 안 되니 종북몰이 시도”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총을 상대로 전방위 압박에 나선 모양새다. 고용노동부는 불투명한 회계 문제를 지적하고 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불법파업과 관련해 화물연대를 검찰에 고발했다. 국가정보원은 민노총 간부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수사선상에 올렸다. 민노총은 ‘공안탄압’이라며 반발했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울 사무실 앞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규탄하고 있다. /뉴스1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정부 정책에 민노총 불응 방침… ”법적 대응”

정부는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오는 31일까지 노조가 재정 상황을 스스로 점검하도록 ‘자율점검 기간’을 운영하고, 3분기(7~9월)까지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노조가 회계자료 공시를 자율적으로 하도록 유도하고, 공시 대상과 항목·절차 등을 담은 입법안은 다음달 중 발의할 예정이다.

이 같은 조치는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 부패는 공직·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 중 하나”라며 노조의 회계가 투명해져야 한다고 강조한 데 따른 것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노조가 그간 기업에 대해서는 투명성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기 통제에는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노총은 이를 ‘노동 탄압’으로 규정하고, 정부의 조치를 따르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민노총은 전날 대의원 1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산 킨텍스에서 ‘긴급 단위사업장 대표자대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의 공세는 최대 저항세력인 민주노총 죽이기”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조치에 대해서는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행정관청의 개입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회계 관련 서류의 사무실 비치 여부와 조합원의 열람권 보장을 확인할 수 있는 단순한 점검 결과보고에는 응하되,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고용부의 현장점검이나 결산자료와 회의록 등 운영상황 자료제출 요구에는 응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의 자료제출 요구를 따르지 않아 과태료가 부과되면 행정소송(위헌소송) 등 법적인 대응을 하기로 했다. 또 고용부가 마련할 자율점검 세부 목록의 내용과 방식을 보고 추가대응지침을 결정하기로 했다.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행사 사진을 올리고 “윤석열 정권의 탄압, 공격이 아무리 거세도 민주노총은 당당히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썼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건설노조 윤석열 정부 규탄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위, 총파업 때 현장조사 방해 檢 고발키로… 화물연대 “노조 탄압”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화물연대가 작년 12월 2일과 5일, 6일 등 3일간 진행된 현장 조사에서 조사공무원의 사무실 진입을 고의로 저지해 조사를 방해한 데 따른 조치다.

앞서 공정위는 화물연대가 집단운송거부(총파업) 과정에서 소속 사업자에게 운송 거부(파업)를 강요하거나 다른 사업자의 운송을 방해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2일 현장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화물연대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건물에 진입하지 못해 조사를 하지 못했다. 당시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건물 입구를 봉쇄하며 물리적으로 조사를 방해했다. 공정위 현장조사관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거부해 조사가 무산된 것은 처음이었다.

공정위는 “이런 행위는 조직 차원에서 결정·실행됐으며 이에 따라 공정위의 원활한 조사 진행이 방해됐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강제 수사권이 없지만, 고의로 조사관의 현장 진입을 저지·지연해 공정위 조사를 거부·방해·기피하면 공정거래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화물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고 공정위 고발을 ‘표적 탄압’으로 규정했다. 화물연대는 “공정위의 화물연대에 대한 이른바 ‘부당 공동행위’ 조사는 위법·부당한 것”이라며 “이렇게 위법하고 부당한 조사를 무리해서 진행하는 이유는 무리해서라도 노동조합 탄압과 파괴를 해내고야 말겠다는 윤석열 정권의 의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8일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국토부가 주최한 화물운송시장 정상화 방안 공청회에서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요구사항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원, 전국 동시다발 압수수색… 민노총 “한 편의 잘 짜여진 그림” 반발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 있는 민주노총 본부에서 압수수색을 벌였다. 국정원은 민주노총 본부 국장급 간부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와 관련해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국정원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민노총 설명이다.

국정원은 이날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민노총 본부를 압수수색한 것과 비슷한 시각 민노총 산하 보건의료노조를 압수수색했다. 국정원은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다.

또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소속 전 간부인 광주기아차지부 조합원의 전남 담양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제주도의 세월호 활동가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이 활동가는 세월호제주기억관 옆에서 사회적 참사 희생자 유가족 숙소로 활용되는 ‘평화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에 참여하기도 했다.

민노총은 국정원의 압수수색이 정상적이지 않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상진 대변인은 “(압수수색을) 막거나 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건물 주변에) 에어 매트리스를 깔고 수백명의 경찰 인력을 깔면서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겠다고 나와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성명에서 “압수수색 과정에서 국정원은 경찰 수백명, 에어매트, 사다리차까지 동원한 ‘공안 정국’의 사건 그림을 짰다”고 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18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평화쉼터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이날 압수수색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이지만, 구체적인 혐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국정원이 수사 중인 제주 ‘ㅎㄱㅎ’, 경남 창원 ‘자통’ 등 일부 진보 진영 인사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관계자는 “수년간 내사해 온 북한 연계 혐의에 대해 증거를 확보해 강제수사 필요성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고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대변인은 ‘국정원이 압수수색하는 혐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최근 제주와 경남 창원 지역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지금 조사 중이다. 그런 맥락의 다 같은 것인지, 아니면 별건인지는 제대로 확인 못했다”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위반 조작이든 아니든 궤는 같이 하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고 말했다. 양 위원장은 페이스북에서 “민주노총을 회계 문제로 공격하려다 불가능하니 이제 종북몰이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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