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섰다”던 나경원, 윤 대통령과 충돌에 다시 고심하나
국민의힘 대표 선거 출마를 두고 나경원 전 의원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출마로 기울던 나 전 의원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해임 과정을 놓고 윤석열 대통령과 직접 대립하면서다. 당내에서 나 전 의원이 고립되는 모양새다. 나 전 의원은 18일 예정됐던 일정을 취소하고 다시 잠행에 들어갔다. 나 전 의원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출마할 것이란 의견과 ‘윤심’(윤 대통령 의중)이 아닌 게 확인된 이상 출마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동시에 제기된다.
나 전 의원은 이날 공개 일정 없이 하루를 보냈다. 국민의힘 대전시당 신년인사회 참석이 예정돼 있었지만 취소했다. 이 행사에는 당권주자인 김기현·윤상현 의원, 황교안 전 대표가 참석했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아침 서울 용산구 자택 앞에서 만난 기자가 당권 도전 여부 등을 묻자 “할 말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국민특보단 포럼 신년교례회’에 “당과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 힘써달라”는 내용의 축사를 보냈지만 참석하지는 않았다. 나 전 의원 측 관계자는 “내일(19일) 일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날까지만 해도 나 전 의원의 당대표 선거 출마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나 전 의원은 전날 대구 동화사를 방문해 “결심은 거의 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동화사는 나 전 의원이 2021년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을 때도 찾았던 곳이다.
하지만 전날 나 전 의원의 동화사 방문 직후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익을 위해 분초를 아껴가며 경제외교 활동을 하고 있는 대통령이 나 전 의원의 그간 처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을 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나 전 의원이 같은날 자신의 저출산위 부위원장직 해임과 관련해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실 참모·‘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탓으로 돌리자 사실상 윤 대통령이 이를 반박한 것이다.
김 실장 입장이 나온 직후 친윤(석열)계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이 앞장서 나 전 의원에게 대통령에 대한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국민의힘 초선의원 63명 중 80% 가까운 50명이 이날까지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박수영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 전 의원 발언에 대해 의원들이 매우 격앙된 분위기였다”고 썼다. 당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인 엄태영·장동혁 의원은 나 전 의원 비판 성명에 이름을 올린 것이 선거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날 선관위원직을 사퇴했다.
국민의힘 재선의원들도 나 전 의원의 향후 행보에 따라 규탄 성명을 내려고 준비 중이다. 윤심을 내세운 김기현 의원은 이날 “많은 의원들 사이에서 나 전 의원이 대통령의 해임 결정에 대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했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내 인사들은 자칫 반윤(석열)으로 찍힐까 두려워 나 전 의원과 거리를 두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초선의원 성명에 대해 “여러 명이 함께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전날 대통령실이 낸 입장에 대해서는 “사실을 정확히 알리는 의도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의원은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시절부터 윤 대통령과 호흡이 잘 맞는다고 강조했다. 윤상현 의원은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김장(김기현·장제원)연대’가 윤심팔이를 하며 대통령을 끌어들였을 때부터 첫 단추가 잘못 채워졌다. 나 전 의원은 본인에 대한 해임이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고 하면서 대통령을 끌어들이고 있다”며 김기현 의원과 나 전 의원을 싸잡아 비판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적은 내부에 있다. 분열이 우리의 적”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김태흠 충남지사도 나 전 의원 불출마를 촉구했다.
나 전 의원 측은 이날 기자들에게 ‘나 전 의원을 둘러싼 논쟁 팩트체크’라는 글을 만들어 배포했다. 저출산위 부위원장직은 공직이 아니며, 나 전 의원이 자리를 요구한 것도 아니라는 내용이다. 나 전 의원 측 관계자는 “나 전 의원은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질의·응답 중 나온 발언을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마치 (나 전 의원이) 정책으로 추진하려는 것처럼 기자 브리핑을 하자 앞으로의 업무 수행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사의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나 전 의원이 “(출산 시 주택 구입·전세자금 대출) 원금 부분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탕감할 수 있는 부분은 없나 들여다보고 있다”며 검토 수준이라고 말했는데도, 대통령실이 이를 정책 수준으로 둔갑시켜 나 전 의원을 부당하게 공격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한 것이다. 나 전 의원이 잠행 중에도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밝힌 것을 두고 여전히 출마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출마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당내에서 제기된다. 나 전 의원의 윤 대통령과 윤핵관 분리 전략이 통하지 않게 되면서 윤심 구애는 더 이상 통하기 어렵게 됐다. 윤 대통령과의 갈등 이후 일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하락세인 것도 나 전 의원의 고민을 키우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나 전 의원은 그동안 잘 차려진 판에만 등장했지 본인이 상황을 적극 돌파하는 성격이 아니다”라며 “당내 여론이 좋지 않고 대통령까지 나선 상황에서 출마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이 오는 21일 윤 대통령 귀국 이후 입장을 내기로 한 만큼 이번 주까지는 고민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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