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 잃은 나경원의 ‘비윤 딜레마’

박성의 기자 2023. 1. 1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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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친윤’ 자처하지만 대통령실과 관계 ‘악화일로’
비윤계는 우군으로 분류…나경원과 ‘노선차’ 극복 숙제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죽었다 깨어나도 '반윤'은 되지 않을 것이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6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만찬 회동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떻게 찾아온 정권이냐. 정권을 다시는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생각한다"며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친윤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윤석열계 일각에선 당권 도전을 시사한 나 전 의원을 '반윤 우두머리'라고 비판하자 이를 반박한 것이다.

'반윤'을 배척하고, '친윤'을 자처한 나 전 의원. 그러나 여전히 나 전 의원을 둘러싼 당내 친윤계의 반감이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여권 일각에선 '윤심'(윤 대통령 의중)이 나 전 의원을 완전히 떠났다는 후문도 나온다. 과연 '당심'이 중요해진 차기 전당대회에서 '윤심'을 잃은 나 전 의원이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7일 대구 동구 팔공총림 동화사를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분노한 '용산'에 초선까지도 '반발'

나 전 의원은 당권 도전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내에선 나 전 의원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나 전 의원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나고 총선 전략을 언급하는 등 당권 주자 행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기현 의원을 지지하는 당내 친윤계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나 전 의원과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장제원 의원이 거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나 전 의원으로선 '윤핵관'과의 갈등보다 '윤심'을 얻지 못한 점이 뼈아프다. 나 전 의원은 친윤계와는 거리를 두면서도 윤 대통령을 비판하진 않았다. 이른바 '윤핵관-윤 대통령' 분리 대응 전략으로 읽혔다. 자신의 공직 해임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윤 대통령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며 공개 반박하면서 나 전 의원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여권 일각에선 나 전 의원이 '후보 포지셔닝'(후보가 당원에게 인식되고 있는 모습)에 실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초 김기현 의원을 대체할 '새로운 친윤 후보'로 나서려했던 나 전 의원이 정작 대통령실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서, 자의와 상관없이 '비윤 후보'로 낙인찍혔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당대표 주자인 윤상현 의원은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나 전 의원에 대해 "본인은 친윤 후보로서 어떤 자리매김을 갖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결국은 친윤 후보가 아닌 비윤의 이미지를 갖고 가는 그런 상황이 돼 버린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완전 반윤 이미지, 브랜드가 찍혀 있는 상황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당내 초선의원들까지 나 전 의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은 17일 입장문을 내고 "더 이상 당내 분란을 만들지 말라"며 나 전 의원에게 사과를 촉구했다. 이들은 "대통령과 참모를 갈라치면서 당내 갈등을 부추기고, 갈등을 자신의 전당대회 출마 명분으로 삼으려는 건 20년 가까이 당에 몸담은 선배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믿기 어렵다"고 나 전 의원을 비판했다. 이 성명서에는 국민의힘 초선의원 63명 중 45명이 이름을 올렸다.

우군 자처하는 비윤계…결선투표가 기회?

문제는 여론이다. 나 전 의원을 둘러싼 당내 비판이 가열되자 고공행진하던 나 전 의원 지지율도 '주춤'하는 모양새다. 뉴시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4~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당 지지층 397명에게 '국민의힘 당대표 적합도'를 물은 결과, 김기현 의원이 35.5%로 1위를 기록했다. 나 전 의원은 21.6%로 김 의원과 13.9%포인트(p) 차이였다. 이 업체 직전 조사(12월27일~29일)와 비교해보면, 김 의원은 20.3%p 급등했고, 나 전 의원은 9.2%p 하락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권 일각에선 나 전 의원의 불출마 가능성까지 언급되기 시작했다. 성명에 동참한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대통령과 동료 의원, 당원까지 반대한다면 나 전 의원의 출마 명분이 사라지는 셈"이라며 "전당대회에서 더 이상 '당과 대통령을 위해 출마했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나 전 의원도 (불출마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 전 의원에게 기회가 남아있다는 분석도 있다. 친윤계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고 있을 뿐 당의 쇄신을 바라는 '당심'도 만만치 않다는 시각에서다. 나 전 의원이 과거 이준석 전 대표를 지지했던 2030세대 당원, 수도권 중심의 중도보수 성향의 당원들의 표심을 얻는다면 '반윤핵관 텐트'를 기지 삼아 반전을 모색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 같은 당권 주자인 안철수 의원은 나 전 의원의 출마 지지 의사를 밝혔다. 김용태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을 비롯한 당내 범이준석계 의원들도 나 전 의원의 출마를 독려하는 분위기다. 앞서 나 전 의원 비판 성명에 동참하지 않은 초선의원들의 수도 적지 않다. 김미애·김용판·김웅·박대수·배준영·유경준·정경희·정찬민·지성호·최승재·최연숙·최재형·최형두·하영제·허은아 의원 등 15명은 나 전 의원 비판 성명에 동참하지 않았다.

문제는 나 전 의원 개인의 성향과 지지층의 성향이 비윤이 아닌 친윤에 가깝다는 점이다. 나 전 의원은 지난해 당내 '가처분 갈등' 당시 이준석 전 대표를 비판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나 전 의원이 비윤계와 의기투합해 시너지를 내려면 과거의 노선차를 봉합할 새로운 메시지와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셈이다.

만약 나 전 의원이 비윤계와의 동행을 결정한다면 결선투표에서 역전을 노려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나 전 의원이 1위를 하지 않더라도 결선 투표에만 직행한다면, 안철수·윤상현 등을 지지했던 온건 성향의 당원들의 '몰표'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에서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국민의힘 내에서 온건 성향의 후보를 지지하는 지지층은 김기현 의원보다는 나경원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을 지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며 "만약 나 전 의원이 결선투표에만 진출할 수 있다면 (안 의원 지지층의 표를 흡수해)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기사에서 인용한 여론조사는 18일 공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조사는 무선 100% 자동응답(ARS) RDD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1.2%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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