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의 질문] “서울대 간판 내걸고 반지성적 주장… 지식인이 분열 부추겨"

김희원 2023. 1. 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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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서울대 총장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1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총장실에서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만나 "지성인이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양극화와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총장은 이달 말 4년 총장 임기를 끝낸다. 홍인기 기자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 양극화가 격화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다.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오히려 대중의 불신과 회의가 높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4년 임기를 마무리하는 올해 신년사에서 지난해를 정치적 반목, 젊은이들의 희생, 경제위기와 전쟁을 맞은 난세로 규정하고 ‘지성의 빈곤과 타락’이 문제라고 말했다. 1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그를 만나 지성인의 역할과 대학교육의 미래, 총장 임기를 마무리하는 소회를 물었다.

-2018년 당시 바른미래당 비례대표 의원을 사퇴하고 서울대 총장 선거에 출마해 주변을 놀라게 했었다.

“왜 국회의원을 그만두냐는 말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론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다. 국회 일이 재미가 없었다. 국회의원이 비판하기는 쉬운데 뭔가 만들어내기는 어려웠다.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는데 고용노동부가 반대하고 나는 환노위 소속이 아니다 보니 할 수가 없었다. 더 허무했던 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경험이다. 국회의원이 제소되면 윤리특위는 윤리심사자문위에 안건을 보내 자문 의견을 받는데 그 후 윤리특위가 아무것도 안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윤리특위가 한 달 내 (징계)결정을 내리게끔 하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결국 통과가 안 됐다. 내가 뭐 하러 이걸 하나 회의가 들었다. 장관과 의원을 지낸 한 지인이 ‘국회의원 되자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부에서 일할 때는 국가에 도움이 되는지를 가장 먼저 생각했는데 국회의원이 되니 가장 먼저 재선에 도움이 되나, 두 번째 우리 당 집권에 도움이 되나, 세 번째 국가에 도움이 되나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다만 서울대 밖에서 서울대를 바라본 경험은 큰 도움이 됐다. 서울대에 대한 외부 시각이 그렇게 차가울 수가 없다. 서울대가 예산이나 법안 도움을 받으려 하면 국회의원들이 잘 만나주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많이 지원받는데 뭘 더 받으려 하냐’는 반응이 많다. 지방 의원들은 더하다. 서울대 졸업해 외국 유학 갔다가 다시 서울대로 돌아온 다수 교수들은 외부의 시각을 전혀 모른다. 그게 서울대 사람들의 큰 문제다.”


"지성인이 사실을 왜곡... 정치와 결탁한 것"

-올해 신년사에서 현 시대를 ‘지성의 빈곤’과 ‘지성의 타락’으로 인한 난세로 규정하고 지성인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무슨 뜻인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경제적·정치적 양극화가 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양극화를 부추기는 일을 지성인이라는 이들이 하고 있다. 좋든 싫든 객관적인 사실을 밝히고 동의하는 게 지식인이 하는 일 아닌가. 주장이나 선호는 그다음 문제다. 그런데 요즘은 사실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식인도 예외가 아니고, 서울대 출신 또한 일조하고 있다. 학생 커뮤니티를 보면 학생들도 사실에 대한 다른 시각, 분열이 심각하다. 아주 걱정된다. 지식인이라면 최소한 팩트에 동의하는 정도까지는 가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 조사를 받으러 출석한 10일 오전 경기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앞에서 지지자들과 보수단체 회원들이 맞불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조국 교수 자녀 입시비리,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 부정 스펙 등 엘리트 지식인의 내로남불, 기회 카르텔이 드러나면서 엘리트에 대한 반감, 지식인에 대한 불신이 커지기도 했다.

“전문가에 대한 존중이 줄고 반지성적 흐름이 생긴 건 세계적인 현상이다. SNS가 발전하면서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이 한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자기 분야에서 많이 배웠다는 것이 지성인으로 인정받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탕인데 간혹 박사학위나 대학 등 간판만 내걸고 반지성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중은 교수가 이렇게 말하는데, 변호사가 이렇게 말하는데 맞겠지 생각하고 쉽게 휩쓸려간다.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진실이 아니라) 대중이 믿고 싶은 걸 뒷받침해주는 셈이다. 조국 사태로 인해 지식인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표출된 것도 사실이나 지식인 간판을 걸고 액티브하게 (반지성적 행동에) 나서는 이들이 더 문제다.

정치 참여 양상도 관계가 있다. 요즘은 대선 캠프마다 대학 교수들이 수백 명씩 몰린다. 과거에는 실력 있는 교수를 정계에서 브레인으로 모셔 가는 분위기였다면 요즘은 교수 타이틀만 있으면 앞다퉈 캠프로 가서 줄을 선다. 학문적 실력이나 학계 평판은 신경도 안 쓴다. 그런 교수들이 한 자리 잡아 출세하는 걸 보면 학교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정치권도 교수라는 간판만 필요로 한다. 정계와 학계가 결탁한 것이다. 그러면서 전반적으로 값싸졌다.”

-대학이 교수들의 일탈에 선을 그어주고, 중요한 이슈에 대해선 지식인들이 원칙적인 목소리를 내는 등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교수의 정치참여에 한계를 긋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서울대에서는 교수가 공직을 맡으면 2년까지만 휴직을 허용하고 그 이상은 퇴직하도록 하는 규정을 사회대학이 처음 만든 이후 지금 다수 단과대학에서 그 같은 제한을 두고 있다.”


"학종 투명성 높이는 게 입시 개선 해법"

-총장 임기 4년 동안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뭔가.

“학생들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학부 교육을 바꾼 것이 임기 내내 일관된 주제였다. 학부생은 전공학과를 바꾸거나 복수·부전공을 할 수 있게 했다. 지금은 학부생 3분의 1 이상이 복수·부전공을 하는데 2분의 1, 3분의 2까지 갔으면 좋겠다. 대학원생은 자기 전공 밖에서도 지도교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1981년에 미국에서 전자공학과 교수를 지도교수로 삼아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서울대는 그게 불가능했다. 지금은 타 과, 타 대학 지도교수도 가능하다. 인기과목 수강신청이 어려워 PC방에서 광클릭하는 일이 없도록 온·오프라인 강의를 병행해 대규모 강의도 만들었다. 코딩 같은 인기과목은 문과 학생도 다 배우려 하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800명씩 듣기도 한다. 대학교육의 목표가 과거에는 (선진국을) 쫓아가는 입장에서 최신 콘텐츠를 배워 빨리 써먹으려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끌고 가는 입장이고 써먹을 시간도 없이 바뀌고 만다. 한 분야 전공만 알아선 안 되고 널리 이해하고 빨리 반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융합전공이 필요하고 학생들의 선택권이 넓어야 하는 이유다.”

오세정 총장은 "산업화 시대엔 전문분야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대학의 목표였지만 급변하는 이 시대엔 같은 틀로 인재를 키울 수 없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반대로 못 이뤄서 아쉬운 점은.

“총장이 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게 입시제도 개혁이었다. 서울대 입시는 다른 대학, 고교 교육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잘하면 국가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육부 규제가 많아 학교가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려웠다. 수능은 창의적 지식을 보기보다는 ‘틀리지 않기’ 시험이라 대학교육에 도움이 안 되고,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에게 유리해 학교 공교육을 망친다는 문제가 있다. 그 대안이 학생부종합전형인데 조국 사태 이후 불신이 커져 줄이는 방향으로 갔다. 고치려면 제대로 고쳐야지 정시, 수시 비중만 따져 학종을 줄이는 건 옳지 않다. 학종의 투명성을 높이는 게 맞는 방향이다. 서울대는 입시가 끝난 뒤 고교 교사와 장학사들이 결과를 볼 수 있게 만들었는데 투명성을 더 높여야 한다.”


"대학교육, 경직적 틀 벗고 학생 선택권 넓혀야"

-서울대가 상위 0.5% 학생을 뽑고도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지 못한다는 비판, 세계 최고 대학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서울대, 한국 대학 교육의 문제는 무엇인가. 어디로 가야 하나.

“대학 교육은 세계적 화두다. 사회가 워낙 빨리 바뀌어 똑같은 틀로 키워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다. 산업화시대에는 전문지식을 많이 집어넣는 게 최고 목표였다면 지금은 자유롭게 생각하는 창의성을 키우는 게 목표가 돼야 한다. 그나마 선진국 대학들은 유연해서 새 세대에 맞춰가는데 우리는 너무 경직적이고 벽이 많다. 이렇게 말해보자. 요즘 K컬처가 인기인데 과연 서울대가 기여했나. 방시혁(하이브 의장) 이수만(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황동혁(‘오징어 게임’ 감독)씨 모두 서울대 졸업생이지만 서울대가 기여한 건 없다고 본다. 심지어 (필즈메달 수상자)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도 서울대에서 수학을 배운 게 아니라 히로나카 교수를 만나 수학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학교가 안 막은 게 다행이다. 내가 학교 다니던 때라면 허 교수는 퇴학당했을지 모른다. 이들은 하나같이 서울대의 경직된 틀 안에서 스스로 틈새를 파고든 인물이다.

대학이 할 일은 학생들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고 선택권의 좌판을 열어주는 것이다. 앞서 말한 복수·부전공 등 제도로 학과·전공 간 장벽을 깨는 게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지난해 발표한 2025-2040 서울대 중장기발전계획에는 중장기적으로 아예 전공 없이 신입생을 선발하는 혁신안도 담았다. 서울대는 우수한 학생들이 오기 때문에 적성만 키워주면 잘할 수 있다. 나아가 적성을 못 찾고 있는 학생들을 어떻게 키울지도 고민해야 한다. 지난해 서울대 문화예술원을 만들어서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문화예술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끔 외부 전문가와 연계하고 지원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한 예다. 이제는 학교가 틈새를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분야별 전문가를 키우는 건 이미 어느 정도 하고 있다. 이제 자기 길을 못 찾은 학생도 행복한 대학생활을 하게끔 만드는 게 중요하다. 1등이 아니면 불만이고 1등은 불안한 그런 불행한 학생이 되어선 안 된다. 주어진 게 아니라 즐거운 걸 공부해야 한다.”


"지식산업시대 핵심은 대학... 지방거점 키워야"

서울대 정문. 한국일보 자료사진

-15년 만에 나온 서울대 중장기발전계획에 학과·대학 간 장벽을 허물고 무전공 선발, 9월 학기, 3학기제 등 혁신적인 제안들이 담겼는데, 관료적이고 이기적인 교수사회 분위기에서 실현 가능한가.

“시간은 걸려도 바뀔 것이다. 중장기발전계획은 교내 컨센서스 모으는 것 자체가 목적 중 하나다. 전공을 더 키워라, 단과대 자율성 높여라 등 이견이 아직 있지만 시대에 부합하는 발전방향은 정했다고 볼 수 있다. 다수의 생각을 확인한 이상 거꾸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기득권이 많고 가만있어도 1등 하는 게 서울대라 변화해야 한다는 자극은 적지만 인구구조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이 바뀔 것이다. 이미 대학원 경쟁률이 1대 1이고 10년 뒤면 학부생도 줄 텐데 달라지지 않을 수 있겠나.”

-서울대를 없애자, 서울대를 전국에 10개 만들자는 주장이 종종 나오고 환호를 받는 만큼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화가 심각하다. 또한 인구감소로 인해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사라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국가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인구학자 전망으로는 20년 뒤면 지방대엔 한 명도 입학 안 할 만큼 인구가 준다고 한다. 대학이 서열화돼 있어 지방대부터 문을 닫는다지만 결국 수도권 대학도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대라고 안 줄일 수 없다. 해법은 지방 거점을 키워 균형발전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키울 거냐. 행정부처와 공기업 등을 내려보내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적다는 게 자명하다. 경제공동체, 즉 지방에서도 괜찮은 직장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성장의 핵이 있어야 하는데 지식기반산업 시대에 대학이 될 수밖에 없다.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다른 해법이 없을 것이다. 2차 산업 시대에 미국 디트로이트, 피츠버그가 자동차, 제철산업으로 융성했다. 지금 디트로이트는 기울었지만 피츠버그는 여전히 잘나간다. 그 이유가 카네기멜론대와 피츠버그대가 있어서 세계 최고의 소프트 기술과 로봇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특성화된 기업, 기술과 인력을 키우는 대학이 있어야 한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책으로 쓴) ‘서울대 10개 만들기’ 주장도 지방 국·공립대를 서울대만큼 지원해서 지방거점대학으로 키우자는 것이다. 현재 교육부 지원금의 10배, 총 3조 원 정도를 투입해야 한다. 그것도 10~15년쯤 장기 지원해야 한다. 우리나라 연간 예산이 600조 원이 넘는데 불가능하지 않다. 물론 대학의 자구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대학들은 인구 감소로 인한 폐교 압박,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강하게 느낀다. 정부도 지방대 살리기 정책을 내걸고는 있지만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서울대 정체성 정립 첫발은 강한 총장 리더십"

-서울대는 한마디로 어떤 대학이 되어야 하나.

“지금까지 서울대는 하버드대, 스탠퍼드대를 모델 삼아 세계 일류 대학을 따라잡으려 한 대학이었다. 총장이 숱하게 바뀌었어도 그 방향성은 유지됐다. 이제는 우리 나름대로 무엇을 할지, 우리의 정체성은 뭔지를 고민할 시점이다. 중장기발전계획을 냈지만 아직 거기까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쉽게 말해 하버드대를 따를 거냐,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따를 거냐, 이런 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하나만 잘하면 되는 미국 사립대와 달리 서울대는 국가에서 필요한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사명이 있고 동시에 특성화된 분야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보면 UC버클리가 모델이 아닐까 한다. 규모 큰 주립대로 모든 학문분야가 다 있고 공공성이 강하다. 더불어 우리만의 강점 분야도 고민해야 한다. 이런 변화가 제대로 일어나려면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버드대 역사가 우리보다 300년 긴데 29대 총장까지 배출한 반면 서울대는 내가 27대 총장이니 얼마나 자주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강력한 리더십을 세우고 교수들이 머리를 맞대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김희원 논설위원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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