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수시보다 깜깜한 정시
정시, 시험 성적대로 ?대학 간다지만
영역 반영 비율 등 달라 선택 어려워
통합 수능으로 ‘문과 침공’ 신조어도
대학에 학생 선발권 돌려줘야 해결
2023학년도 대학입학시험 일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수험생들은 수시와 수학능력시험에 이어 정시 원서 접수까지 마치고 다음 달 정시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대학생이 되건 재수생이 되건 또 다른 무엇이 되건 상관없이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입시라는 미궁에 빠져 ‘무지의 지’를 제대로 경험했을 것이다. 특히 대입의 마지막 기회여서 더욱 필사적으로 잡으려 한 정시는 막상 겪어보니 수시보다 훨씬 더 깜깜한 암흑 그 자체였을 것이다.
보통의 학부모는 정시가 수시보다 더 투명하고 공정하다고 여긴다. 수시의 취지를 가장 잘 살렸다고 할 학생부종합전형을 보면 독서, 체험 활동, 수상 경력, 자기소개서 등이 합격 여부를 가르는 잣대가 된다. 결국 수량화하기 어려운 정성 평가가 되다 보니 불합격하면 평가자의 재량을 탓하기가 쉽다. 정시는 한날한시에 모두 모여 똑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치고 숫자로 나온 성적대로 경쟁하니 뒷말이 나올 여지가 없다. 대학은 성적에 맞춰 가면 되니까 단순하고 합리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막상 입시를 치러보면 느낌과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수능 성적표에는 표준점수·백분위·등급이 나온다. 표준점수는 응시생이 받은 원점수가 평균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표준점수는 시험의 난이도에 따라 변한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 똑같이 원점수 만점을 받더라도 선택 과목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기 때문에 표준점수는 차이가 난다. 많은 대학은 탐구 영역 선택 과목에 따른 유불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분위 점수를 바탕으로 한 변환표준점수를 활용한다. 표준점수나 변환표준점수로는 응시생의 전국 등수를 알지 못한다. 수능 성적표만 봐서는 대학을 어떻게 가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는 얘기다.
대학의 시험 영역별 점수 반영 비율은 제각각이다. 이번 입시에서 서강대·한양대 상경계열은 인문계열이면서도 수학 반영 비율이 높았다. 수학 성적이 나쁘다면 도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영어 성적을 반영하는 방법은 더 복잡하다. 수능 영역별 반영 비율에 영어를 포함하거나 반영 비율에서는 빼고 나중에 총점에서 가산 또는 감산한다. 연세대는 수능 영역별 반영 비율에 영어를 포함하는데 수능 총점인 1000점으로 환산할 경우 영어 등급 간 점수 차이가 8.3점(인문계열)이 난다. 총점에서 감산하는 방식인 서울대는 0.5점, 고려대는 3점이다. 영어 등급이 나쁘다면 연세대는 피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대학마다 학과마다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가 천차만별이다 보니 제아무리 연구를 많이 한들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이 된다.
깜깜이 정시에 불을 지른 것은 문·이과 통합 수능이다. 창의적 통합 인재 육성이라는 목표하에 지난해 입시부터 도입된 통합 수능은 취지와 달리 첫해부터 심한 부작용을 일으켰다. 기존 수능은 문과와 이과의 수학 등급을 각각 산정했다. 통합 수능에서는 모든 응시자가 함께 등급을 받는다. 이렇게 되니 상대적으로 어려운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이과 응시자가 상대적으로 쉬운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문과 응시자보다 유리해져 상경계열 등 문과 응시생들이 가던 학과에 대거 교차 지원했다. 지난해 정시에서 서울대 인문사회·예체능 계열에 합격한 학생의 44%가 이과 응시자일 정도여서 ‘문과 침공’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눈치작전은 올해 정시 모집에서도 치열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정시 모집에서 인문·자연 계열을 합친 전체 지원자의 54.7%가 접수 마감 직전 3시간 동안 원서를 냈다. 그동안 해온 공부는 다 소용없이 적성도 무시한 채 경쟁률 낮은 곳만 찾아 원서를 넣다 보니 불합격하면 재수, 합격하면 반수로 이어지기가 십상이다. 재수하려면 수천만 원이 있어야 한다. 국가적으로 이런 낭비가 없다. 정시를 이대로 계속 끌고 갈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정시 비중을 늘린 것은 수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시에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지 왜 정시 비율을 늘리나.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돌려줘야 한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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