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버려지는 집토끼… 제주·수원·상암 '3분30초'에 담다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야트막한 오름 사라봉. 시내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공항에서도 가까워 도민뿐 아니라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 제주의 명소 중 하나다. 지난 10일 아침.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 사이로 수상한(?) 인물들이 눈에 띄었다. 영상 10도의 기온에 맞지 않는 두꺼운 외투, 한눈에도 무거워 보이는 카메라와 장비 가방 등. 이른 아침 평화로운 공원 분위기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들의 차림새는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들었다. 힐끗힐끗, 혹은 노골적으로 이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사람들이 파란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새겨진 글씨를 알아보고 반가운 척을 한다. “오, JTBC예요?”
산에 사는 집토끼들
JTBC 카메라가 사라봉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토끼 때문이다. 사라봉은 최근 몇 년 사이 야경 명소만이 아니라 ‘토끼 명소’로도 이름이 높아졌다. 반가운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산에 나타나는 토끼를 당연히 ‘산토끼’로 알고 반기지만, 실은 유기된 집토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토끼는 개와 고양이 다음으로 유기 비율이 높은 동물이다). 버려진 토끼들이 공원 이곳저곳에 굴을 파놓고 개체 수도 급격히 늘어나자 손 놓고 구경만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JTBC ‘뉴스룸’의 대표 코너 ‘밀착카메라’가 출동했다. 해가 바뀌며 밀착카메라 3년차가 된 이희령 기자와 박재현 촬영기자, 김지용 오디오맨 등 3명은 전날 밤늦게 제주에 도착,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가 이날 오전 8시 호텔을 나서 사라봉에 올랐다. 토끼로 시작해서 토끼로 끝난 이들의 하루를 동행 취재했다.
토끼를 찾습니다
“20마리가 있다고 들었는데, 4마리만 봤네요.”
사라봉에 오르면서부터 열심히 토끼를 찾아 헤맨 이희령 기자의 목소리에선 아쉬움이 묻어났다. 계묘년의 주인공인 검은 토끼부터 누군가 두고 간 당근 조각을 먹는 토끼까지 제법 다양하게 카메라에 담았지만, 성에 차지는 않은 듯했다. “경계심이 높아졌다고는 하던데, 폐사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매주 월·수·금 뉴스룸에서 방송되는 밀착카메라는 이 기자를 포함한 취재기자 3명이 요일별로 맡아서 제작한다. 담당 요일은 몇 달에 한 번 바꾸는데, 현재 이 기자 담당은 수요일이다. 수요일(11일) 방송분 제작을 위해 지난 금요일(6일) 사전 취재를 거쳐 월요일(9일)엔 인터뷰 섭외 등을 진행했고, 방송 하루 전인 이날(10일)은 종일 촬영에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토끼는 생각만큼 자주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토끼 굴은 여러 개가 발견됐다. 굴을 파는 건 집토끼(굴토끼)의 습성으로, 야생토끼(산토끼)와는 다른 종이란 걸 알 수 있는 단서다. “손 한 번 넣어볼까?” 촬영기자의 제안에 이 기자는 “물리는 거 아니겠죠?” 하면서도 굴속으로 손을 쑥 집어 넣어본다.
카메라 3대는 기본?!
현장에 나오면 최대한 오래 머무르려 하지만, 그 시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취재도, 촬영도, 닥치는 대로 많은 것을 해내야 한다. 오프닝과 브릿지 촬영을 하고, 다음 약속으로 예정돼 있던 취재원과 전화 통화를 하고, 시민 인터뷰도 진행하며 잠시 앉을 틈도 없이 숨 가쁘게 움직인다. 틈틈이 ‘찍은(한) 것’과 ‘찍어야(해야) 할 것’을 구분해서 휴대전화에 메모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스탠드업(현장 리포팅)을 찍을 땐 촬영기자와 동선, 멘트의 길이와 표현까지 꼼꼼히 조율하며 맞춰본다. 실제 현장은 예측과 다른 경우가 많아 미리 멘트를 써두기보다 당일 현장에서 촬영기자와 맞춰 가는 식으로 진행한다. 밀착카메라의 평균 방송 시간은 3분30초. “일반 리포트보다 길이가 2배 길고, 영상의 그림 컷 수도 다른 보도보다 훨씬 많아서” 다양하고 생동감 있는 화면 구현에도 신경 쓴다. 이날 사라봉에서만 ENG 카메라를 기본으로 액션캠 ‘고프로’, 곤충의 눈처럼 입체 영상을 찍을 수 있는 360도 카메라 등 다양한 촬영 장비가 동원됐다. 이 기자는 “촬영기자 선배들 말로는 일반 스트레이트보다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고 더 신경 쓰게 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궁금증이 해결될 때까지
사라봉 정상에서 꼬박 4시간을 보내고 내려와 점심을 먹은 뒤 곧바로 제주시청으로 향했다. 사라봉의 토끼 개체 수가 급증하자 제주시에선 최근 17마리를 포획해 분양했는데, 바로 그 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을 전화로만 취재하다 직접 만나러 간 것이었다.
“인터뷰 약속이 잡혔나요?” 물으니 “아니오”란다. 담당자가 자리에 있으면 만나고, 없으면 그 자리에서 전화하면 된다는 식이다. 듣자 하니 공무원들은 직접 만나자고 하면 피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방식이 불가피한 듯도 했다.
시청에 도착해 담당자의 자리를 확인한 이 기자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무선 마이크만 품에 넣은 채로. 다행히 담당 공무원은 자리에 있었고, 인사를 나누며 선 자세 그대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마이크를 통해 입력된 음성은 사무실 밖에서 대기하던 촬영기자의 ENG 카메라에 그대로 녹음됐다.
20분이 지나서야 사무실 밖으로 나온 이 기자에게 무슨 얘기를 그리 오래 했느냐 물었다. “궁금한 게 해결될 때까지 해야 해서요.” 5분을 인터뷰하든 1시간을 하든, 3분30초짜리 뉴스엔 10~20초 나가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이 기자는 ‘듣고 싶은 말’, ‘방송에 쓸 말’을 골라 듣는 데 만족하지 않고 “궁금한 게 해결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인터뷰도 많이 하다 보면 ‘맷집’이란 게 생기는 걸까. 이 기자는 누구든 붙잡고 인터뷰를 하는 데 거침이 없어 보였다. 사라봉 공원에서 시민들을 인터뷰할 때도 그랬다. “거절에 익숙해져서” 거절에 대해 두려움이 없는 듯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훨씬 커요. 현장에서 좋은 분들을 만난 덕분에 기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더 많습니다.”
제주서 상암 찍고 수원으로
제주에서의 취재를 모두 마치고 오후 4시, 김포행 비행기에 올랐다. 서울은 이미 땅거미가 졌지만, 취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상암동 본사로 돌아가 촬영팀을 교대해 다시 수원으로 이동해야 한다. 한참 선배인 전건구 촬영기자는 오랜만에 만나는 이 기자를 반기며 저녁 식사를 거른 그에게 샌드위치와 딸기 주스를 건넨다. 걱정 어린 목소리로 한마디 보태면서. “너 그러다 막간다. 훅 가는 게 아니라 막간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처럼 동분서주하는 밀착카메라팀에게 제주와 수원 취재 일정을 하루에 소화하는 건 힘든 편도 아니다. “한 아이템으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왔다 갔다 하는 경우”도 있고, 방송 당일 KTX를 타고 지역에서 올라오며 기사를 쓰는 일도 허다하다. “저희가 전담 촬영 VJ랑 다닐 땐 VJ님이 운전도 하면서 취재도 같이하시거든요. 그런데 워낙 지방을 많이 다니고 이동을 많이 하니까 렌터카 VIP 등급이 됐답니다.”
차로 이동하는 중에 잠시 눈 좀 붙이면 좋으련만, 그럴 짬도 없다. 그날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서 작가 등과 공유하고, 클로징멘트도 미리 작성해 둬야 한다. 다른 멘트는 현장에서 촬영기자와 상의해서 결정하지만, 주제가 담기는 클로징멘트는 데스킹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토끼와 함께 클로징을
퇴근 시간에 걸린 탓에 길이 막혀 약속한 시각에 조금 늦었다. 오후 8시가 다 돼서 도착한 수원의 한 상가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동물들의 체취가 코를 찌른다. 이곳은 토끼보호연대가 운영하는 전국 유일의 토끼보호소다. “유기 혹은 유기에 준하는 방치 상태서 구조된” 토끼 80여마리가 활동가들의 돌봄을 받고 있다. 이 기자는 먼저 휴대전화로 보호소 풍경을 스케치한 영상을 작가에게 보내준 뒤, 인터뷰와 스탠드업 촬영 등을 차례로 진행했다.
마지막 클로징멘트 촬영을 앞두고 전건구 기자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토끼 한 번 안고 찍어도 되나요?” 흔쾌히 OK 사인이 떨어지고, ‘윤정이’란 이름의 토끼가 이 기자 품에 안겼다. 1차 시도는 토끼가 어깨 위로 기어오르면서 실패. 두 번째 시도 만에 편안한 자세가 됐다. 토끼를 처음 안아본다는 이 기자는 “너무 따뜻해”라며 감탄한다. 토끼를 안은 채 클로징멘트를 몇 차례 촬영하고 모니터까지 한 뒤 촬영 종료. 오후 9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3분30초짜리 팀플레이
촬영이 끝났다고 할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꼬박 하루 동안 취재하고 촬영한 분량과 같은 날 인턴 기자와 VJ가 다른 곳에서 촬영해온 내용 등을 다 풀어서 정리하고 재구성해 3분30초짜리 리포트를 제작해야 한다(이날 취재 내용은 지난 11일 ‘계묘년 ‘버려지는’ 토끼들’이란 제목의 리포트로 방송됐다). 그렇게 매주 수요일 저녁 ‘납품’을 마치고 나면 한 주가 끝난 기분이 든다. 그래서 그에겐 “수요일이 약간 금요일 같은 느낌”이다. 목요일 하루 쉬고 금요일부터 다시 아이템을 찾기 시작, 그다음 주 월·화가 되면 또 다른 취재 현장에 가 있다(16일 현재 이 기자는 경남 지역 합천보 일대에 있다고 했다).
“1주일을 이렇게 알차게 꽉꽉 채워서 보내는 팀도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나오는 작품들은 애정을 안 가질 수가 없죠. 영상취재 선배와 VJ님들, 구성을 같이 고민해 주시는 작가님들, 또 티가 많이 나지 않아도 없으면 안 되는 인턴 친구들의 도움으로 사실 그 짧은 3분30초짜리 하나 만드는 건데요. 누가 보기에는 되게 짧다, 재밌게 봤네, 이렇게 쉽게 볼 수 있지만 정말 오랜 시간 많은 노고가 들어가는 걸 저도 이 팀에 와서 절절하게 느꼈어요. 그래서 좋아요. 고생스러운 만큼 내 기사가 기억에 남고, 기사를 보면 내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취재했는지, 그때 상황이나 감정이 다 기억나서 짧은 발생 기사를 다룰 때와는 확연히 다른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매력이고요.”
최고의 칭찬
2014년 11월 뉴스룸의 한 코너로 시작한 밀착카메라는 만 8년 넘게 스무 명 가까운 기자들이 거쳐 가며 1400여개의 아이템을 방송했다. “매주 긴 분량으로 담을 얘기가 있고 동시에 현장도 좋은” 아이템을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힘들어도 결국은 제가 취재하고 싶은 아이템을 다루게 되는 게 큰 장점”이라고 이 기자는 말했다. 그 현장이 매주 달라진다는 점도. “밀착카메라가 아니었다면 제가 평생 가보지 않았을 곳에 가고,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일로 가는 출장이긴 하지만 다양한 현장으로 다니다 보면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는 게 전국을 누비는 밀착카메라의 장점입니다.”
그가 기자를 꿈꾼 건 “여러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접 보고 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고, 밀착카메라 취재는 그런 그의 처음 마음과 닿아 있다. 하지만 매주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시간이 ‘삭제’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이대로 잘하고 있는 건지” 고민도 된다. “5년, 10년도 금방 흐를 텐데 그때 과연 나는 어떤 기자가 되어 있을지가 궁금하면서도 걱정됩니다.”
분명한 건, 그는 더 나은 기자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거다. 5년차 기자인 그는 여전히 주말에 동료 기자들과 공부 모임을 가지며 “좋은 기사, 독자나 시청자들이 몰입해서 볼 수 있는 기사를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래서 ‘기사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말이 그와 밀착카메라팀에겐 최고의 칭찬이다. “‘이 기자 기사는 참 재밌고 몰입하게 돼’, ‘아이디어가 좋더라’ 이런 말들을 들으면 힘들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더라고요. 의미 있고 알찬 기사,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몰입하며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기사를 많이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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