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 살리기' 통했나 안 통했나…분양시장은 '당혹'
고금리·집값 하락에 수요 '뚝'…미분양 우려 확산
분양시장 최대의 관심사였던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아파트 일반분양 정당계약이 60%대 계약률로 마감했다. '둔촌주공 살리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과감한 맞춤형 규제 완화에도 미계약분이 1400가구 이상 발생했다.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한 것은 금리 부담과 집값 하락의 압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둔촌주공이 이같은 성적을 거두면서 분양시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당분간 꺾인 매수세가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갖은 노력에도 60%대 계약률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 재건축 아파트(올림픽파크 포레온) 정당계약 계약률은 60%대인 것으로 파악된다. 일반분양 가구 수가 4786가구인 점을 고려하면 1400가구 이상이 미계약분으로 남았다.
전용 59·84㎡ 계약률이 비교적 높고, 소형 평수인 전용 29~49㎡ 등의 물량이 많이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부터 17일까지 15일 동안 정당계약을 진행한 결과다. 다만 조합과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모두 계약률 공개를 거부한 상황이라 구체적인 계약률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나마 1·3 부동산대책을 통해 계약률이 상승하는 효과를 얻었을 것이라는 평가다. 둔촌주공은 작년 말 청약 때만 해도 최종 경쟁률이 평균 5.5대 1에 그치는 등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이에 계약률이 40%대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정부는 지난 3일 △중도금 대출 기준 폐지 △실거주의무 폐지 △전매제한 완화 등의 대책을 발표하고, 발표 이전 모집 공고한 모든 단지에도 소급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공교롭게 둔촌주공이 이날부터 정당계약을 시작하며 최대 수혜자로 꼽혔다. ▷관련 기사:'둔촌주공 당첨자들 좋겠네'…대출 되고 실거주 안해도(1월3일)
건설업계 관계자는 "1·3 대책 전에는 계약률이 40%대만 나와도 다행일 거라는 게 업계 중론이었다"며 "둔촌주공을 살리겠다고 수많은 규제를 다 풀었는데도 초기 계약률이 70% 안쪽이라는 건 그만큼 분양시장이 안 좋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앞서 사업비 상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면 채무 불이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조합은 7000억원에 달하는 사업비 상환을 위해 일반분양 일정까지 앞당겼는데, 계약금을 받아 상환하려면 계약률이 77%를 넘어야 할 것으로 점쳐졌다.
다행히 지난 12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을 받아 시중은행 5곳(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은행)에서 7500억원을 조달해 위기를 넘겼다. 사업비 상환 만기는 오는 19일이다.
정당계약에서 남은 물량은 예비 당첨자들에게 돌아간다. 조합은 다음 달 초 예비 당첨자 계약을 진행하며, 이때도 소진되지 않으면 오는 3월 초 무순위 청약을 시작할 계획이다.
분양 관계자는 "공급 물량이 많기 때문에 다른 단지에 비해 분양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며 "예비당첨자들의 수요가 꽤 있어 추가 계약 때 물량이 대부분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분양 사업장은 비상
둔촌주공 정당계약 결과에 시장은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닥치니 충격"이라는 반응이다. 특히 올해 분양을 예정한 건설·시행사들의 걱정이 크다. 전방위 규제 완화에도 시장이 회복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서다.
한 대형 시행사 관계자는 "금리 인상이라도 멈춰야 분양 일정을 잡아볼 텐데, 올해 안에 분양할 수 있을지 고민이 크다"며 "둔촌주공에서 대규모 미분양이라도 나오면 이후 분양하는 아파트들도 줄줄이 미분양이 쌓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도금 대출 기준 폐지 등 대출 규제 완화는 고금리에 힘을 못 쓰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등 금리 상승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현재 8%에 육박한다.
실거주의무 폐지, 전매제한 완화 등도 시장에서 체감하는 효과는 크지 않다. 전셋값이 하락세에 접어들면서 전세금으로 주택 자금을 충당하기가 어려워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전국 전셋값은 전월보다 2.42% 하락했다. 지난 6월 이후 매월 낙폭을 키우는 중이다.
계속된 집값 하락도 매수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다. 둔촌주공 인근 송파 헬리오시티 전용 59㎡는 지난 2021년 9월 20억9000만원(16층)에 거래됐지만, 지난 11일에는 14억4000만원(18층)에 팔리며 1년4개월만에 6억5000만원 하락했다.
건설·시행사들도 분양 일정을 연기하거나 최악의 경우엔 취소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재편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금리가 워낙 높아 대출 이자 부담이 큰데, 전셋값마저 떨어지니 집을 살 여력이 안 되는 것"이라며 "규제 완화가 안 통한다는 걸 알게 됐으니 공급은 더욱 주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은 (le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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