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조던, 메시…이 세사람 중 누가 ‘통합 GOAT’일까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인공은 북산의 포인트가드 송태섭(미야기 료타)이다. 사반세기 전에 완결 난 고전을 되살리는 방편으로 원작에서 1·3학년 사이 낀 세대였던 캐릭터를 재조명한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의 선택은 그럴싸했다. ‘이미 아는 이야기’에는 새로운 감성이 더해졌고, 1번 리딩 가드의 시점을 차용한 덕에 경기의 흐름도 생생해졌다. 다만 한가지는 여전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뒤 머릿속 리플레이 장면 속에서 공을 잡고 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원작 주인공 강백호(사쿠라기 하나미치)다.
원작을 보지 않았다는 2000년생 농구선수 이현중의 감상평을 들어보자. 미국프로농구(NBA) 재도전을 위한 출국을 앞두고 지난 13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현중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 봤냐’는 질문에 “봤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당연히 강백호”라면서 “투박하고 철이 없지만 어떻게 보면 정말 훌륭한 리더다. 저도 팀에 에너지를 주면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조연의 자리로 밀어놓아도 산왕공고전 강백호의 강렬한 존재감은 가려지지 않는다. 스포츠에서 주인공을 결정짓는 것은 본질적으로 서사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고 선수를 가리는 이른바 ‘고트’(GOAT: Greatest Of All Time) 논쟁 역시 마찬가지다. 기록과 수상 실적, 운동 능력, 하이라이트 장면, 인기, 품행, 사회적 영향력 등 무수한 요소가 평가 항목으로 들어가지만 이 전부를 근사하게 꿰어내는 ‘이야기’를 완성하지 못한 선수가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 수는 없다. 제아무리 대단한 개인 기록을 세워도 승부처에서 슛을 쏘지 못하면, 영웅이 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스포츠사에 길이 남은 ‘고트’들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서사가 있다. 이 용어의 시조 격으로 평가받는 이는 위대한 복서 고 무하마드 알리다. 알리는 링 위에서 소니 리스턴(1964년), 조지 포먼(1974년), 조 프레이저(1975년) 등 당대 최강자들과 붙었고, 링 밖에서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하며 국가와 싸웠다. 싸움의 대가로 챔피언 벨트를 빼앗기고 커리어 전성기를 통째로 날렸지만 결국 이겼다. 불세출의 파이터이자 흑인 민권 운동의 상징으로 남은 알리의 행보에 세계는 ‘가장 위대한 선수’라는 수식어를 헌정했다.
알리에 이어 ‘고트’ 합의를 끌어낸 이는 농구의 마이클 조던이다. 시카고 불스의 에이스로 군림하며 1991∼1993년과 1996∼1998년 두 번의 챔피언 시리즈 3연패를 일궜다. 결승 시리즈에 여섯 번 진출해 모두 이겼고, 여섯 번의 챔프전에서 전부 최우수선수(MVP)를 석권한 당대의 지배자였다. 구단의 리빌딩 계획을 통지받고도 우승을 쟁취한 97∼98시즌의 이야기는 익히 아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라스트 댄스’라는 말을 보편 명사처럼 만들었다. 조던을 쫓는 엔비에이 스타들은 이보다 나은 이야기를 써야 한다.
가장 최근 ‘고트’에 등극한 선수는 한 달 전 2022 카타르월드컵 결승전 트로피를 들어 올린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다. 국제대회에서 네 번의 준우승, 한 번의 국가대표팀 은퇴를 거쳐 메시는 이 대회에서 7골3도움을 쏟아내며 조국을 36년 만에 세계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가 월드컵과 결승전 최우수선수 트로피를 한 아름 떠안은 날, 국제축구연맹(FIFA)은 소셜 계정에 “‘고트’ 논쟁은 종결됐다. 마지막 트로피가 컬렉션에 들어가면서, 전설의 유산은 완성됐다”고 썼다.
이제 사람들은 메시를 조던, 알리와 같은 반열에 올려두고 종목 관계없이 ‘통합 고트’에 대한 논쟁을 시작했다. 기자의 의견을 얹자면 이야기의 관점에서 일단 조던보다 메시에게 가산점을 주고 싶다. 조던의 마지막 상대였던 칼 말론과 존 스탁턴의 유타 재즈보다 메시의 마지막 상대였던 킬리안 음바페의 프랑스가 더 위협적이고 매력적인 ‘빌런’(악역)이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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