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 외화 유출’ 가상화폐 ‘김치 프리미엄’이용 투기 ‘철퇴’
‘실적 혈안’ 은행, 감독 시스템 부재 겹쳐…“제도개선 필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노려 거액의 외화를 해외로 불법 송금한 일당이 추가로 재판에 넘겨졌다. 현재까지 적발된 금액만 6조원에 이르고 이 가운데 4조3000억원에 대해서는 기소가 이뤄졌다. 검찰은 추가 수사를 이어가는 한편 범죄수익 환수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부장 나욱진)는 서울본부세관 조사2국(국장 이민근)과 불법 해외송금 사건을 합동 수사해 현재까지 주범 및 은행브로커 등 11명을 외국환거래법위반, 특정금융정보법 위반 및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공범 9명은 불구속 기소했다고 18일 밝혔다. 해외로 도주한 1명은 지명수배 조치했다.
검찰은 이들이 해외 거래소보다 국내 거래소에서 암호화폐 시세가 높게 형성되는 현상인 ‘김치 프리미엄’을 노려 거액의 외화를 해외로 불법 송금해 차익을 남기는 수법으로 131억원의 범죄수익을 올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송금 규모만 6조원에 달하는데 현재까지 파악된 4조3000억원 외 1조7000억원의 송금 내역도 계속 조사 중이다.
이들은 다수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허위 무역대금 명목으로 해외업체 계좌로 외화를 송금한 뒤 해외 코인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구입했다. 이를 국내 코인거래소로 전송한 뒤 가상자산을 매각해 ‘김치 프리미엄’ 수익 공제 후 집금(돈을 한 곳에 모음)과 해외송금을 반복하는 수법으로 수익을 챙겼다.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면 총책이 송금을 지시하면 투기자금팀은 집금자 계좌로 1분 동안 15억원을 집금한 뒤 1시간30분 후 송금업체로 15억원을 이체하고, 30분 뒤 다시 해외로 송금했다. 다음날 투기자금팀은 전날 송금액에 김치프리미엄으로 거둔 수익 9000만원을 추가 집금해 송금업체로 이체, 해외송금을 반복하는 구조다.
검찰은 송금을 담당하는 페이퍼컴퍼니 다수를 거느린 조직이 최소 4곳 이상 조직적으로 해외로 외화를 반출한 것으로 파악 중이다. 각 조직은 적게는 2000억원에서 2조원에 달하는 외화를 송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이 이첩한 6조원 중 1조7000억원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어서 여죄가 더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과 세정당국의 대대적 계좌추적 결과 범행설계 4개 조직의 무역회사로 입금한 계좌의 명의인은 총 256명으로 확인됐다. 그중 일부는 가상자산 투기와 상관 없이 해외로 반출되거나 보이스피싱 등 범죄와 연루된 정황도 포착돼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단순 가상자산 투기가 아닌 불법 자금세탁 통로로 활용됐을 가능성까지 폭넓게 수사 중이다.
검찰은 "출처 불명의 자금을 가상자산 거래로 세택한 금원도 다액 포함된 것으로 확인된다"며 "일부 조직 총책은 불법 송금 과정에서 가상자산 투기와 무관하게 호주 소재 업체에 수십억원 상당의 외화를 송금하는 등 재산을 국외로 반출한 정황도 포착돼 경위 등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스미싱 등 범죄에 사용된 계좌로부터 이체된 금원이 해외 송금된 사례가 발견되는 등 해외 송금액 일부가 보이스피싱 등 범죄수익금과 연결되고 있어 계속 자금흐름을 추적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의 이같은 중간수사 발표에 따라 은행권의 허술한 외환 관리가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시중은행들은 페이퍼컴퍼니인 송금업체가 1일 수회에 걸쳐 회당 수억~수백억원의 해외송금을 반복해 천문학적 규모의 외화를 반출하는 동안 가상자산 거래나 자금세탁 연루 여부 등에 대한 검증을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되는 의심거래를 차단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도 없었다.
은행들 간 외환 영업실적 경쟁 속에 송금사유나 증빙서류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천문학적 외환 유출이 가능했다는 것이 검찰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지점은 5개월간 320여 회에 걸쳐 ‘반도체 개발비’ 명목의 1조4000억원 규모의 외화 송금이 계속되는 동안 인보이스 외 추가 증빙자료를 요청하지 않았고, 담당 직원은 포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범행기간 중 은행 본점 차원의 의심거래보고가 이뤄졌지만, 영업점에 이같은 사실이 제대로 하달되지 않아 불법 송금 계속 가능했다. 금융당국이 수사기관 등에 해당 내용을 통보하기까지 수개월이 소요돼 피해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검찰 관계자는 "은행 내부 책임자 내지 금융당국이 적시에 개입해 불법 송금을 차단하지 못하는 이상 본건과 같은 단기간 ‘치고 빠지기’ 형태의 송금 행위를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향후 은행권과 금융당국이 연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추가 공범 수사를 지속하는 한편, 유사한 수법의 다른 조직들에 대한 추가 수사도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범죄수익 131억원을 몰수·추징보전한 검찰은 추가 범죄수익 추적에도 집중할 방침이다.
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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