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성추행에 ‘무방비’였던 일터···5060 지하철 여성 청소노동자의 악몽
서울 지하철 2호선 역사에서 청소 업무를 담당하는 60대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관리직 팀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발이 나왔다. 폐쇄된 지하철역 공간에서 휴식 시간 혼자 머물게 되는 노동환경 탓에 직원들이 성추행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6일 경향신문과 만난 서울메트로환경 지하철역 청소노동자 A씨(64)는 지난 2021년 신정네거리역에서 근무하던 당시 같은 회사 팀장 이모씨(65)에게 성추행을 당한 기억을 떠올렸다.
A씨는 “말하기가 아직도 쉽지 않다”고 어렵게 입을 떼며 “휴게 공간에 갑자기 들어온 이씨가 강제로 신체 부위를 만졌다”고 전했다. A씨와 함께 일했던 노동자 4명 모두 피해자다. 50~60대 여성 노동자들이다.
충격이 컸던 A씨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빠지고, 잠을 자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깨는 등 공황장애 증상으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현재까지 약을 먹고 있다. A씨는 “성추행을 당한 것이 내 허물인 것 같아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을 앓았다”고 했다. 반면 팀장이었던 이씨는 지난해 초 승진해 다른 역사 소장이 됐다.
속앓이만 하던 A씨의 악몽은 지난해 말 전보 인사를 앞두고 다시 극심한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새로 근무하게 될 역 관리자가 남성이라는 소식에 피해 당시가 떠오른 것이다.
A씨가 “무섭다”며 아들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사건은 1년 반 만에 공론화됐다. 지난해 11월 회사에도 알렸다. 그제야 이씨는 “무릎 꿇고 사과하겠다”며 A씨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서울메트로환경은 성범죄 관련 매뉴얼에 따라 이씨를 직위 해제하고 경찰에 사건을 신고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 측은 안전 등 다른 업무와 마찬가지로 2인1조 근무를 요구했다. 성추행 사건 발생 시 즉각적인 대응도 회사 측에 촉구했다.
지하철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의 근무 환경은 특히 성폭력과 관련해 매우 취약하다. 폐쇄된 실내 공간이라는 물리적 환경과 함께 근무시간 중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주간 시간에 4명이 근무하는 신정네거리역에서는 2명이 2조로 나뉘어 오전·오후에 일한다. 하지만 공휴일 근무에 따른 대체휴무 등으로 1명이 근무를 책임지는 날이 허다하다. 신정네거리역 관계자는 “노동자 1명이 한달에 최소 평균 6~7개 휴무를 쓴다”며 “오후는 혼자 근무하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보통 노동자들이 업무 중간 머무는 휴게실에는 도어락이 설치돼 있지만 직원 누구나 출입할 수 있다. 다른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관리자가 들어와도 혼자 있는 상황과 위계에 의한 부담감 때문에 대응하기 어렵다. 50~60대 주를 이루는 청소노동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증거를 남기기도 쉽지 않다.
이찬배 전국민주여성노조 위원장은 “지하철 9호선 2·3단계 구간에서도 여성 청소노동자에 대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 고소장을 냈으나 경찰에서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 처분이 났다”고 전했다.
특히 중년층 여성들은 성추행 피해를 당해도 자책하는 경우가 많아 공론화가 어렵다. ‘가족에게 알리기 싫어서’ ‘알려지는 것이 부끄러워서’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A씨 역시 남편에게 사건을 알렸다가 “여자가 처신을 어떻게 했느냐”는 소리를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위원장은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스스로도, 가족들도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져서 ‘이혼을 당할까 봐 말을 못 하겠다’고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는 성추행 가해자들이 노리는 피해자의 ‘약점’이 되기도 한다.
서울메트로환경 관계자는 “근무 인력은 서울교통공사에서 할당해주기 때문에 임의로 인원을 늘릴 수 없다”며 “여성 관리자를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자가 혼자 근무하는 역에 여성 관리자를 배치하는 식으로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경찰 수사 결과 등을 토대로 징계위원회를 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조는 이씨가 올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연내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무사히 퇴직한다는 것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양천경찰서는 피의자·피해자 조사를 마치고 조만간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이씨 측은 취재진의 연락에 응답하지 않았으나 변호인을 통해 “수사 중인 사안이라 대답이 곤란하다”며 “판결을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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