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화하는 ‘신공안정국’… “국정원, 전국서 시위하듯 간첩 수사”

강은·윤기은 기자 2023. 1. 1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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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연맹과 주요 산별노조 전현직 간부에
사실상 간첩 혐의로 압수수색영장 집행
“윤 정부 국정원, 공안정국 신호탄” 관측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18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동안 경찰이 정동길을 통제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공안당국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가 노동계로 확대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18일 총연맹(민주노총)과 주요 산별노조(보건의료노조·금속노조)의 일부 전현직 간부에게 사실상 간첩 혐의를 걸어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제주·창원 등 지역에서 진행돼온 국보법 위반 혐의 수사가 민주노총과 주요 산별노조의 본진까지 치고 들어온 것이다

이 수사는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노동 개혁’ 기조와 맞물려 범여권 차원의 대대적인 반민주노총 캠페인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기능과 역할을 확대한 데 이어 대공수사권 존치까지 노리는 국정원이 공안정국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정원의 국보법 위반 혐의 수사는 범위와 대상을 넓혀가며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국정원은 제주·창원 등지의 진보정당 전·현직 간부나 농민단체 관계자,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북한 지령을 받고 반정부 투쟁을 벌여온 것으로 보고 지난해 11월부터 강제수사를 본격화했다. 그리고 이날 서울 중구 정동의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과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 경기 수원, 제주와 전남 담양 등 전국 12곳에서 동시다발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국정원은 국회 원내정당 당직자 출신 한 인사도 국보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다.

이번 수사는 윤석열 정부 들어 국정원의 역할이 확대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국정원 역할과 위상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에서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고 바뀐 원훈처럼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국정원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탈북어민 강제북송 의혹’ 등 전 정권을 겨눈 사건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최근에는 고위공직자의 신원을 조사하는 신원검증센터, 재계를 상대하는 경제협력단을 신설하는 등 소관업무도 대폭 넓히고 있다.

이번 수사는 윤석열 정부의 반노조 정책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노동개혁’이라고 하고, 노동계는 ‘노동탄압’으로 받아들이는 일련의 조치들이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파업 이후 꾸준히 이어졌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 때 업무개시명령, 안전운임제 전면 재검토 등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고 이후 노조의 회계 투명화, 건설 현장 불법행위 집중단속 등 노조 부패 문제를 앞장서 공론화했다. 이날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장 조사 방해 등의 이유로 화물연대를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이 수사를 계기로 여권에선 2024년 경찰로 이관되는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에 존치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2일 “간첩은 국정원이 잡는 게 맞다”며 “내년 1월부터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되도록 한 방침이 철회돼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국정원이 간첩 수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상설 합동수사단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윤석열식 공안정국’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장유식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 소장은 “국정원이 전국 각지에서 시위하듯 대공수사를 벌이고 있다. 국정원의 의도가 간첩 수사에 대한 존재감 과시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며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노동계를 대공수사로 압박하면서 공안정국으로 몰고가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국정원이 민간인 불법사찰, 댓글 공작을 통한 여론 조작, 간첩사건 조작 등의 국기문란과 국정농단 범죄를 저지른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이라며 “윤석열식 공안통치의 시작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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