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칼럼] 美제조업 부활의 비결 '암묵적 카르텔'
美제조업 고용 급감하자
정치권 보호무역으로 급선회
미국이 투자 블랙홀 된 건
정치·기업·노조의 '기업 육성'
미국은 2007년 금융위기에 앞서 7년 전에도 우리가 잘 모르는 '경제위기'를 맞는다. 그 위기는 2000년, 중국에 대해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 자격을 주면서 시작한다. 중국산 수입품이 최혜국 대우 관세율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매년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를 영구 면제시켜준 것이다.
결과는 미국 제조업 부문의 일자리 급감이다. 연초 전미경제학회에서 만난 피터 숏(Peter Schott) 예일대 교수는 "중국에 대한 PNTR 제공 여파로 2001년 3월 이후 6년간 미국 내 제조업 부문에서만 고용이 18%나 줄었다"고 분석한다. 1800만명에 달하던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6년 동안 300만개 넘게 줄어든 셈이다. 금융위기 당시 줄어든 일자리와 맞먹는 수준이다.
피해를 입은 지역 근로자들이자 유권자들은 분노하고, 자유무역을 지지한 정치인들은 큰 타격을 받는다. 세계화 분야 석학인 숏 교수의 연구 결과다. 2000년대 초기엔 자유무역을 지지한 공화당이 해당 지역 선거에서 열세를 면치 못한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과 달리 적극적인 보호무역을 주장하면서 득표에 성공한다.
숏 교수는 이런 분석 틀을 2016년 미국 대선과도 연결해본다. 미국 정치인들은 2000년대 초반 10여 년간 학습효과 덕분에 정책을 전환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는 당시 대선에서 미국 제조업 일자리를 되찾고 대중 무역에 강경 노선을 걷겠다는 자국우선주의(America First) 구호를 내놓는다. 미국 러스트벨트 지역은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이나 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미시간주 유권자들은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다. 미국 선거 지형이 보호무역을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유리하게 확 변해버린 셈이다.
특히 요즘엔 러스트벨트와 겹치는 스윙스테이트(경합주) 소속 정치인들이 더욱더 보호무역정책으로 기울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후보도 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에게 뒤질세라 제조업 살리기를 외친다. 결국 위스콘신·미시간·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벨트이자 경합주에서 선전하며 당선된다.
미국은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무시한 채 '중국 제조 2025'를 추진하고, 일대일로를 내세워 패권국가로 변하자 중국을 더 견제한다.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작동하지 않자 미·중 갈등은 더욱 거세다. 바이든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 기치로 미국 내에서 산업 공급망을 완성하려 한다. 고물가 대책을 빌미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라는 조치도 취한다. 미국과 인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겠다는 정책이다. 하지만 뜯어보면 미국 자동차회사 지원법이다.
미국 보호주의의 진화는 진행형이다. 그 결과 한때 제조업 무덤이었던 러스트벨트는 부활하고 있다. 미국 전역은 전 세계 첨단 제조업의 블랙홀로 변하고 있다. 꺾이지 않는 미국 정치인들의 '암묵적 카르텔'이 그 비법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미국 정치인들은 소속당에 무관하게 자국 기업 육성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는다. 카르텔 안에는 기업은 물론, 유권자와 노동계도 가담한다.
우리는 어떤가.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기업 육성을 부자 지원으로 내모는 정치가 판친다. 미국처럼 심각한 고용 충격을 겪은 뒤에나 정치권과 행정부, 기업과 노동계가 힘을 합칠 것인가. 이제 우리 정치권부터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차례다. 더욱이 우리는 미·중 간 갈등 파고도 넘어야 하는 나라다. "한국은 G2 갈등에 낀 국가다. 여기서 잘 처신하지 못하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No Man's Land)가 된다." 국제무역 석학인 폴 안트라스(Pol Antras) 하버드대 교수가 연초 한국에 던지는 경고다.
[김명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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