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조선인들은 왜 사할린에서 지명수배되었나
'경찰공보'라는 제목의 문서. 그 아래에는 일본어로 '가라후토청 경찰부(樺太庁警察部)'라고 적혀 있습니다.
쇼와 16년 12월 15일 발행.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의 기록입니다.
가라후토(樺太) 또는 190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령이었던 북위 50도선 이남 사할린 지역, 즉 남사할린을 뜻하는 일본어 표현입니다.
문서 왼쪽 페이지에는 '단체이주 조선노동자 도주수배'라고 적혀 있습니다. '단체이주 조선노동자'란 집단으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즉 '강제동원 조선인'을 말합니다.
맨 윗줄에는 '도주년월일'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 표에 등장하는 네 명 중 첫번째(맨 오른쪽) 조선인은 1941년 11월 8일에 달아났고, 나머지 세 사람은 이틀 뒤 달아났습니다.
'모집'이라는 말에 속아 일본 땅으로 건너 온 조선인들이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고 달아나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쉽게 도망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시간차를 두고 함께 달아났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실제로 도쿄광산감독국이 1943년에 작성한 '이입 수 및 감원 수' 에는 3년 동안 전체 동원자 1005명 중 148명이 달아난 걸로 기재돼 있습니다.
이들이 강제노동을 했던 '가동(稼働)' 장소는 니가타현이었습니다. 처음 동원이 실시된 '본적'은 경남 고성군 고성읍과 영오면으로 모두 경남 출신이었습니다.
지명수배 문서에는 직업과 이름, 나이도 나와 있습니다. 동원 현장에서는 '토공(土工)'일을 했고, 일본식 이름을 사용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네 명의 이름 모두 일본어로도, 한글로도 어색하지만 본적을 통해 조선인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상특징착의'에는 얼굴 생김새, 옷차림 등 꽤 구체적인 정보가 기재돼 있습니다. 이들의 수배 주체는 모두 니가타현이었습니다.
강제동원 현장인 니가타현에서 달아난 조선인들이 한참 멀리 떨어진 지금의 러시아 영토 사할린에서까지 수배가 됐던 겁니다.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혹독한 노동 현장에서 달아난 조선인들. 어떤 식으로든 일본 당국에 쫓겼을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제동원됐다 달아난 조선인들의 지명수배 사실을 왜 굳이 사할린에서 만들어진 문서를 통해 확인해야 할까요?
일본 내에선 이 같은 문서를 더 이상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강제동원 연구자들은 일본이 패전한 이후 모두 파기했을 가능성이 큰 걸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가라후토 경찰공보'는 어떻게 지금까지 보존됐을까요? 일본 패전 후 사할린은 소련의 영토가 됐고, 소련은 이 같은 문서를 없앨 이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일본의 한 단체가 일제가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자를 지명수배했다는 증거 문서를 사할린에서 찾아낸 겁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현장에서 달아나기 전에 실제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잘 보여주는 문서도 있습니다.
당시 사도광산의 노무과 직원이었던 스기모토 소지 씨가 1974년 일본의 역사학자에게 보낸 28장의 편지입니다.
스기모토의 편지에서는 조선인에 대한 학대와 폭력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노동자 감시 역할을 하며 조선인들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스기모토가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직접 썼다는 겁니다.
'모집'이란 형식을 빌어 동원된 조선인들에겐 '계약기간'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스기모토는 조선인들이 '자포자기' 상태였다고 회상합니다.
'강제동원이 아닌 모집이었다', '자유의지에 따른 계약이었다'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과는 상반된 내용입니다.
"일을 잘 못하는 자들은 탄압 방침에 따라 근로과로 데려 가 때렸는데 차마 볼 수 없는 폭력이었다"
"탄압에 의한 노동과 식사에 대한 불만으로 10여 명이 집단으로 도주"
"강제노동을 당하고 1년 모집이 몇 년으로 연기되면서 반은 자포자기 상태가 된 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
비단 사도광산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인을 향한 멸시와 차별, 학대는 모든 강제동원 현장에서 '매뉴얼화' 돼 있었습니다.
일본광산협회가 만든 '조선인노무자에 관한 조사보고'(1940)에서 그 실태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자료에선 노동쟁의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
-지능이해의 정도가 상상이상으로 낮아 의사소통이 어려워
-모집 현지(조선)의 군면 관계자가 갱내 작업 내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노동조건에 다소 오해가 있어
-불량분자의 선동에 응하는 반도인 특유의 교활성과 부화뇌동성
강제노동에 따른 급여 명목의 돈이 나오긴 했지만, 그 또한 조선인들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지급할 때는 용처를 조사해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허가한다'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는 다음 대목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량노무자에 관한 취급'이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인식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고삐'를 느슨하게 하지 않는 관리를 필요로 한다
강제동원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 씨는 조선인들을 '소나 말'처럼 다룬 것이라고 말합니다.
조선인은 소나 말처럼 간주해 관리한다는 것…
'고삐를 느슨하게 하지 않는 관리'라는 표현에 조선인을 어떻게 봤는지가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나
이 같은 자료들이 이제 와서 새롭게 드러나는 데서 알 수 있듯, 일제 강제동원 문제는 아직 베일에 가려있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사도광산처럼 조사 자체가 안된 곳들도 있습니다.
사도광산에 어떤 사람들이 동원됐는지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들의 이름조차도 고작 담배를 나눠주기 위해 만들었던 '연초 배급 명부'에 의존한 것입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생존 피해자들도 있습니다.
강제동원 배상 문제의 해법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2월 1일까지 사도광산 세계유산 후보 추천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할 계획입니다. 먼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 때와 마찬가지로 '강제동원'에 대한 언급은 또 빠질 걸로 보입니다.
지종익 기자 (jig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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