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상호 감독 “故강수연, 완성본 못 보여드린 게 가장 한스러워”
넷플릭스 영화 ‘정이’로 돌아온 연상호 감독이 고(故) 강수연을 향한 그리움과 고마움을 연신 드러내며 이같이 고백했다.
18일 신작 ‘정이’의 공개를 앞두고 만난 연상호 감독은 차분하고도 덤덤한 모습이었다. 전 세계 공개를 앞둔 긴장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하늘의 별이 된 ‘원조 월드스타’ 강수연의 잔상이 가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정이’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윤정이(김현주)의 뇌를 복제, 최고의 인공지능(AI) 전투 로봇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SF 한국 영화다. 지난해 5월 돌연 세상을 떠난 고 강수연의 유작이기도 하다.
앞선 공식석상에서 “‘정이’의 시작도, 원동력도 모두 강수연이었다”고 밝힌 연상호 감독은 “시작이 참 구질구질했다”며 운을 뗐다.
연 감독은 “눈물 흘리게 하는 멜로 드라마, 즉 ‘신파’가 요즘에는 그저 안일하고 쉬운 것, 어찌보면 ‘조롱거리’로도 불리는데 개인적으로는 신파의 미덕, 그 강렬한 힘에 꼿혀 있었다. ‘이 좋은 걸 왜 안써?’라는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 고전적 멜로 드라마와 SF가 결합됐을 때 어떤 시너지가 날지 궁금했고, 그 차별화된 지점에서 강수연 선배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선배님께 문자를 보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인연부터 모든 잡다한 걸 끌어모았다. ‘정이’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도 전했다. 답이 안 오시길레 만남도 요청했다. 나중에 ‘답장을 왜 안 주셨나’고 물으니, 스팸문자인 줄 알셨다더라. 자신에게 연락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하셨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연 감독은 “처음 뵀을 땐 그저 멋있었다. 로커 같은 느낌이었다”며 “영화를 책임지는 주연 배우로서 단단하게 연기해주셨고, 그간 경험해온 현장과는 많이 달라 낯설었을 텐데 전혀 불편한 내색 없이 어른으로서 잘 지탱해줬다”고 애틋함을 드러냈다.
“현장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배우셨어요. 이렇게 현장을 좋아하는 배우가 그동안 왜 오랫동안 작업을 안 했나 싶을 정도로요.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셨고, 그 아우라와 내공이 상당했어요. 한국에서 잘 시도되지 않은 SF 장르인 만큼 제겐 정말 큰 도전이었는데...선배가 마지막까지 지지해준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어요.”
뇌복제 실험을 소재로 ‘사이버 펑크’ 장르 특유의 디스토피아와 최첨단의 기술이 공존하는 세계관을 녹여 복합장르적인 재미를 선사하고자 했다. 보편 타당한 이야기로 거부감 없이 다가가면서도, 해외 SF에는 없는 묵직한 메시지와 질문을 담아 ‘곱씹어 볼 만한’ 무엇을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그 방법론으로 ‘신파’와 ‘모성’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연 감독은 “캐릭터와 캐릭터 간의 감정을 많이 다루는 게 내가 생각하는 멜로 감수성이다. 그 중에서도 모성은 고전적 멜로 감수성”이라고 했다. 이어 “나이가 든 딸 ‘서현’(강수연)과 실존하는 지옥에 갇힌 엄마 ‘정이’(김현주)의 관계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오기 좋은 관계라 생각했고 그 감정이 영화의 정체성”이라며 “해외에서 이 지점을 굉장히 신선하게 느낄 것 같았다. 단순히 슬프다는 것 외에도 여러 결을 품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가 그동안 텐션, 공포, 스릴을 강조하는 작품을 많이 해왔다면, ‘정이’는 애초에 출발선이 달랐다. 개인적으론 감정을 강조하는 영화를 한다는 게 특별한 시도였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 결과를 만들어 냈지만,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하다.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고, 그 도전을 가능하게 해 준 강수연 선배님이 유독 그립다”고 진심을 전했다.
고 강수연은 ‘정이’의 뇌복제를 책임지는 연구소 팀장 윤서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김현주는 전투 용병으로 뇌복제 실험 대상이 되는 윤정이를, 류경수는 어떻게든 뇌복제 실험을 성공시켜야만 하는 연구소장 상훈 역을 각각 맡아 시너지를 낸다.
‘정이’는 오는 20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공개된다.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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