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차례상의 전은 사라질까
'저 많은 전(煎)을 누가 다 먹을까.' 몇 해 전 명절을 앞두고 유명 전집들이 들어선 시장을 찾았다가 든 생각이다. 우선 전을 사려는 사람의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서 놀랐고, 한 사람이 구매하는 전의 양이 많아 또 한 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전들은 누군가의 집으로 가 차례상에 올랐을 것이고, 가족들이 먹고도 남은 전은 냉동실 한구석을 차지했을 것이다. 집에서 부친 전은 전집의 전보다 많았을 텐데, 전 부치기 노동은 많은 이들의 한숨과 불만을 불러왔을 것이고, 부부싸움의 불씨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작년 추석을 앞두고 전 부치기를 힘들어하던 여성들의 귀를 쫑긋하게 할 소식이 전해졌다. 성균관유도회가 차례상 표준화 방안을 발표했는데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차례상에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사계전서 제41권 의례문해에 따르면 '밀과, 유병 등 기름진 음식을 제사상에 올리는 것은 예가 아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시대에 맞는 유교' 기치 아래 간소화된 명절 예법을 연구 중인 성균관은 올해도 설을 앞두고 차례상 표준화 방안을 발표했다. 차례상의 기본음식은 떡국, 나물, 구이, 김치, 술(잔), 과일 4종으로 제시했는데, 송편이 떡국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추석 때와 똑같다. '홍동백서(紅東白西)'나 '조율이시(棗栗梨枾)'는 예법을 다룬 문헌에 없는 표현이라는 점도 다시 강조했다. 차례상 표준화가 경제적 부담을 덜고, 남녀·세대 갈등 해결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성균관 덕분인지 지난해 추석 차례상에 전을 올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인크루트가 최근 실시한 '설 명절 차례상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 설문에서도 66.7%가 간소화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번 설날엔 차례를 간소화하고, 전을 부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집이 얼마나 늘어날지 궁금하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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